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철도노동조합 파업이 15일(이하 현지 시간) 예고된 파업 개시일을 하루 남기고 극적으로 봉합됐다. 그동안 노사 협상이 진전될 기미를 보이지 않아 미국 경제가 최악의 위기에 빠질 수 있다는 우려가 고조됐으나, 조 바이든 행정부의 개입으로 노조와 사측이 극적인 잠정 합의를 도출하며 간신히 급한 불을 껐다는 평가가 나온다. 다만 최종 합의를 이루려면 권고안 비준 절차가 개별 노조 12곳에서 완료돼야 하는 만큼 아직 위기의 불씨는 남아 있다. 미국 전역의 철도가 멈춰 서며 공급망이 마비되고 인플레이션이 악화할 위험은 여전하다.
백악관은 이날 성명을 내고 “오늘 밤 타결된 잠정 합의는 우리 경제와 미국 국민들에게 중요한 승리”라며 “노조와 철도 회사들이 선의를 갖고 협상에 임해 우리의 중요한 철도 시스템이 계속 작동하고 경제 혼란을 피할 수 있는 잠정 합의에 도달한 데 대해 감사한다”고 밝혔다. 바이든 대통령은 성명에서 타결안이 “더 나은 임금과 개선된 근무 여건”을 보장한다고 강조했다.
전날 전미여객철도공사인 암트랙은 철도 파업에 대비해 15일부터 미국 전역의 모든 대륙 횡단 노선 운행을 중단한다고 밝힌 상태였다. 암트랙은 "자사의 경로 대부분이 화물 철도가 소유·관리·운행하는 선로를 이용한다"면서 파업이 여객 서비스에 미칠 여파를 고려해 시카고·워싱턴·로스앤젤레스(LA) 등을 오가는 장거리 노선 운행을 모두 잠정 중단한다고 설명했다. 시카고 통근열차 시스템인 메트라와 LA의 메트로링크 역시 철도 파업 시 운행 중단 또는 스케줄 변경이 불가피하다고 전하는 등 대부분의 업계가 합의가 이뤄지지 않을 가능성이 유력하다고 보고 있었다.
앞서 7월 바이든 대통령은 2년 넘게 이어진 철도 노사 간 임금협상을 종결하기 위해 직속 비상대책위원회(PEB)를 구성한 뒤 권고안을 제시하고 이달 16일까지 자율적 합의 시한을 부여한 바 있다. 하지만 전체 노조 12곳 가운데 최대 노조 2곳(SMART-TD·BLET)이 여전히 잠정 합의를 이루지 못한 데다 이미 권고안에 동의했던 국제기계·항공우주노동자협회(IASW)마저 이날 도로 잠정 계약안을 부결시키고 파업을 승인했다. 이에 16일 0시 1분부터 대규모 파업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게 점쳐졌다. 마지막까지 합의에 이르지 못했던 3개 노조 조합원은 전체 철도 노동자 11만 5000명의 절반이 넘는 6만여 명에 달한다.
폴리티코도 “한 노조라도 파업에 나선다면 이미 잠정 합의를 이룬 노조들 역시 파업 대열에서 이탈하지 않을 것”이라며 결국 철도 전체가 멈출 것이라고 설명했다. 전미철도협회(AAR)는 철도 파업이 하루 20억 달러(약 2조 8000억 원) 이상의 경제적 피해를 초래할 것으로 추산했다.
미국 전체 화물 운송의 30%를 차지하는 철도가 마비될 경우 공급망 대란과 인플레이션 악화는 불가피하다. 특히 인플레이션의 주요 변수인 농산물 및 에너지 부문이 직격탄을 맞을 수 있다는 점이 우려할 점으로 꼽혀왔다. 농산물의 경우 당장 곡물 수송이 중단될 뿐 아니라 수확 직후 투입해야 하는 비료 공급에도 차질을 빚어 미래의 곡물 수확량도 타격을 받을 것으로 우려됐다. 된다. CNN은 “휘발유에 사용되는 거의 모든 에탄올이 철도로 운송된다”면서 석 달 연속 떨어진 휘발유 가격이 파업 때문에 다시 치솟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상승 기류를 타던 바이든 대통령은 파업 저지에 전력을 기울여왔다. 카린 장피에르 백악관 대변인은 전날 “트럭 및 항공·해상운송 업자 측과 해당 문제를 논의 중이며 비상 법령 발표도 고려하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재닛 옐런 재무장관도 이날 "철도 파업이 전국적인 상품 운송에 중대한 장애를 초래할 것"이라는 경고를 전했다.
다만 잠정 타결로 보류된 파업이 최종적으로 철회될지는 아직 낙관할 수 없다. 개별 노조의 권고안 비준 과정에서 차질이 생길 경우 연말 대목을 앞두고 물류 마비라는 최악의 상황이 벌어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크리스마스 연휴라는 최대 쇼핑시즌을 앞두고 항만과 내륙 물류 허브를 잇는 철도가 멈춰 서면 소매업이 혼란에 빠지고 철강, 목재, 자동차 부품 등의 운송 차질로 제조 업체의 가동이 중단될 위험도 존재한다. 제이슨 퍼먼 하버드대 경제학과 교수는 “철도 파업보다 더 거대하고 빠른 공급망 타격을 상상할 수 없다”면서 “지난 1년 반 동안 우리가 목격한 그 어떤 공급망 문제보다 더 즉각적인 문제를 유발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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