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특수 상황에서 당사자 혹은 가족 등이 연금을 받을 수 있을지를 놓고 법원과 헌법재판소의 판결과 결정이 다수 나와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노후생활에서 연금이 중요한 역할을 하는 만큼 앞으로도 다양한 연금 관련 소송이 잇따를 전망이다.
헌법재판소는 공무원연금법(2016년 1월 개정 전) 59조 1항이 재혼을 했다는 이유로 유족연금 수급권을 영원히 박탈해 침해의 최소성 원칙에 어긋나고 재산권을 침해한다며 서울고법이 낸 위헌제청 사건에서 재판관 5대4 의견으로 합헌 결정을 내렸다고 지난 5일 밝혔다.
이번 사건의 위헌제청 신청인 A씨는 1992년 군무원인 배우자 B씨가 사망한 뒤 매월 유족연금을 지급받아오다가 2014년 다른 사람과 사실혼 관계가 됐다. 공무원연금공단은 2017년 A씨에게 2014년부터 그 시점까지의 연금액 3800여만원을 환수하겠다고 고지했다.
A씨는 공단을 상대로 처분 취소 소송을 제기했으나 1심에서 패소했고, 2심을 맡은 서울고법은 A씨의 신청을 받아들여 헌재에 공무원연금법 조항의 위헌성을 따져달라고 요청했다.
헌재 재판관들의 의견은 엇갈렸다. 유남석·이선애·이영진·문형배·이미선 재판관은 "유족연금은 본래 생계를 책임진 자의 사망으로 생활의 곤란을 겪는 가족의 생계 보호를 위해 도입된 것이므로 유족연금 수급권 인정 여부가 반드시 기여금에 대한 공동 부담 여부에 좌우돼야 하는 것은 아니다"며 다수 의견을 냈다. 이들은 A씨처럼 재혼으로 부양이 가능해진 사람이 유족연금 수급권을 잃게 되면 그 수급권은 다른 유족에게 넘어가는데, 경제적 사정이나 재혼 종료 등에 따라 A씨에게 수급권을 돌려줄 경우 이미 수급권을 이전받은 다른 유족에게 손해를 입히거나 별도의 복잡한 법률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반면 이석태·이은애·이종석·김기영 재판관은 반대 의견에서 "배우자는 혼인 기간 내내 공무원의 성실한 근무를 조력하고 경제적 생활공동체를 함께 구성하면서 연금 형성에 기여한 사람"이라며 "이런 기여를 정당히 고려하지 않고 유족 지위를 상실했다는 이유만으로 수급권 전부를 영구히 박탈하는 것은 합리적 입법이라 보기 어렵다"고 봤다. 이들은 "심판 대상 조항은 실제 재혼으로 부양을 받을 수 있는지 등 구체적인 생활 보장의 측면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있다"며 "법률상 재혼 관계에 비해 불안정한 사실상 혼인 관계의 경우조차 아무런 보호조치 없이 영구히 수급권을 박탈하는 것은 유족연금의 사회보장적 성격에 부합한다고 보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공무원이 퇴직 후 직무와 연관된 청탁·뇌물 범죄를 저질렀더라도 이를 이유로 퇴직연금을 감액해서는 안 된다는 법원 판단도 있었다. 서울행정법원 행정6부(이주영 부장판사)는 지난 7월 22일 전직 공무원 A씨가 공무원연금공단을 상대로 낸 환수 처분 취소 소송 1심에서 원고 승소로 판결했다.
지방자치단체 공무원으로 일하던 A씨는 2012년 5월 지역 내 한 회사로부터 퇴직 후 부회장으로 일해달라는 제안을 받고 이를 승낙했다. 그는 2012년 7월부터 2014년 4월까지 이 회사가 보유한 특허공법을 지자체 공사 설계에 반영해달라고 공무원들에게 청탁하는 업무를 수행하고 급여 등 명목으로 3억1000여만원을 받았다. A씨는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알선수재 등 혐의로 재판에 넘겨져 징역 2년 6개월을 선고받고 2018년 10월 형이 확정됐다.
공단은 공무원연금법에 따라 A씨의 퇴직수당 및 퇴직연금을 절반으로 제한하고 초과 지급분 6700여만원은 환수하는 조처를 내렸다. 공무원연금법에 따라 전·현직 공무원이 재직 중 직무와 연관된 행위로 금고 이상의 형을 확정받으면 퇴직급여와 수당을 최대 50%까지 감액한다. 이에 A씨는 범행 시기가 퇴직 이후였으므로 이를 이유로 환수·제한 조치를 하는 것은 부당하다며 행정 소송을 냈다.
재판부는 "원고의 알선수재죄는 공직에서 퇴직한 후 구체적인 영업 청탁을 대가로 금품을 수수하기 시작한 2012년 7월경 이후 성립한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며 A씨의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2012년 5월 영입 제안 당시 구체적인 알선을 청탁받았다거나 금품제공을 약속받았는지 여부에 관해 별다른 조사가 이뤄지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며 "원고가 영입 제안을 승낙했다는 사실만으로 곧바로 구체적인 알선수재죄가 이뤄졌다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군 복무 중 얼굴에 흉터를 입었는데도 남성이라는 이유로 상이연금을 지급하지 않은 것은 부당한 차별이라는 법원의 판단도 있었다. 서울행정법원 행정1단독 손혜정 판사는 지난 6월 8일 50대 A씨가 "상이연금 지급 대상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결정한 처분을 취소하라"며 국방부 장관을 상대로 낸 소송을 최근 원고 승소로 판결했다.
장교로 육군에 복무했던 A씨는 1991년 작업 차에서 추락해 왼쪽 얼굴이 5㎝가량 찢어졌다. 그는 1996년 전역한 이후 24년이 흐른 2020년 상이 연금을 청구했으나 대상자가 아니라는 통보를 받았다. 국방부가 A씨가 전역할 당시의 군인연금법 시행령이 상이연금 지급 대상자를 '외모에 뚜렷한 흉터가 남은 여자'로 규정했다며 거부한 것이다. 이 규정은 2006년 '뚜렷한 흉터가 남은 사람'으로 개정됐지만 국방부는 그 이전에 전역한 A씨에게 소급해서 적용할 수는 없다고 봤다. A씨는 법률구조공단의 도움을 받아 옛 군인연금법 시행령이 헌법상 평등의 원칙에 위반된다며 국방부의 처분 취소를 요구하는 소송을 냈다.
재판부는 "외모에 뚜렷한 흉터가 남는 경우 여자가 남자보다 정상적인 생활을 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뒷받침할 아무런 자료가 없다"며 "당사자의 정신적 고통도 성별과 무관하게 개인의 성향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2006년 개정된 시행령에 대해서도 "시행령 개정 이전의 남자 군인을 보호하기 위한 최소한의 조치도 취하지 않아 헌법상 평등의 원칙에 위반된다"고 지적했다. 국방부는 A씨의 흉터가 4㎝에 불과해 기준에 미달한다고 주장했지만 재판부는 사고 당시 군의관이 A씨의 흉터를 5㎝로 기록했고 25년이 지나 자연적으로 흉터 길이가 줄어들 수 있다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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