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정부가 지난 7일 발표한 대중 반도체 수출 통제조치의 여파가 하나둘 현실화하고 있다. 미국 반도체 장비업체들이 중국 기업에 대한 기술 지원을 중단하는 등 ‘손절’에 들어간 가운데 주요 시장을 포기한 만큼 실적 전망을 하향 조정하는 기업도 등장하고 있다.
12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미국 반도체 장비업체 KLA와 램 리서치는 중국 메모리 반도체 생산업체인 양쯔메모리테크놀로지(YMTC)에 파견했던 기술자와 직원들을 철수시켰다. 파견 직원들은 최첨단 반도체 생산장비에 대한 전문 지식을 갖춘 인력들로 미국에서 납품한 반도체 장비에 대한 기술 지원 등을 담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반도체 장비업체들은 YMTC에 설치된 자사 장비에 대한 지원과 신규 장비 설치도 이미 중단했다.
WSJ는 “미국 기업의 지원이 계속해서 중단되면 YMTC와 같은 중국 업체들은 반도체 생산장비의 업그레이드와 유지는 물론 향후 반도체 개발에도 타격을 입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미국 기업들이 이렇듯 중국과 거리두기에 나선 것은 조 바이든 행정부의 대중 반도체 수출 통제와 발을 맞추기 위한 행보로 해석된다. 미국 상무부는 지난 7일 미국 기업이 중국 내 반도체 생산기업에 반도체 장비를 수출하는 것을 사실상 금지하는 내용의 수출 통제조치를 발표했다. 18나노(10억분의 1m) 이하 D램과 128단 이상 낸드플래시 등을 만드는 중국 기업에 반도체 장비를 판매하려면 상무부의 허가를 받도록 했는데 허가 기준이 까다로워 사실상의 ‘수출 금지’라는 평가가 나온다.
네덜란드 반도체 장비업체인 ASML도 미국 내 직원들에게 중국 고객에 대한 서비스를 자제할 것을 지시했다고 이날 블룸버그통신이 보도했다. ASML의 미국 경영진들은 최근 현지 직원들에게 “추후 통지가 있을 때까지 중국 내 고객에 직·간접적인 서비스 및 지원을 자제하라”고 통보했다.
혼란을 겪는 건 중국 반도체 업계만이 아니다. 미국 반도체 장비업체들도 최대 고객 중 하나인 중국에 제품 판매가 어려워지면서 타격이 불가피해진 분위기다. 세계 1위 반도체 장비 업체인 미국 어플라이드 머티어리얼즈는 미국의 수출 규제로 올 4분기 매출이 당초 예상보다 최대 4억 달러(5700억 원) 감소할 것이라고 밝혔다. 당초 올 4분기 매출을 62억5000만~70억5000만 달러로 예상했는데 이를 61억5000만~66억5000만 달러로 하향 조정한 것이다. 회사는 “중국으로의 추가 수출 허가 등을 요구하고 있다”고 전했다.
비벡 아리아 뱅크오브아메리카 애널리스트는 “미국 정부의 최근 규제가 심각한 수준이며 최대 고객인 중국과의 경제적 갈등을 고조시키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 규제로 어플라이드 머티어리얼즈(AMAT)와 같은 벤더의 내년 매출이 70억 달러 가량 감소될 것으로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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