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제 사건과 실존 인물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이야기가 주는 힘은 강력하다. 몰입감과 긴장감을 높이는 건 물론, 작품이 끝난 후에도 시청자들에게 생각해 볼 거리를 던지며 경각심을 높이는 거다. 마약과 사이비 종교라는 부적절한 사회 요소를 다룬 '수리남'이 그렇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수리남'(극본 윤종빈/연출 윤종빈)은 남미 국가 수리남을 장악한 무소불위의 마약 대부로 인해 누명을 쓴 한 민간인이 국정원의 비밀 임무를 수락하며 벌어지는 이야기다.
작품은 가족들과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해 수리남에서 홍어를 들여오는 사업을 시작한 강인구(하정우)의 모습에서 시작된다. 강인구는 현지에 적응하면서 사업을 이끌었지만 한인 교회 목사 전요환(황정민)의 농간에 의해 사업은 망하고, 교도소에 수감되는 수모를 겪는다. 이때 강인구에게 접근한 건 국정원 팀장 최창호(박해수). 그는 강인구에게 전요환이 수리남의 마약왕이라는 사실을 알리며 조직에 침투에 첩자 노릇을 해달라고 청한다. 거액의 돈을 약속받고, 이를 수락한 강인구의 아슬아슬한 연기가 시작된다.
작품은 수리남에서 마약왕이 된 한국인 조봉행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다. 조봉행은 1980년대 수리남에서 선박 냉동 기사로 일하다가 남미 최대 마약 조직과 손을 잡은 인물. 하정우가 연기한 강인구 역시 실존 인물이 모티브다.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이야기가 단단하게 뒷받침하고 있으니 작품의 전개가 물 흐르듯 흘러갈 수밖에 없다. 실제 이야기를 바탕으로 한 만큼 민감한 소재인 마약에 대한 경각심을 울리기에도 충분하다.
마약과 사이비 종교라는 두 가지 소재가 교묘히 섞여 있는 점도 눈여겨볼 만하다. 국제 범죄 조직의 주도면밀한 마약 유통과 이를 저지하려는 국정원의 두뇌 싸움이 한 축을 이룬다. 여기에 사이비 종교가 신도들을 교묘하게 가스라이팅 하는 과정이 담기며 하나의 축을 형성한다. 세뇌된 신도들은 마약 유통 과정에 이용되면서 자연스럽게 두 가지 이야기는 하나의 목표로 향한다. 마약과 사이비 종교는 각각 하나의 줄기를 형성하고, 작품이 전개될수록 거대한 줄기가 하나로 합쳐져 큰 나무를 이루는 모양새다.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이라고 했다. '수리남'은 한 시도 긴장을 놓을 수 없는 극한의 상황이 이어지지만, 웃음을 잃지 않는 작품이다. 범죄 조직이면서 성직자 흉내를 내는 전요환과 변기태(조우진)의 모습, 조직의 브레인인 데이빗 박(유연석)이 시도 때도 없이 영어를 하는 모습은 관객들이 잠시 쉬어갈 수 있는 장치다.
전요환이 강인구를 믿게 되는 과정을 따라가다 보면 흥미로운 지점들을 발견할 수 있다. 전요환은 처음에 교도소에서 수감됐다가 수리남에 돌아온 강인구를 믿지 못했다. 끊임없이 강인구를 의심하고, 감시하고, 심지어 가둬놓기까지 한다. 그런 그가 강인구의 대범한 성격과 돈에 대한 가치관에 점차 마음을 열며 진정한 사업 파트너로 대하기 시작한다. 가짜 직업, 가짜 친구, 가짜 축구공 등 전요환의 삶은 가짜로 꾸며져 있는데, 작품 말미 진정으로 강인구를 믿었을 때만큼은 진짜 사인볼을 선물하며 자신의 마음을 표현한다.
간결한 액션은 이야기의 흐름을 방해하지 않는 선에서 진행된다. 조직의 다툼을 그린 영화라면 으레 길게 이어지는 액션신이 등장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수리남'은 필요한 액션 외에 절제돼 있다. 절제된 액션은 긴장의 끈을 팽팽하게 만드는 역할을 하며 시청자들을 서스펜스의 세계로 초대한다.
이 모든 건 배우들의 호연으로 완성된다. 하정우는 극의 전체를 묵직하게 이끈다. 그는 가족에 대한 사랑부터 범죄 조직에 침투해 점차 대범하게 상대를 농락하는 강인구의 모습을 밀도 있게 그렸다. 황정민은 목사와 마약왕을 넘나들며 극에 긴장감을 불어넣었고, 박해수는 국정원과 마약 조직원 사이의 간극을 자연스럽게 표현했다. 변기태를 연기한 조우진은 전, 후반부를 각각 다르게 만들어 반전의 주인공으로 우뚝 섰다.
◆ 시식평: 수리남에서 찍지 않은 '수리남', 배경 구경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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