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연하게 여겼던 것이 오히려 그들에게 상처를 주고 있었을지 모릅니다”
이시카와 케이 감독의 영화 ‘한 남자’는 일본 현대문학의 기수인 히라노 게이치로의 동명소설이 원작이다. ‘한 남자’의 화자인 재일교포 3세 변호사 기도 아키라를 연기한 츠마부키 사토시는 “끊임없이 ‘나는 누구냐’고 물으면서 배역과 마주했다. 특히 아이와 보내는 시간을 소중히 여겼고 아이의 존재를 거울로 삶의 의미를 비추어 보았다”고 밝혔다. 이 영화가 인생의 이정표가 될 거란 그의 바램만큼 ‘한 남자’는 과거에 상처 입은 어른들과 미래를 걸어가려는 아이들을 따스한 시각으로 바라본다. 그래서 원작의 의도 그대로 자연스레 감정이입이 되고 공감하게 만든다. 가만히 마주하노라면 사슴 같은 커다랗고 까만 눈동자에 상대방의 모습이 비치는 츠마부키 사토시의 매력 덕택이다.
‘한 남자’는 제79회 베니스 국제영화제 오리종티 진출작으로 지난달 31일 월드 프리미어가 끝난 후 기립박수를 받았다. 이시카와 케이 감독, 쿠보타 마사타카(타니구치 다이스케 역)와 함께 영화제에 참석한 츠마부키 사토시는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찾는 영화제라서 그런지 사람과 사람의 거리가 굉장히 가까워 보인다. 일상 생활과 영화가 밀접하다는 느낌이다. 영화는 예술이고 엔터테인먼트이기도 한데 그보다 더 가까운 존재로 여기는 듯하고 사람과 사람의 연결고리가 영화를 매개체로 구축되고 있다”고 베니스를 찾은 소감을 말했다.
기도 아키라 변호사가 이혼을 담당했던 리에(안도 사쿠라 분)로부터 죽은 새 남편의 ‘정체’를 조사해달라는 의뢰를 받으면서 영화는 시작된다. 진짜 이름을 버린 채 가짜 인생을 살았던 ‘한 남자’를 추적해가면서 제2, 제3의 신분을 세탁한 남자들이 나타나고, ‘한 남자’의 정체를 파헤칠수록 기도 아키라는 오히려 ‘자이니치’라는 자신의 정체성에 혼란을 느낀다. 츠마부키 사토시는 “자이니치(재일교포)역을 맡으면서 (일본인과 한국인) 둘 사이를 특별히 구분 짓지 않았다. 일본에 많은 자이니치 친구들이 있는데 그들을 자이니치로 구별한 적도 없었다. 하지만 내가 당연시 했던 것이 그들에게는 상처로 남아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답했다. 이어 “일본은 여전히 섬나라인 것 같다. 일본인이 다수이고 역사상 쇄국정책을 취하며 순수 일본인, 단일민족과 단일문화를 내세우고 싶어했다. 이런 경향이 일본인들의 시야를 점점 편협하게 만든다”고 밝혔다. 기도 아키라를 통해 ‘정체성’에 대한 깊은 사색을 했다는 그는 “대립을 부추기는 사람은 ‘저 사람은 한국인이다’라고 범주화한다. 하지만, 지금 세대에서는 복잡함을 서로 인정하고, 어딘가의 접점에서부터 관계를 쌓아가는 게 중요한 것 같다”는 원작자의 의도를 눈빛 연기로 보여주었다.
영화 ‘워터보이즈’(2001)에서 첫 주연을 맡았다는 그는 “처음으로 영화 캠페인이라는 걸 해봤다. 당시는 무대인사가 전부였는데 전국의 영화관을 돌아다니며 관객들을 만났다. 다가가면 갈수록 관객들도 ‘우리의 영화’라고 여기며 공감했던 것 같다. 그러나 지금은 시청률이 높은 TV프로그램에 출연해 ‘우리 영화’를 홍보하는 비즈니스 시스템으로 바뀌었다”며 베니스에서 만난 사람과의 좁혀진 거리에 과거를 그리워하는 듯 했다.
그가 주연한 영화 ‘한 남자’는 베니스에 이어 2022 부산국제영화제 폐막작으로 관객들을 만난다. 츠마부키 사토시는 “부산국제영화제는 처음 가본 해외 영화제이자 영화가 세계로 뻗어나가는 매개체임을 피부로 느낀 추억의 땅이다. 그런 부산에서 ‘한 남자’가 폐막작으로 선정된 것을 매우 영광으로 생각한다. 베네치아(베니스)에 이어 추억이 깊은 부산국제영화제에서 관객들을 만나게 되어 정말 기쁘다”고 설레임을 표했다. 또 그는 “한일 합작 영화를 했을 때 한국에 가면 극장을 최대한 많이 가라는 말을 들었다. 한국에서는 영화와 관객의 거리가 매우 가깝다. 영화와 나 사이의 거리가 가까워질수록 자신의 삶에 쉽게 들어온다. 그 영화가 보는 사람들에게 거울이 된다. 그런 면에서 굉장히 어려운 주제를 다룬 영화임에도 의외로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영화가 되리라 믿는다”며 인터뷰를 끝맺었다. / 하은선 미주한국일보 부국장, HFPA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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