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의 오랜 우방인 벨라루스가 우크라이나전에 뛰어들 것이라는 징후가 하루가 다르게 늘고 있다. 최근 합동부대 구성 및 전개를 발표한 데 이어 테러 대응 체제까지 도입하면서 우크라이나 북부 국경에 대한 위협 수위는 날로 높아지고 있다. 아직 직접 참전이 결정됐다고 보기는 이르지만 우크라이나 입장에서는 벨라루스의 이 같은 동향만으로도 남·동부 러시아군 점령지 탈환에 집중하던 병력 분산이 불가피하다는 점에서 사실상 전선이 확대된 것이나 다름 없다는 분석이 나온다.
14일(현지 시간)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블라디미르 마케이 벨라루스 외무장관은 이날 러시아 일간지와의 인터뷰에서 “(알렉산드르 루카셴코) 대통령이 유관 기관과 논의한 후 대테러 작전 체제를 선포했다”며 “인접 국가들이 벨라루스 영토 도발을 계획하고 있다는 정보 때문”이라고 밝혔다. 이 조치로 벨라루스 보안군은 주변국의 도발을 막고 대응할 수 있도록 신원 확인, 통신 감청 등 광범위한 권한을 부여받게 된다.
이는 벨라루스가 최근 여러 차례 발표한 러시아 지원 행보의 일환으로 풀이된다. 벨라루스는 앞서 10일 러시아와의 합동부대 구성 사실을 알리며 1000명 이상의 러시아군을 자국에 배치하겠다고 밝혔고 11일에는 군대 전투태세 점검에 들어갔다. 벨라루스는 2월 우크라이나 침공 직전 러시아군에 집결지를 제공한 바 있으며 지금도 사실상 ‘러시아군 미사일 기지’로 기능하고 있다.
심상치 않은 벨라루스의 움직임으로 1000㎞에 달하는 북쪽 국경을 맞댄 우크라이나의 우려는 커지고 있다. 러시아·벨라루스 합동부대가 국경에 배치되면 전선이 확대되는 것이나 마찬가지기 때문이다. 싱크탱크 뉴지오폴리틱스의 미하일로 사무스 대표는 파이낸셜타임스(FT)에 “러시아는 북쪽에서 위협을 가해 남동부 러시아 점령지 반격에 집중하던 우크라이나군을 북쪽으로 불러들이려 할 것”이라며 “새로운 전선은 우크라이나에 도전이나 다름없다”고 진단했다. 군사 전문가 콘라드 무지카는 “벨라루스가 주변국의 도발 위험을 계속 언급하는 것은 향후 직접적인 군사 개입의 근거를 만들기 위한 ‘거짓 깃발 작전’일 수 있다”고 풀이했다.
벨라루스에 러시아군이 배치될 경우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회원국과의 긴장이 높아진다는 점도 문제다. 벨라루스는 북서쪽으로 모두 나토 회원국인 라트비아·리투아니아·폴란드와 국경을 접하고 있다. 한 유럽연합(EU) 고위 관리는 로이터통신에 “러시아군의 벨라루스 배치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나토와 지리적으로 훨씬 가깝게 만든다”며 “나토를 향한 푸틴의 위협이 더 심해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실제로 폴란드는 11일 양국 간 긴장 고조를 이유로 벨라루스 체류 자국민에게 이곳에서 떠나라고 권고한 바 있다.
이에 따라 세간의 시선은 벨라루스가 러시아군 배치를 넘어 직접 참전을 결정할지에 쏠려 있다. 참전 가능성에 대한 전문가들의 의견이 분분한 가운데 루카셴코 대통령은 자신의 독재를 지원해주는 러시아의 참전 압박과 국내의 반전 여론 사이에서 딜레마에 처한 모양새다. 미국 싱크탱크 애틀랜틱카운슬은 “푸틴이 강요할 경우 벨라루스가 자체동원령을 내릴 수 있다는 예측도 나온다”며 “하지만 많은 전문가들은 (참전이 결정되더라도) 많은 벨라루스 군인들이 불복해 도피할 것으로 보고 있다”고 전했다.
한편 러시아가 ‘크림반도 지배의 상징’으로 자랑하던 크림대교 폭발 사건 이후 우크라이나전의 전황은 날로 격화하고 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전역을 공습하는 가운데 13일 러시아 남부 도시 벨고로드에도 포격이 이어졌다. 러시아 당국은 이를 우크라이나의 소행이라고 주장했지만 우크라이나는 러시아 미사일의 오발 사고라고 반박했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