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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구태의 뇌과학]원치 않는 기억을 없애는 방법

시간이 약이 아닌 기억들도 있지만

사람들은 무의식적 방어기제 가져

싫은 기억 억제하려고 노력할수록

실제로 잊혀질 가능성도 더 높아져





짐 캐리와 케이트 윈즐릿이 주연한 2004년 영화 이터널 선샤인에는 흥미로운 심리학적 주제가 등장한다. 남자 주인공 조엘은 우연히 여자 주인공 클레먼타인을 만나고 이들은 곧 서로 사랑에 빠져 연인이 된다. 많은 연인들이 그렇듯 시간이 지남에 따라 이들의 사랑은 시들해지고 헤어지게 된다. 하지만 조엘은 클레먼타인과의 추억을 잊지 못하고 괴로워하다가 작중에 등장하는 원치 않는 기억을 없애주는 기억 클리닉에 연락해 클레먼타인과 관련한 기억들을 지우게 되고 영화는 그 과정의 다양한 에피소드를 보여주며 사랑과 기억의 의미에 관해 묻는다.

영화에서처럼 우리는 종종 원치 않는 과거의 기억 때문에 괴로워하고는 한다. 헤어진 연인에 대한 추억이 잊히지 않아 괴로워하고 지난날의 실수나 잘못 때문에 죄책감에 시달리고 과거에 겪은 충격적인 사건의 잔상이 시도 때도 없이 엄습하는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겪는 사람들도 많다. 영화에서처럼 원치 않는 기억만 선택해서 지워버리는 방법은 없을까.

100여 년 전 세계적으로 저명한 정신의학자였던 지크문트 프로이트는 사람은 과거의 부정적인 경험들에 대한 기억을 자동적으로 억눌러 의식상에 떠오르는 것을 방지하는 기본적인 심리적 방어기제를 갖고 있음을 주장했다. 사람의 마음에 의식 외의 어떤 것(무의식)이 있다는 그의 주장은 당시로서는 혁명적이었지만 그의 방어기제를 지지하는 과학적 연구들은 최근에 와서야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2004년 현재 영국 케임브리지대에서 연구 중인 마이클 앤더슨 연구팀은 사람들이 특정 기억을 떠올리지 않으려는 억제 노력을 하면 실제 해당 기억이 더 높은 확률로 망각될 수 있다는 사실을 과학적인 실험을 통해 규명했다. 이들의 실험 내용을 단순화해서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실험에 참가한 사람들은 일단 특정 배경 사진과 유명인의 얼굴 사진 쌍들을 학습한다(예: 에펠탑·버락 오바마, 피라미드·브래드 피트, 엠파이어스테이트빌딩·줄리아 로버츠…). 가장 중요한 두 번째 단계에서는 기억 억제 여부가 실험적으로 조작됐다. 한 조건에서 참가자들은 해당 배경 사진과 연합됐던 유명인의 얼굴을 떠올리도록(예: 에펠탑이 나오면 오바마를 떠올리기, 회상 조건), 다른 조건에서는 배경 사진 자체가 나오지 않았고(중립 조건), 마지막 조건에서는 배경 사진이 기억 단서로 제시되지만 이와 연합됐던 유명인의 얼굴이 떠오르지 않도록 의도적으로 기억 억제를 하도록 지시됐다(예: 엠파이어스테이트빌딩이 나왔을 때 로버츠의 얼굴이 떠오르지 않도록 노력, 억제 조건). 마지막 기억 검사 단계에서 참가자들은 제시된 모든 조건들의 배경 사진에 대해 첫 번째 단계에서 연합됐던 얼굴을 적극적으로 회상하도록 지시됐다. 연구자들은 흥미롭게도 실제 두 번째 단계에서 기억이 억제됐던 얼굴 자극은, 검사 단계에서도 다른 두 조건에 비해 더 낮은 확률로 기억됨을 발견했다. 다시 말해, 실제로 참가자들이 특정 기억을 억제하는 노력을 기울이면 해당 기억이 더 많이 망각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흥미로운 연구 결과는 많은 연구자들에게 영감을 줬고 이러한 기억 억제가 뇌에서 어떤 방식으로 작동하는지에 대한 후속 연구들이 활발히 진행됐다. 2009년 기능적 자기공명영상을 통해 뇌 활성화 정도를 추적한 한 연구에 의하면, 누군가 원치 않는 기억을 억제하려고 노력할 때 인지적인 통제를 담당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 외측전전두엽(lateral prefrontal cortex)이 기억의 중추인 해마(hippocampus)의 활동을 억제시키고 이에 의해 원치 않는 기억이 실제로 잊히게 된다.

사람들은 시간이 약이고 시간이 지나면 안 좋은 기억들도 다 희미해진다고 위로하고는 한다. 대체로 맞는 말이지만 특별히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쉽게 잊히지 않는 기억도 있기 마련이다. 최근의 기억에 대한 인지신경학적 연구들은 우리에게 좀 더 적극적인 행동을 취하도록 권한다. 잊고 싶은 기억이 있으면 열심히 그 기억을 억제하라, 그리하면 실제로 잊고 싶은 기억이 잊힐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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