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정부가 유엔 인권이사회(HRC) 이사국 선거에서 낙마했다. 2006년 이사국 신설 이후 이번이 처음이다. 정부는 올해 입후보한 국제기구 선거가 유독 많아 선택과 집중을 하지 못했다는 입장이다.
12일 외교부 등에 따르면 한국 정부는 11일 오전(현지시간) 미국 뉴욕 유엔총회 본부에서 열린 2023~2025년 임기 이사국 선거에서 낙마, 연임에 실패했다. 한국은 그간 2006~2008년, 2008~2011년, 2013~2015년, 2016~2018년, 2020~2022년 인권이사회 이사국을 지냈다. 인권이사회는 한 국가가 두 번 연속 이사국을 지내면 최소 1년은 이사국을 지내지 못하도록 규정하고 있어 한국은 2012, 2019년 이사국에서 물러났다.
한국이 입후보한 아시아태평양 지역은 4개 공석에 6개국이 입후보해 경합이 치열할 것으로 예상됐다. 한국은 최종 5위에 해당하는 득표를 받아 당선에 실패했다. 대신 방글라데시와 몰디브, 베트남, 키르기스스탄이 이사국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외교부 당국자는 “금년도 국제기구 선거에 과다하게 입후보해서 선택과 집중을 하지 못한 점이 가장 크게 작용했다”며 “우리의 과도한 입후보로 상호 또는 교환 지지를 위한 가용표가 조기에 소진됐다”고 설명했다. 국제기구 선거에서는 국가들이 상호 후보에 대한 표를 교환하는 ‘상호·교환 지지’를 하는 게 관례인데, 한국이 올해 다수 선거에 입후보하다 보니 교섭력이 약해졌다는 얘기다.
앞서 외교부는 지난해 12월 제2차관 주재로 선거조정위원회를 열고 올해 정부 또는 한국민이 입후보할 국제기구 선거를 선정하고, 이를 △중점선거 △주요선거 △일반선거로 구분해 대외 교섭을 벌여왔다. 중점선거의 경우 국가 이익에 기여하는 정도가 매우 큰 선거로 진출 필요성이 제일 높다. 그런 만큼 전 재외공관망을 통해 상호·교환 지지를 실시한다. 주요선거는 국가이익에 기여하는 정도가 비교적 큰 선거로 진출 필요성이 있으며 경합이 예상되는 선거다. 거점공관을 위주로 교섭을 실시한다. 일반선거는 경합 정도가 약할 것으로 예상돼 상대적으로 교섭력을 크게 쏟아붓지 않는다.
올해는 전 재외공관망이 달라붙어야 하는 중점선거가 4번이나 치러져 유엔 인권이사회 이사국 선거에 써야 할 교섭력이 상대적으로 줄었다는 게 외교부 설명이다. 2020년과 지난해에는 중점선거가 각 1번 치러졌다. 주요선거도 올해는 6번(2020년 5번·지난해 3번)으로 적지 않았으며 일반선거는 총 4번(2020년 5번·지난해 6번) 있었다. 2018년과 2019년에는 중점선거가 각각 3번이었지만 주요선거가 각 2번, 일반선거가 각각 4번·6번으로 올해만큼 선거 부담이 크지 않았다고 외교부 당국자는 전했다.
인권이사회 이사국 선거가 올해 치러진 14개 선거 중 13번째로 실시된 점도 불리하게 작용했다고 외교부는 판단했다. 여타 경쟁국들은 적어도 1~2년 전부터 교섭 활동에 들어갔지만, 한국은 다른 선거 교섭 활동 때문에 올해 하반기 들어서야 인권이사회 이사국 선거와 관련한 교섭을 본격 개시했다고 한다. 당국자는 “우리나라가 주요 국제기구에 계속해 진출하는 것 아니냐는 견제 심리가 일부 작용했을 가능성도 있다”고 부연했다. 아울러 “이번 선거 결과와 무관하게 국제사회와 협력하면서 대한민국의 높아진 위상과 유엔헌장의 이상에 부합하는 다자외교를 지속해나갈 것”이라고 전했다.
여권에서는 한국의 인권이사회 진출 실패 책임을 전임 정부에 돌렸다.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유엔 인권이사국 연임 실패는 예고된 일이었다”면서 “인권변호사 출신 대통령과 입만 열면 인권을 부르짖던 사람들의 실체”라고 주장했다. 박정하 국민의힘 수석대변인도 “‘북한의 심기보좌’를 자처했던 문재인 정권 외교의 결과가 국제적 망신으로 부메랑이 돼 돌아왔다”며 “이것이 진짜 ‘외교참사’”라고 직격했다. 태영호 국민의힘 의원은 민주당을 향해 “정쟁뿐인 친일 공세를 멈추고 북한인권재단 이사 추천 등 국제사회가 요구하는 공통의 가치인 인권 문제 해결에 동참하라”고 촉구했다. 유엔 사무에 정통한 한 외교 소식통은 “그런 점도 영향이 없지 않았을 것”이라며 “이런 식의 선거 결과는 유례가 없는 일”이라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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