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정부가 나날이 격화하는 미중 갈등 속 '가치외교'를 천명하며 미국에 발을 맞췄지만, 일명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에 맥을 추리지 못하는 모습이다. 정부는 미국과 외교적 소통을 지속, 국내 업계에 유리한 방향으로 법 집행을 유도한다는 방침이지만 전 세계적으로 강화하는 자국 우선주의 앞에 실효성은 미지수다.
11일 외교부에 따르면 조현동 외교부 제1차관과 이도훈 2차관은 이달 차례로 미국을 방문해 미국의 IRA 시행에 따른 국내 전기차 생산업계 우려를 전달하기로 했다.
우선 조 차관은 이달 16일(현지시간) 워싱턴DC에서 열리는 한미 고위급 외교·국방 확장억제전략협의체(EDSCG) 참석 계기 카운터파트인 웬디 셔먼 국무부 부장관과 양자로 회담하고 관련 논의를 진행할 계획이다. 이와 관련해 외교부 당국자는 "당연히 이번 회담에서도 이 문제(IRA)를 제기하고 충분히 우리 우려를 전달하며 미국 측에 조속한 조치를 촉구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이 차관도 다음 주중 IRA 문제 협의를 위한 방미길에 오른다. 이 차관은 뉴욕과 워싱턴DC를 차례로 방문해 방미 기간 미 국무부 경제차관과 IRA 문제를 중점적으로 논의한다. 이 차관과 페르난데스 차관은 한미고위급경제협의회(SED)의 수석대표로, IRA 문제를 심도 있게 논의할 것으로 보인다.
윤석열 대통령도 이달 29일 방한하는 카멀라 해리스 미국 부통령에게 미국의 IRA 시행과 관련한 국내 전기차 업계 우려를 전달하고 이를 조속히 해소하기 위한 노력을 요청할 것으로 전망된다. 해리스 부통령은 이달 27일 일본 도쿄에서 열리는 고(故) 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 국장 계기 25일 일본을 방문하고 한국도 들르기로 했다.
이처럼 정부는 IRA에 대한 우려를 미국에 개별적으로 전달하는 한편 유럽연합(EU), 일본 등 유관국과 공조 방안도 모색하고 있다. 정부는 이들과 같은 유사 입장국과 워싱턴 현지 공관 등에서 수시로 접촉하며 상호 의견을 교환하고 대응 방안을 모색하는 상황이다.
외교가에서는 정부가 EU, 일본 등과 함께 국제무역기구(WTO) 제소 등을 검토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는 "WTO 제소는 시간도 오래 걸리고 실효성이 크지 않지만 미국의 IRA 같은 조치가 이번 한 번으로 끝나는 게 아닐 것"이라며 "실효성이 없더라도 상징적인 차원에서 다른 국가와의 WTO 제소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WTO 제소를 통해 뚜렷한 결과물을 얻기보다는 미국에 IRA와 같은 법안에 다수 국가가 반대함을 분명히 밝혀야 한다는 얘기다.
앞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지난달 16일(현지시간) 북미(미국·캐나다·멕시코) 지역에서 최종 조립된 전기차에 한해 세액 공제를 해준다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IRA에 서명했다. 이로 인해 미국에 전기차를 수출하는 현대차와 기아차 자동차 가격이 각 7500달러씩 상승할 것으로 보인다. 아울러 내년 1월부터는 북미지역에서 만들어진 배터리와 리튬, 흑연 등 핵심 광물을 일정 비율 이상 사용해야 한다는 요건도 추가로 시행될 예정이어서 우려를 더욱 키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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