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주요 반도체 장비 업체인 KLA가 12일(현지 시간)부터 SK하이닉스(000660)를 포함해 중국에 기반을 둔 고객사에 납품을 중단한다는 보도가 나왔다. 우리 정부가 삼성전자(005930)와 SK하이닉스 중국 공장이 미국의 제재 영향권에 들지 않도록 조치를 취하고 있지만 미국의 강도 높은 중국 제재가 양사 제품 생산에 적지 않은 타격을 입힐 가능성이 짙어지고 있다.
11일 로이터통신은 소식통을 인용해 KLA가 중국 기반 고객사에 제품과 서비스 제공을 중단하겠다는 방침을 통보했다고 보도했다. 소식통은 중국에 있는 회사 직원이 KLA 법무팀으로부터 “중국 시각으로 11일 오후 11시 59분부터 18㎚(나노미터·10억분의 1m) 이하 D램과 128단 이상 낸드플래시 기술 및 고급 로직 칩 등을 첨단 반도체 제조사에 납품하는 것을 중단한다”는 내용의 e메일을 받았다고 전했다. 이 소식통은 인텔과 세계 2위의 메모리반도체 제조사인 SK하이닉스가 소유한 중국 반도체 공장에도 장비 공급이 중단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번 통보는 미국 조 바이든 행정부의 대중 반도체 수출 통제를 준수하는 차원에서 이뤄진 것이라고 로이터는 밝혔다. 미 상무부는 7일 미국 기업이 △18㎚ 이하 D램 △128단 이상 낸드플래시 △14㎚ 이하 로직 칩을 생산하는 중국 기업에 반도체 장비를 수출하는 것을 사실상 금지하는 내용의 수출 통제 조치를 발표했다. 로이터는 “이는 전 세계 반도체 및 장비 제조 업체가 직면한 거대한 도전”이라고 평가했다. 아울러 최대 시장인 중국으로의 수출에 차질이 생긴 KLA에도 타격을 줄 것으로 전망된다. KLA는 6월로 끝난 지난 회계연도 매출의 30%가 중국에서 나왔다.
이 규제에 따르면 중국 기업이 아니더라도 생산 시설이 중국 기업의 소유면 ‘거부 추정 원칙’이 적용돼 사실상 수출이 금지된다. 중국에 생산 공장을 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도 별도로 미 당국의 심사를 거쳐야 한다. SK하이닉스는 중국 공장을 계속 가동하기 위해 미 상무부의 허가를 받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번 조치로 직접적인 피해가 예상되는 중국 기업들로는 양쯔메모리테크놀로지(YMTC)와 창신메모리테크놀로지(CXMT), 반도체제조인터내셔널(SMIC)이 있다. 로이터는 이들 회사가 KLA의 통보와 관련해 아직은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고 전했다.
7일(현지 시간) 미국의 중국 신규 제재 발표 이후 우리 정부는 이 조치가 국내 반도체 산업에 제한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내다봤다. 산업통상자원부는 “미국이 예외적 허가 절차를 통해 삼성전자·SK하이닉스가 운영 중인 중국 공장의 생산에 차질이 없도록 안정적인 공급을 보장하기로 했다”며 “한미 간 수출 통제 워킹그룹을 정례 협의 채널로 활용할 것”이라고 밝혔다.
다만 예상과 달리 바이든 정부의 칼날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중국 법인으로도 향하게 되면 양사는 주력인 메모리 생산에 큰 문제를 겪을 가능성이 크다. 현재 삼성전자는 중국 시안 공장에서 낸드플래시를, SK하이닉스는 우시 공장에서 D램을 생산하고 있다. 두 공장에서는 12인치 웨이퍼 기준 약 20만 장의 웨이퍼를 만들고 이는 양사 낸드·D램 생산의 약 40~50%를 차지한다. 이 라인에는 KLA 외에도 어플라이드머티어리얼즈·램리서치 등 미국의 주요 장비 반도체 회사들의 기기가 상당수 배치돼 있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