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 정권마다 노동 개혁을 외쳤으나 개혁 시도는 번번이 실패했다. 윤석열 대통령도 5월 취임 이후 첫 국회 시정연설에서 “세계적인 산업구조 대변혁 과정에서 글로벌스탠더드에 부합하는 노동 개혁이 필요하다”고 개혁 의지를 표명했다. 그러나 지금도 강성 노조의 반발 등으로 상황이 녹록지 않다. 한국고용노사관계학회장인 김희성 강원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7일 서울경제와의 인터뷰에서 현행 근로기준법은 지나치게 근로자 권리 보호 중심이라며 “사용자와 근로자의 권리·의무를 대등하게 규율하는 ‘근로계약기본법’을 새로 제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노동시장의 이중 구조 악화는 대기업 정규직 중심의 고율 임금 인상이 누적된 결과라고 진단한 뒤 “해고 규제 완화 등으로 과도한 정규직 고용 보장을 줄여야 한다”고 주문했다.
-윤석열 정부가 경직된 주52시간제 완화 등 노동시장 개혁 방향을 제시했다.
△근로시간제 개편은 긍정적으로 본다. 새로운 산업이 발달하고 디지털 기술이 발전하면서 기업별·업종별 경영 여건이 복잡, 다양해지고 있다. 이에 탄력적으로 대응할 수 있도록 제도를 손질하는 것은 바람직하다. 1953년에 도입된 현행 근로시간제는 당시의 집단적·획일적 공장 근로를 전제로 설계돼 요즘처럼 다양성이 요구되는 지식 근로를 규제하는 데 한계가 있다. 더욱이 유연근로제는 구직자들에게 매력적인 근무 환경을 제공할 수 있다는 점에서 기업 측의 인재 유치 및 생산성 증대 등 경제적 목적에도 부합한다. 유연근로는 근로자들의 개인적인 삶과 근로 생활을 균형 있게 만들고 사용자 입장에서는 근로자 모집과 동기 부여, 고용 유지에 도움을 주는 수단이다.
-새 정부는 호봉제를 직무·성과급으로 바꾸는 임금 체계 변경도 예고했다.
△5월 대법원이 연령만을 이유로 직원의 임금을 깎는 ‘임금피크제’가 무효라고 판결하자 노동계는 환영하면서 임금피크제 폐지를 요구했다. 이는 과거로 회귀해 연공서열제·호봉제로 가자는 주장이다. 근속 연수에 따라 임금이 오르는 것은 초고령 사회로 가는 상황에서 맞지 않는다. 더욱이 젊은층은 노동시장에 진입하기도 어려운데 기득권 노조는 이를 유지하려 하고 있다. 이런 측면에서 연공급제를 직무·성과급제로 전환하는 것은 옳은 방향이다.
-윤 대통령이 최근 4차 산업혁명에 맞는 노동법 체계 개편의 필요성을 강조했는데.
△시대가 바뀌었는데도 현행 근로기준법은 여전히 근로조건의 유지·개선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근로조건의 전제가 되는 생산성 제고와 수익성 확보, 경쟁력 강화 등은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 사용자의 권리를 제한하고 근로자의 권리를 과도하게 보호하고 있다. 근로시간 규제나 해고 조건 등이 경직돼 노동시장의 변화를 전혀 반영하지 못한다. 또 법 규정이 추상적이고 불명확해 통상 임금 소송 같은 노사 간의 소모적인 분쟁을 초래한다.
-노동법 개편의 바람직한 방향은.
△노동 현실과 노동법의 괴리를 줄여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기존 노동법을 대폭 수정하는 ‘노동법의 현대화’가 불가피하다. 그 출발점은 4차 산업혁명에 맞게 근로자·기업의 경쟁력과 적응 능력을 확보하는 것이다. 이를 바탕으로 노동시장의 안정성을 유지하면서 유연성이 실현될 수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 사용자와 근로자 간의 권리·의무를 균형 있게 규율하는 방향으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 이를 담은 ‘근로계약기본법’ 제정을 서둘러야 한다.
-노동시장의 이중 구조가 더 심해졌다는 지적이 나온다.
△우리 노동시장은 정규직을 중심으로 경직돼 있다. 문재인 정부는 정규직과 비정규직으로 양분된 노동시장 이중 구조의 원인이 기업의 지나친 비정규직 의존에 있다고 생각했다. 이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으로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및 임금 인상을 제시했다. 그럼에도 여전히 비정규직이 증가하는 현실을 봤을 때 문재인 정부의 정책은 실패했다.
-이중 구조가 악화한 원인은 어디에 있는가.
△대기업과 중소기업 근로자 간의 과도한 임금 격차는 대기업 정규직 중심의 고율 임금 인상이 오랜 기간 누적된 결과다. 이는 기업 규모에 따른 지불 능력 차이, 대기업 정규직 주도의 투쟁적 노동운동이 계속됐기 때문이다. 대기업 정규직 근로자들이 강력한 노조를 만들어 자신들의 기득권 유지를 위해 파업을 남발했다. 하지만 사측은 노조의 파업 남용을 억제할 제도적 대항 수단이 없었다. 노조의 과도하고 부당한 요구를 사측이 그대로 수용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결국 현재와 같은 노동시장 이중 구조의 근본적 원인은 정규직 과보호와 과도한 임금 인상에 있다.
-이중 구조를 바로잡기 위한 방안은.
△정규직의 고용 경직성, 즉 정규직 과보호 문제 해결이다. 정규직 과보호는 고용 보장에서 시작됐는데 이는 근로자 보호를 위해 해고를 엄격하게 규제하는 근로기준법에서 비롯됐다. 해고 규제 완화, 즉 정규직 고용 보장을 완화하는 방향으로 법을 손질해야 한다. 또 개인의 성과와 기업의 실적이 보상에 반영될 수 있도록 임금 체계를 직무·성과 중심으로 개편해야 한다. 혁신 역량 강화와 근로자의 직업 능력 개발 등으로 중소기업의 생산성을 향상시킬 수 있도록 중소기업에 대한 정책적 지원도 더욱 확대해야 할 것이다.
-대우조선해양 사태와 같은 하청 근로자 이슈는 어떻게 풀어야 할까.
△원·하청 간의 격차 내지 차별 문제를 노동 문제로 접근해서는 안 된다. 거래 관계의 공정성 회복이라는 경제 질서 차원에서 해결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래서 고용노동부가 아니라 공정거래위원회나 산업통상자원부가 다뤄야 한다. 납품 단가 꺾기 등의 불공정 거래를 바로잡아 공정한 거래 질서를 확립하면 원·하청 문제는 상당 부분 해소될 수 있다.
-노사 관계의 운동장이 과도하게 노조 쪽으로 기울어져 있다는 지적이 많다.
△현재 노사 관계의 균형을 저해하는 부분이 어디인지 명확히 진단해야 한다. 노사 간의 ‘대등성’은 교섭 단계뿐 아니라 쟁의 과정에서도 보장돼야 한다. 하지만 현행 노조법의 규율은 노사 대등성과 거리가 멀다. 노조의 쟁의 수단만 강하게 보장해 실질적 균형이 전혀 이뤄지지 않고 있다. 불공정하고 비대칭적인 법을 빨리 개편해 사용자에게 적절한 방어권을 부여해야 한다.
-노사 균형을 맞출 구체적인 방법은.
△쟁의행위가 불가피한 경우 노조의 단체행동권은 물론 사용자의 경영권도 조화롭게 보장해야 한다. 파업에 대한 합리적 대응 방안으로 대체 근로 허용, 직장 점거 전면 금지 등을 거론할 수 있다. 주요국 가운데 우리처럼 포괄적·전면적으로 대체 근로를 금지하는 나라는 찾아보기 힘들다. 생산 시설 점거만 금지하는 직장 점거 관련 규정도 ‘전면적 금지’로 강화해야 한다. 지금은 옥상·로비·운동장 등의 점거를 허용하기 때문이다. 부당노동행위에 대한 형사처벌 조항 삭제도 필요하다. 선진국 가운데 부당노동행위를 형사 처벌하는 곳은 없다. 과태료·과징금 등 행정 제재로 충분하다. 부당노동행위의 범죄화 및 형사처벌주의가 노사 관계를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데 실효성이 있는지 돌아봐야 할 때다.
-더불어민주당이 노조의 파업으로 발생한 손실에 대한 사측의 손배소 제기와 가압류 집행을 제한하는 ‘노란봉투법’을 추진하고 있는데.
△이 같은 법률은 선진국에서 찾아볼 수 없다. 영국이 조합원 10만 명 이상인 경우 손배 상한을 100만 파운드(약 16억 원) 이하로 규정하고 있지만 이는 노조에만 적용된다. 조합원 개인의 불법 쟁의행위에 대해서는 상한 제한이 없다. ‘노란봉투법’은 사용자의 재산권을 중대하게 침해해 많은 문제점과 혼란을 야기할 가능성이 높은 만큼 입법에 신중해야 한다.
-대립적·적대적 노사 관계가 사라지지 않고 있다.
△가장 큰 원인은 합법적 규칙을 외면한 채 대립과 담합이라는 비공식적 문제 해결 방식에 의존해온 우리 노사 관계의 오랜 관행이다. 노사 간 협약 자치의 경험이 미흡한 데서도 원인을 찾을 수 있다. 협약 자치는 단체협약 당사자가 교섭을 통해 어떤 내용으로 합의할지 자율적으로 정하는 것이다. 독일·영국 등 주요국은 노사 관계의 대립과 위기를 겪으면서 협약 자치를 발전시켰다. 반면 우리나라는 노사 관계가 안정적으로 정착되지 못하고 매우 불안정한 상황이다.
-협력적 노사 관계를 만들려면 무엇이 필요한가.
△대립적 노사 관계에서는 기업과 노조가 서로를 공존·상생의 대상이 아니라 투쟁·타도의 대상으로 본다. 극단적이고 소모적인 노사 갈등이 지속되면서 결국 국가 경제에 부정적인 영향을 준다. 적대적 노사 관계는 근로자의 근로조건 개선은커녕 근로자와 기업 모두에 손해를 주는 공멸의 길이다. 회사와 노조의 이익이 대립된다는 관점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 기업은 노조를 성장·발전의 파트너로 인정하고 노조는 눈앞의 이익에만 연연하지 말고 조합원과 미래 세대의 일자리를 생각해야 한다. 공장 근무를 전제로 한 노조 시대는 쇠퇴하고 있다. 디지털 전환 시대를 맞아 노조의 바람직한 모습을 고민해야 할 때다.
◆He is…
1965년 서울에서 태어나 고려대 법대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에서 법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2007년부터 강원대 교수로 재직해왔다. 현재 경제사회노동위원회 근로시간면제심의위원회 공익위원, 한국노동법학회 수석부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올해 7월부터 한국고용노사관계학회장을 맡았다. 주요 저서로 ‘4차 산업혁명과 일자리 정책의 미래’ ‘통상임금 소송에서 신의칙 적용 판단 기준’ ‘해고 개혁-일본형 고용의 미래(역서)’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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