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류승룡이 국내 최초 뮤지컬 영화의 스타트를 유쾌하게 끊었다. 꼬박 1년이 걸려 배운 보컬과 안무는 흥을 돋우고, 섬세한 감정 연기는 감동을 더했다. 베테랑 배우의 새로운 도전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다.
‘인생은 아름다워’(감독 최국희)는 폐암 선고를 받은 세연(염정아)가 남편 진봉(류승룡)에게 마지막 생일선물로 첫사랑을 찾아 달라는 황당한 요구를 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진봉이 마지못해 세연과 전국 곳곳을 누비며 과거로의 여행을 떠나는 모습이 뮤지컬로 펼쳐진다.
국내 최초 뮤지컬 영화라는 타이틀이 부담스럽게 다가오지 않을 수 있던 건 주크박스라는 단서가 붙어서다. 류승룡은 “클래식 뮤지컬이면 언감생심 못했을 것”이라고 단호하게 말했다. 흔히 들어본 8090 노래를 차용해 개사하지 않고 대사처럼 대입하는 게 매력적으로 다가오고, 서정적이고 시 같은 노래들이 주는 감동이 있었다고.
“액션보다 어렵더라고요. 물리적인 시간이 많이 들어요. 노래 녹음을 많이 했거든요. 가녹음을 하고, 현장에서 녹음을 하고, 후시녹음을 또 했어요. 안무 연습도 저만 하는 게 아니라 같이 맞춰봐야 해서 시간이 배 이상으로 들었고요. 처음 시도하는 뮤지컬 영화라는 점에서 오는 긴장감도 있었어요. ‘인생은 아름다워’가 잘 돼서 클래식 뮤지컬이 탄생할 수 있는 시발점이 됐으면 해요.”
뮤지컬 영화는 처음이지만 뮤지컬이 처음은 아니다. 연극으로 데뷔한 그는 뮤지컬 ‘난타’ 원년 멤버로 활약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워낙 창법이 다른 탓에 애를 먹었다. 유명 보컬 트레이너에게 일주일에 2~3번씩 코칭을 받고, 현장에서도 연습을 거듭했다.
“에코브릿지 & 최백호의 ‘부산에 가면’이 쉬울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어렵더라고요. 내공이 어마어마해야 하는 노래였어요. 그 정서를 담아내기 어려웠죠. 이런저런 구애와 스트레스를 받지 않고 했던 건 김광진의 ‘편지’입니다. 재밌게 잘 불렀어요. 진봉 캐릭터의 전체적인 주제를 아우르는 건 이문세의 ‘알 수 없는 인생’이고, ‘편지’가 진봉의 얄미운 모습을 보여준 노래예요.”(웃음)
안무 연습도 쉽지 않았다. 한 박자를 8비트로 쪼갠 안무를 소화하기 힘들어 염정아와 함께 2배속, 4배속으로 점점 줄였다. 춤도 언어라는 생각으로 두 사람에게 맞는 언어로 바꾼 것이다. 상황을 직관적으로 보여주는 군무신에 특히 공들였다.
“이문세의 ‘솔로예찬’ 신은 분위기도 달랐어요. 판타지로 들어가는 순간이라 2D도 등장하고요. 어린아이들부터 현역 뮤지컬 배우들까지 한 편의 뮤지컬 작품을 올리듯이 정말 재밌게 찍었어요. 그분들 한명 한명이 최선을 다했기 때문에 큰 스크린으로 봐야 해요.”
“(세연과 지인들이 마지막 파티를 하는) ‘뜨거운 안녕’ 신은 굉장히 추울 때 파주에서 3~4일 동안 찍었거든요. 다 같이 울면서 찍었어요. 이렇게까지 할 수 있을까 싶었어요. 그래서 염정아도 나도 그 장면이 최고로 기억에 남아요. 정말 고마워요. 그래서 앙상블인가 봐요. 그들의 기억이 나서 지금도 울컥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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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봉 캐릭터를 쌓아가는 것도 단순하지 않았다. 진봉은 무심한 남편이다. 세연이 시한부 선고를 받은 것을 알면서도 모진 말을 하고 시종일관 무뚝뚝하다. 그런 진봉에게 관객들이 분노를 느낄 정도다. 류승룡 역시 너무 강한 진봉 캐릭터에 출연을 주저하기도 했다.
“처음에는 지금보다 3배는 셌어요. 엄청 순화시킨 거죠. 이런 아빠는 요즘 없죠. 우리 아버지 세대에서도 그렇지 않았어요. 영화적 장치일 뿐이에요. ‘인생은 아름다워’에서는 특별한 빌런과 안타고니스트가 없잖아요. 가족들이 잠시 빌런의 역할을 해준 거죠. 그래서 수용하게 됐어요. 다만 톤 조절은 배우의 몫이었는데, 조금 톤을 낮출 걸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류승룡과 염정아가 20대 역할까지 직접 연기한 것은 킬링 포인트다. 류승룡은 운동권 대학생부터 훈련병까지 특유의 능청스러움으로 소화했다. 그는 “시나리오를 읽고 정말 재밌는데 분량이 적다고 생각했다. 연락을 했더니 당연히 과거 진봉도 내가 한다고 하더라”라며 “상승 욕구가 생겨서 다시 읽었다. 걱정이 되면서도 옛날 향수가 있었다”고 비하인드를 밝혔다.
“나이가 드신 분들, 앞으로 드실 분들 다 공감할 수 있는 지점들이라 굉장히 매력적이었어요. 다만 ‘20대 역할을 영화 백 투 더 퓨처처럼 CG로 할 거냐’고 물었죠. 그래서 실제 제 대학교 동기들을 앙상블로 불렀어요. 신중현의 ‘미인’이라는 노래에서 등장하는 앙상블이거든요. 현역 뮤지컬 배우 교수들인데 정말 좋아하더라고요. 나만 나이 들어 보일 수 없잖아요. 그들과 같이 옛날로 돌아간 것 같았어요.”(웃음)
염정아와 호흡은 완벽했다. 염정아는 세연 그 자체로 느껴졌다. 촬영하는 내내 사랑스러웠고, 정말 프로라고 생각됐다. 왜 그렇게 감독, 작가들이 좋아하는 배우인지 확실하게 알 수 있는 현장이었다.
“염정아는 정말 120% 토시 하나 안 틀리고 대본대로 연기해요. 그런데 그 안에 음표가 어마어마하죠. 쉼표 같은 것도 계산된 것이 아니에요. 불규칙 호흡으로 나오는데 정직하게 기본을 지키고 그 이상을 해내는 배우예요.”
관전 포인트로 꼽고 싶은 신도 염정아가 등장하는 부분이다. 세연의 병명을 알게 된 아들 서진(하현상)이 전화로 ‘거짓말 거짓말 거짓말’을 부르는 장면에서 염정아의 감정 연기가 돋보였다. 여기에 담백하게 마음을 전하는 하현상의 보컬이 더해져 가슴에 다리미를 댄 것처럼 뜨거워졌다. 그게 바로 ‘인생은 아름다워’의 가치다.
“노래를 통해서 공감하고 이해하고 자기를 되돌아볼 수 있는 선물 같은 영화인 것 같아요. 전 ‘인생에서 중요한 게 무엇일까’라는 걸 많이 느꼈거든요. 최초의 뮤지컬이라는 의미도 있지만 그건 직관적인 거고, 조금이라도 웃다가 울고 그런 감정이 들었다면 좋을 것 같아요. 영화가 끝나고 돌아가는 길에 옆에 있는 사람들을 한 번쯤 생각해 보는 시간이 됐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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