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창단 60주년을 맞은 국립무용단이 기념 작품으로 고구려 호동왕자 설화의 현대적 재해석을 담은 신작 무용극 ‘호동’으로 돌아온다. 국립무용단의 정체성이라 할 만한 무용극 장르를 들고 왔을 뿐 아니라 이 장르를 확립했다고 평가받는 고(故) 송범 초대 단장의 1974년작 ‘왕자 호동’을 48년만에 계승했다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이야기는 대중에 잘 알려진 호동왕자와 낙랑 공주의 사랑이야기 대신 아버지 대무신왕의 뜻에 반하다가 자결로 내몰린 호동의 모습에서 국가와 개인의 관계를 바라보는 쪽으로 초점을 옮겼다.
국립무용단은 무용극 ‘호동’을 27~29일 서울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공연한다. 이에 앞서 11일 국립극장 종합연습실에서 제작발표회를 열어 일부 장면을 시연했다. 공개된 장면에서 무용수 44명은 일사불란한 군무를 선보이며 같은 방향으로 팔을 뻗고 달려들었다. 곡선을 주로 사용하는 한국무용과 달리 직선적 춤이 두드러지는데, 대무신왕으로 상징되는 국가적 집단의 군사적 동원을 형상화했다. 반면 이런 집단에서 적응하지 못하는 개인인 호동은 괴로워한다. 등장하는 무용수 44명 모두가 호동의 내면과 외면을 다양한 방식으로 안무를 통해 표현해낸다. 개개인 모두가 호동처럼 집단 속에서 소외될 수 있음을 드러내는 장치다.
연출을 맡은 이지나 연출가는 시연이 끝난 후 “전쟁을 추구하는 사회 속에서 평화를 추구한 호동의 내면이 피폐해지는 과정을 통해 사회의 통제와 개인의 의지가 부딪히는 현대 사회에 메시지를 전달한다”고 작품을 소개했다. 적국의 공주와 사랑에 빠진 후 이를 이용해 나라를 배신하도록 하고 자결까지 몰고 가는 기존의 서사는 현대에 받아들여지기 어려운 만큼 배제했다. 대신 국가와 개인의 가치관이 충돌할 때 자명고가 울린다는 설정을 넣었다.
이번 공연은 오랜만에 선보이는 무용극일 뿐 아니라 국립무용단 소속 무용수 44명 전원이 한 무대에 오르는 대작이다. 무용극은 한국적 춤에 서구의 고전발레 형식을 차용한 장르로, 송범 초대 단장 이래 국립무용단의 정체성과도 같았지만 1990년대 이후 대중의 외면을 받고 있다. 손인영 국립무용단 예술감독은 무용극을 오랜만에 60주년 기념작으로 선보인데 대해 “무용극은 우리나라만 갖고 있는 독특한 형식이다. 이 시대에 맞게 만들어가는 것도 우리 전통의 현대화 과정에 필요한 절차로 국립무용단이 국립단체로서 해 나가야 할 과제”라고 강조했다.
국악기 연주와 각종 노이즈를 활용한 전자음악 사운드가 뒤섞인 음악은 춤에 역동성을 크게 더했다. 시리즈물 ‘오징어 게임’으로 유명한 이셋 음악감독은 힘 있는 국가가 두드러지는 장면에서 국악기 연주를, 소외된 개인을 표현할 때는 전자음악을 각각 구사했다. 이셋 음악감독은 “국악기 아닌 악기를 국악 주법으로 연주한 결과 그 DNA조차 느낄 수 없는 음악이 나왔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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