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취임 후 5개월 간 국회 인사 청문 보고서 없이 임명한 고위직 인사가 13명에 달하는 가운데 이는 문재인 전 대통령이 취임 후 1년 6개월간 임명 강행한 고위직 인사 수와 같은 것으로 나타났다. 역대 최다(37명) 임명 강행을 기록한 문 전 대통령은 임기 초 5개월 간 6명을 임명 강행하는 데 그쳤다.
또 윤 대통령은 해당 기간 동안 청문 보고서 재송부 요청 기간(최대 10일)을 평균 3.6일 둔 데 비해 문 전 대통령은 평균 4.5일을 두어 윤 대통령이 더 촉박하게 재송부를 요구한 것으로 드러났다. 초유의 0.73% 차이 대선의 여진이 정치적 양극화로 계속되면서 여야 협치 공간이 그 어느 때보다 줄었다는 분석이 나온다.
24일 서울경제가 인사청문 제도가 도입된 뒤 임기를 시작한 이명박 정부부터 윤석열 정부까지 총 4개 정부의 고위직 인사 임명 강행 사례를 전수 분석한 결과 윤석열 정부의 임명 강행 숫자가 가장 빠른 증가세를 기록했다.
이 전 대통령은 재임 기간 총 17명을 임명 강행했는데 13번째 임명 강행한 때는 취임 3년 6개월차였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탄핵 되기까지 3년 9개월 동안 10명을 임명 강행해 13명에 못 미쳤다. 문 전 대통령도 취임 1년 6개월차에 13명째 임명 강행해 윤 대통령보다 한참 늦었다.
정권의 임명 강행은 야당의 반발을 부른다는 점에서 윤 대통령의 임명 강행 규모가 심각하다는 평가다. 협치 없는 임명 강행은 야당의 협치 의지를 더욱 약화해 협상 여지를 줄이는 악순환을 초래하는 형국이다.
특히 윤 대통령이 부여한 청문 보고서 재송부 요청 기간을 분석한 결과 협치에 대한 기대를 사실상 접은 것으로도 보인다. 윤 대통령은 임명 강행한 13명에 대해 평균 3.6일의 재송부 기간을 두었다. 이는 문 전 대통령이 13명(이중 3명은 청문 보고서 단독 채택)을 임명 강행하기까지 평균 4.5일을 부여한 것보다 0.9일 적다. 문 전 대통령이 임명 강행한 37명 전체로 확대(이중 12명은 단독 채택)해도 재송부 기간은 평균 4.2일로 여전히 윤 대통령이 부여한 기간보다는 길다.
윤 대통령은 12번째·13번째 후보자인 한기정 공정거래위원장·이원석 검찰총장에 대해 재송부 기간을 단 하루만 부여했다. 문 전 대통령이 단 하루만 부여한 후보자는 27번째인 추미애 법무부 장관 한 명이었다. 재송부 요청이 여야에 추가로 협상할 시간을 벌어주는 게 아니라 임명 강행을 위한 요식 절차로 전락하는 것 역시 가속화한 모양이다.
윤 대통령은 여야의 극단 갈등을 해소하려는 노력을 경주하기보다 법적 테두리 안에서 일방 통행하는 수를 택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야당은 대통령 인사권에 대해 존중하지 않고 대통령은 일명 ‘제도적 자제’를 하지 않으면서 반목이 심화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조진만 덕성여대 교수는 “(임명 강행 추이는) 한국 정치에서 협치 공간 줄고 여야 갈등이 심화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며 “야당과 최소한의 관계 형성도 안 된 정부”라고 평가했다.
문 대통령이 임명 강행 관행을 강화한 것은 자명하다. 또 윤 대통령이나 국민의힘 입장에선 야당의 발목 잡기가 도를 넘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럼에도 국민의힘이 문재인 정부 시절 임명 강행을 두고 격한 비판을 쏟아냈던 만큼 임명 강행을 더욱 많이 하는 데 대한 내로남불 비판을 피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또 전임 정부에서 이같은 관행이 강화된 데에는 국민의힘도 일정 정도 책임이 있다는 지적이다. 나경원 자유한국당(국민의힘 전신) 원내대표 시절 장외 투쟁 등 강경 대립을 이어가면서 9개월 간 12명이 강행 임명되고 말았다. 이는 이번 정부를 제외하면 최단 기간 가장 많은 임명 강행이 이뤄진 시기다.
여야가 제 역할을 하고 있다고 여기는 국민은 4분의 1가량에 불과한 상황이다. 엠브레인퍼블릭·케이스탯리서치·코리아리서치·한국리서치는 지난 19일부터 21일까지 사흘간 만 18세 이상 남녀 1000명에게 물은 결과 ‘국민의힘은 집권 여당의 역할을 잘한다’에 대해 24%, ‘더불어민주당은 제1야당의 역할을 잘한다’에 대해 27%가 ‘그렇다’고 답했다(자세한 사항은 NBS 및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조).
여야가 이런 상황에서 정쟁과 상관없이 속도감 있게 민생 법안을 심사하고 처리할 것이라고 기대하기는 어렵다. 여야 모두 국민 시선을 의식한 듯 경쟁적으로 여야정 상설 협의체와 여야 공통공약기구 등 협치 제안을 꺼내 들지만 눈에 띄는 진척은 없다.
결국 한국 정치의 토대·문화 개선이 시급하다는 요구가 대두된다. 조 교수는 “이러한 반목을 마감하는 데는 대통령의 영향이 크다고 볼 수밖에 없다”며 “윤 대통령이 협치의 계기를 마련한 뒤 한 단계씩 개선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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