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 말 독일의 ‘철혈 재상’ 오토 폰 비스마르크는 북해와 발트해의 해군 기지를 직접 연결해야 한다는 해군과 상업계의 건의를 받아들여 운하 건설에 나섰다. 그는 당시 황제인 빌헬름 2세를 설득해 9000여 명의 인력을 공사에 동원했다.
1887년 시작된 운하 건설은 1895년에 완공됐다. 운하 공사는 발트해 연안의 킬 항구에서 출발해 렌츠부르크를 지나 북해에 가까운 엘베강 어귀의 브룬스뷔텔을 잇는 길이 98.7㎞의 대역사였다. 이 운하는 ‘빌헬름 황제 운하’로 불리다가 ‘킬 운하’로 바뀌게 됐다.
브룬스뷔텔은 예로부터 많은 선박들이 드나드는 항구 도시다. 1286년 작성된 한 문헌에는 주민들이 영주에게 “엘베강을 지나는 함부르크의 상인들을 대상으로 더 이상 강도질을 하지 않겠다”고 약속하는 내용이 나온다.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잠수함 기지였던 이 곳은 함부르크와 함께 반전운동이 활발하게 벌어져 독일의 패전을 앞당겼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1970년대 들어 대규모 화학산업단지가 자리 잡은 공업 도시로 육성되면서 토탈과 바이에르머티리얼사이언스 등 세계적인 화학 회사들이 이곳에 둥지를 틀었다. 1976년에는 브룬스뷔텔에 원자력발전소가 세워지기도 했다.
브룬스뷔텔이 독일의 새로운 에너지 거점으로 떠오르고 있다. 중동산 액화천연가스(LNG)를 브룬스뷔텔을 통해 독일에 가져오기 때문이다.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는 25일 아부다비를 방문해 아랍에미리트(UAE)와 LNG 공급계약을 맺고 “러시아 가스에 의존하지 않고 세계 가스 수요를 충족시킬 정도로 LNG 생산을 늘려야 한다”고 역설했다. 연간 80억 ㎥ 처리 능력을 갖춘 대규모의 LNG 터미널을 브룬스뷔텔에 건설하는 방안도 추진되고 있다. 독일은 전체 천연가스 사용량의 러시아 의존도를 당초 55%에서 크게 낮추는 대신 다른 나라에서 수입하는 LNG로 충당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 탈원전 정책으로 러시아 가스에 과도하게 의존하다가 에너지 위기를 맞아 새로운 공급 루트를 찾는 독일을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해외 자원과 에너지를 적극 개발하고 안정적인 공급망을 구축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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