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서거로 새 국왕 찰스 3세가 즉위하면서 영국에서는 70년 만에 ‘킹’의 시대가 열렸다. 외신들은 찰스 3세가 즉위와 동시에 간단치 않은 과제에 직면했다고 분석했다. 그가 70년 넘는 재위 기간에 왕실을 포함해 영국의 구심점 역할을 했던 어머니 여왕의 대체자라는 점을 증명해내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상징적인 국가 지도자로서 찰스 3세가 이제 막 임기를 시작한 리즈 트러스 신임 총리와 얼마나 손발을 맞춰나갈 수 있을지도 관건이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의 여파로 최악의 에너지 위기를 맞은 영국이 ‘리더십 전면 교체’라는 또 다른 변수에 맞닥뜨렸다는 의미다.
우선 재위 기간 70년으로 영국의 최장 집권 군주였던 엘리자베스 2세는 8일(현지 시간) 96세로 서거했다. 여왕은 1952년 아버지 조지 6세의 갑작스러운 서거로 25세의 젊은 나이에 케냐에서 왕위에 오른 뒤 70년 216일간 재위했다. 15명의 총리가 거쳐간 이 기간에 영국은 전후 궁핍한 세월을 견뎌야 했고 냉전과 공산권 붕괴, 유럽연합(EU) 출범과 영국의 탈퇴 등 격동이 이어졌다. 엘리자베스 2세를 현대사의 산증인이라고 부르는 이유다. 여왕은 정치에 직접 관여하지 않았으나 국가 통합의 상징으로, 특히 나라가 어려울 때 국민의 단결을 끌어내는 데 기여했으며 이러한 역할 때문에 국민의 존경을 받았다. 여왕의 서거에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을 비롯해 각국 지도자들이 일제히 조의를 표했고 서방과 대치 중인 중국의 시진핑 국가주석도 “광범위한 찬사를 받은 여왕”이라며 엘리자베스 2세를 치켜세웠다.
이제 시선은 10일 버킹엄궁 즉위위원회가 새로운 국왕으로 선포한 찰스 3세에게로 쏠리고 있다. 외신들은 찰스 3세를 1958년 왕세자(웨일스공)에 오른 뒤 무려 64년이나 ‘군주 연습’을 해온 ‘준비된 국왕’이라고 평가했다. 정치적 입장 표명을 피했던 어머니와 달리 그가 기후변화 대응 분야 등에서 목소리를 높였다는 점에서 현실 정치에서도 일정 정도 존재감을 나타낼 것이라는 예상이 나왔다.
그러나 과제도 산적한 상황이다. 가디언지는 우선 찰스 3세는 최근 각종 추문으로 실추된 왕실의 위상을 회복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엘리자베스 2세의 차남인 앤드루 왕자는 미성년자 성매매 스캔들이 불거졌고 손자인 해리 세손은 왕실이 자신의 부인인 미국 배우 출신 메건 마클을 ‘인종 차별’한다고 불만을 터뜨린 뒤 왕실과 결별을 선언하고 미국으로 ‘출가’한 상태다.
찰스 3세 본인의 ‘비호감’ 이미지를 극복하는 것도 해야 할 일이다. 당장 많은 영국인들은 찰스 3세 즉위로 왕비가 된 커밀라를 보며 찰스가 왕세자 시절에 결혼했다가 파경을 맞은 고(故) 다이애나 왕세자비를 떠올린다. 찰스 3세와 커밀라 왕비는 2005년 정식으로 결혼한 후에도 따가운 시선을 받아야 했다. 여론 조사 기관 ‘유고브’가 5월 진행한 설문조사에서 찰스 3세의 지지율(56%)이 엘리자베스 2세(81%)는 물론 아들 윌리엄 왕세손(77%)보다 낮았던 데도 이런 배경이 자리한다.
찰스 3세가 트러스 총리의 ‘연착륙’에 얼마나 도움을 줄 수 있을지도 관심사다. 전임인 보리스 존슨 총리는 코로나19 봉쇄 기간에 방역 수칙을 어긴 이른바 ‘파티 게이트’에 책임을 지고 중도 하차했으며 후임으로 선출된 트러스 총리는 임기를 시작한 지 1주일도 채 되지 않았다.
현재 영국은 인플레이션과 에너지 가격 급등, 경기 둔화 우려 등으로 경제적으로도 매우 불안한 상황에 직면했다. 브렉시트(영국의 EU 탈퇴)로 인한 노동력 부족 등 여진도 계속되는 상황이다. 영국 가계의 경제 사정은 2008년 금융위기 이후 가장 어려워졌고 파운드화 가치는 37년 만에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다. 워싱턴포스트(WP)는 “검증되지 않은 총리와 새로운 군주가 영국을 미지의 영역으로 몰아넣고 있다”고 지적했다.
한편 현지 언론들은 19일로 예정된 엘리자베스 2세 장례식에 추모객이 75만 명 이상 몰려들 것으로 내다봤다. 찰스 3세의 대관식은 길게는 수 개월 뒤에 열릴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