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이자 2006년부터 2014년까지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을 지냈던 벤 버냉키(사진) 브루킹스연구소 명예선임연구원이 “(최근의 세계경제 불안은) 시간이 흐르면서 문제가 더 커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당장의 금융 불안이 가시화되지 않지만 미국 등 세계 각국에 도처한 리스크가 결국 금융 시스템 문제로 비화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그는 세계경제의 핵심 불안 요인으로 미국의 그림자금융(shadow banking)과 유럽의 지정학적 문제, 강달러로 인한 신흥국의 자본 유출을 꼽았다.
버냉키 전 의장은 노벨 경제학상이 발표된 10일(현지 시간) 미국 워싱턴DC 브루킹스연구소 주최로 열린 기념 기자회견에서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은행들은 과거보다 훨씬 튼튼한 재무구조를 갖추고 있다”면서 “다만 이야기하고 싶은 부분은 미국 대출 기관의 절반은 소위 그림자금융이라고 부르는 곳들에서 이뤄진다는 점”이라며 금융 규제의 사각지대를 언급했다. 그림자금융은 예금 기관이 아니면서 대출 등 사실상 은행의 역할을 하는 곳을 말한다. 버냉키 전 의장은 금융위기 당시에도 주택담보부증권(MBS) 등의 파생상품을 만든 모기지 업체와 보험사 등을 약한 고리로 지적한 바 있다.
그는 “금융 시스템의 안전성과 건전성을 볼 때는 은행뿐 아니라 비은행 대출 기관도 함께 지켜봐야 한다”며 “그림자금융은 2008년에 발생했던 문제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했다”고 말했다. 금융위기 이후 대형 은행에 대한 자본 규제는 강화했지만 그림자금융은 여전히 불안 요인으로 남아 있다는 의미다. 실제 현재 미국에서는 자동차대출 자산유동화증권(ABS) 시장이나 암호화폐 등을 새로운 그림자금융으로 꼽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버냉키 전 의장은 미국보다 유럽과 신흥국의 금융 부실 가능성을 더 높게 봤다. 그는 “광범위하게 보면 미국 밖에서 금융 안정성 우려가 커지고 있다”며 “러시아의 천연가스 차단에 따른 유럽의 금융 불안은 명백하고 또한 신흥국은 아주 강한 달러와 자본 유출 문제로 금융 불안에 직면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버냉키 전 의장은 특히 불안 요인의 영향이 누적되고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는 “이번 회차(episode)에 금융 문제가 불거지지 않더라도 시간이 흐르고 이 같은 요인이 금융 부문에 계속 부담을 준다면 앞으로 문제가 커질 수 있다”며 “이 부분이 우리가 지금 정말로 주의 깊게 살펴야 하는 문제”라고 꼽았다.
버냉키 전 의장은 다만 강달러의 원인으로 꼽히는 연준의 금리 인상 기조는 지지하는 발언을 잇따라 내놓았다. 그는 우선 전 세계에서 금리가 급격히 상승하고 있다는 질문에 대해 “몇 년 전과 비교하면 급격히 오르는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역사적인 관점에서 보면 그다지 높은 수준은 아니며 장기적으로 금리는 다시 내려갈 것”이라고 답했다. 미국 경제가 연착륙할 수 있는지에 대한 질문에는 “연준에 매우 어려운 도전”이라면서 “답은 모르지만 전 동료들에 대해 (해낼 것이라는) 자신감이 있다”며 응원했다.
동시에 연준이 긴축 과정에서 정책 목표를 유연하게 적용할 수 있다는 의견도 남겼다. 2% 물가 목표제가 대표적이다. 최근 시장 일각에서는 수치를 상향하거나 목표 기준 자체를 바꿔야 하는 것 아니냐는 논의가 나오고 있다. 2%라는 목표가 과도해 달성 추진 과정에서 고통이 클 수 있기 때문이다. 버냉키 전 의장은 2% 물가 목표제를 처음으로 연준에 도입한 장본인이기도 하다. 그는 “이는 일종의 중기 목표로 항상 2% 아래로 물가를 유지해야 한다거나 6개월 내에 달성해야 하는 그런 개념이 아니다”라며 “통화정책의 효과가 나타나기 시작할 때 이를 보고 연준이 속도를 결정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수상으로 버냉키 전 의장은 연준 의장에 재임하며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역사상 유일한 경제학자로 등극했다. 이에 이날 회견장에서는 ‘젊은 경제학도에게 조언을 해달라’는 질문이 나오기도 했다. 버냉키 전 의장은 “살면서 배운 교훈은 무슨 일이 일어날지 전혀 알 수 없다는 것”이라며 “과도하게 계획을 세우지 말라”고 했다. 그는 “당신이 20년 뒤에 뭐가 돼 있을지 알 수 있다고 생각지 말고 그저 다양하게 경험하고 배우면서 여러 부류의 많은 사람들과 일하라”며 “이것이 우리 사회와 경제에 예상치 못하게 일어나는 변화를 다룰 수 있는 유연성을 갖추게 되는 방법”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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