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인권위원회가 여성가족부(여가부) 폐지에 관한 내용이 담긴 정부조직법 일부개정법률안과 관련해 여가부를 폐지하기보다는 '성평등부'와 같은 성평등 정책 전담 기구로 개편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공식 의견을 냈다.
인권위는 14일 제30차 상임위원회를 열고 논의를 거쳐 국회의장에게 여가부 폐지로 여성 인권, 성평등 정책이 전반적으로 후퇴할 우려가 있는 만큼 신중히 검토해야 한다는 의견을 표명하기로 의결했다.
인권위는 “여가부 폐지는 여성인권 및 성평등 정책의 전반적인 후퇴로 이어질 우려가 있으므로 신중하게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짚었다. 또 “다양한 인권적 과제들을 성평등 관점에서 조율할 수 있도록 ‘성평등부’와 같은 정책 전담기구로 개편할 필요가 있다”고 의견을 모았다.
인권위는 여가부의 본질적 기능이 관행적이고 구조화된 성차별 문제를 드러내고 해소시키기 위하여 성평등 정책의 컨트롤타워 역할을 하는 것이라고 보았다. 그러나 이런 여가부의 업무를 쪼개어 각 부처로 이관하면 성평등 정책을 조정하고 총괄하는 '컨트롤타워'가 없어져 유기적으로 연결되지 못하고 표류하게 된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각 부처의 고유업무에 비해 여가부가 담당하던 업무가 후순위로 밀리는 등 성평등 정책의 전반적인 후퇴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했다.
아울러 유엔 여성차별철폐위원회가 한국 정부에 성평등 정책 전담기구의 권한을 강화하라고 권고했고, 2020년 기준 194개국에 성평등 전담기구가 설치돼 있으며 160개국에는 독립부처 형태로 존재한다는 점을 들어 시대적 흐름을 고려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인권위는 “많은 국가에서 별도의 성평등 전담기구를 둔 이유는 모든 정책을 집행하는 과정에서 성평등 관점을 반영하는 것이 국가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며 “이런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독립부처 형태의 성평등 전담기구가 가장 효율적이라는 것을 확인했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인권위는 세계경제포럼(WEF)이 발표한 세계성별격차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성 격차지수가 △2021년 156개국 중 102위 △2022년 146개국 중 99위로 하위권에 머문다고 밝혔다. 아울러 “성별 임금격차는 31.5%에 달하는 등 우리나라의 성평등 수준은 선진국 반열에 오른 경제수준에 비하여 매우 낮은 수준에 머물러 있어 여가부 폐지를 논할 때는 아니”라고 덧붙였다.
국민의힘이 7일 낸 정부조직법 일부개정법률안은 여가부를 폐지하고 여가부의 청소년, 가족, 여성정책 등 사무를 보건복지부로 이관한 뒤 인구가족양성평등본부(본부)를 신설한다는 내용이다. 또 여성 고용기능은 고용노동부로 이관하기로 했다.
인권위는 행정안전부가 이 개정안과 관련해 의견조회를 요청하면서 이날 회의를 열고 이렇게 의결했다. 인권위는 “여가부 폐지 관련 부분은 성평등 정책의 전반적인 후퇴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아 바람직하지 않다”며 “국회 논의 과정에서 이러한 점이 심각하게 고려되기를 바란다는 입장을 전달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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