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경험한 한국의 영화 촬영 현장의 환경을 보면 일본보다 좋습니다. 영화 스태프들이 성폭력 방지 교육을 수강해야 하는 것을 비롯해 어떤 것이 다른지 생각해 보고 놀랐습니다. 폭력이 일어나기 힘든 구조를 만들어가고 있다는 것도 들었습니다. ‘정말 괜찮다’는 믿음을 줄 수 있는 시스템을 도입할 힌트를 얻은 듯 합니다.”
일본의 거장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 올 6월 개봉한 영화 ‘브로커’로 부산국제영화제를 찾아 바쁜 일정을 소화하는 와중에 8일 ‘영화 환경 개선을 고민하는 한·일 영화단체 간담회’에 모습을 보였다. 고레에다 감독은 간담회를 공동 주최한 a4c(일본CNC설립을 요구하는 모임)의 대표를 맡고 있다.
한일 양국 영화단체 종사자들은 이날 부산 해운대구 영상산업센터에서 3시간 넘게 간담회를 열었다. 이번 간담회는 a4c를 함께 하는 일본 감독들이 DGK(한국영화감독조합), 한국독립영화협회 등에 모임을 제안해 전격적으로 열린 것으로 전해졌다. 이들은 이 자리에서 양국의 영화 창작 환경 현황을 공유하고, 향후 한일 및 아시아 영화인들의 정기적인 교류·연대 방안 등을 논의했다. DGK 대표인 오기환 감독은 “마주 앉아 이야기하니 노동 환경, 촬영장의 성희롱·성폭력, 창작자면서도 정당한 권리를 인정받지 못하는 상황 등 고민이 너무 똑같았다”고 말했다. 고영재 한국독립영화협회 이사장은 “우리도 영진위의 시스템을 발전시키고 싶은데 그조차 없는 일본의 상황이 안타깝기도 하다”며 “지위가 있는 분들이 용기 있게 나선 모습에 응원하는 마음”이라고 말했다.
이윤정 DGK 부대표는 “지속 가능한 창작환경을 만드는 조건 중 하나는 저작권법 개정을 통해 정당한 보상을 받는 것이라 생각한다”며 “이 점을 일본 감독님과 게스트들에게도 잘 말씀드렸다”고 전했다. 또한 국내에서 티켓 가격의 3.3%를 징수해 조성하는 영화발전기금에 대한 이야기도 논의됐다.
일본에서도 최근 들어 영화 촬영 현장에서 성폭력, 성희롱이 문제가 된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 측 한 참석자는 “일본에서 가이드라인을 준비할 때 가장 많이 참고한 것이 한국의 것이다. 양국의 영화 현장이 비슷하다고 느꼈다”며 “우리는 일부 감독들이 모여 만든 거라서 이걸 어떻게 업계 전체로 확대할지 고민이 있다”고 말했다. 박현진 DGK 부대표는 “큰 사건이 터진 후 실태조사, 성폭력 예방교육 등의 실시로 눈에 보이는 발전이 있던 건 사실”이라면서도 “다만 급속히 나아졌다고 착각한 게 현재 우리의 상황 아닌가 한다. 시스템적으로 나아지기 위한 실행에 대해서는 갈 길이 멀다”고 전했다.
양측은 앞으로 지속적으로 한일 및 아시아 영화인들의 정기적인 교류와 영화정책 혁신을 위한 연대의 계기를 마련한다는 계획이다. 고레에다 감독은 “오늘 나눈 이야기를 참고로 각계각층에 이야기를 전달할 포인트를 만들고 싶다”며 “오늘을 시작으로 교류를 지속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오 감독은 “한일 영화감독이 연대해 잘못된 저작권법 고칠 수 있도록, 서로 강한 연대의 자리를 마련했으면 한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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