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미국도 저소득국 부채 위험 등을 높이는 강달러의 스필오버(spillover·파급) 효과에 주목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 총재는 특히 “한은이 금리 인상에 따른 비(非)은행 금융기관 리스크와 은행의 기업 대출 증가세를 유심히 지켜보고 있다”고 말했다.
국제통화기금(IMF)·세계은행(WB) 합동 연차총회에 참석하기 위해 워싱턴DC를 방문한 이 총재는 15일(현지 시간)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PIIE)에서 열린 특파원단과의 간담회에서 “강달러에 따른 스필오버 효과가 이번 총회의 주요 논의 주제였다”며 이같이 강조했다. 그는 “제롬 파월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이 미국의 인플레이션이 높기 때문에 당분간 물가 안정을 위해 계속 금리를 올리는 추세를 가져가야 한다는 점을 명확히 하면서도 동시에 그런 정책이 미치는 여러 스필오버도 유심히 보고 있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이 총재는 “영국 연기금 사태에서 보듯 스필오버가 달러 외채가 많은 국가나 저소득국뿐만 아니라 순채권국 등 예상하지 못한 곳에서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며 “특히 비은행 금융기관의 리스크를 주목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또 “금리 상승으로 회사채 스프레드가 확대되고 있다”면서 “저신용 기업들이 은행으로 몰려 기업 대출이 높아지는 추세를 주시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강달러로 인한 신흥 시장 리스크도 고조되고 있다고 봤다. 이 총재는 “IMF에 구제금융을 요청한 나라의 숫자를 보면 당장 어려운 나라를 알 수 있는데 많이 늘었다”며 “아시아에서는 요청한 나라가 거의 없었는데 지금 많이 준비한다고 한다”고 했다.
원·달러 환율 안정을 위한 미국과의 통화 스와프 체결과 관련해서는 ‘만병통치약은 아니다’라는 취지로 답했다. 그는 “스와프가 기본적으로 심리적 안정을 가져오는 데 도움이 되는 것은 사실”이라면서 “그렇다고 ‘달러 강세가 지속될 때 환율이 절하되는 것을 막을 것이냐’에 대해서는 상시 스와프를 가진 다른 나라들도 다 절하되고 있고 2008년 스와프를 했을 때도 환율이 단기적으로 확 떨어졌지만 수개월이 지나면서 다시 트렌드를 따라 절하됐다”고 설명했다.
이 총재는 다만 한은이 보유한 미 국채를 담보로 연준으로부터 달러화 자금을 조달하는 ‘피마 레포’ 활용 가능성에 대해 “2008년 등을 겪으면서 많은 안전장치와 도구가 생겼다”면서 “지금은 쓸 필요가 없지만 필요한 상황이 오면 쓸 수 있다”고 밝혔다.
해외 투자가들에 환율 리스크에 각별히 주의할 것도 주문했다. 그는 “환율이 1,100원일 때와 1,400원을 넘을 때의 투자 전략은 달라야 하지 않겠느냐”며 “미국이 금리 인상 기조를 바꾸면 원화가 빠르게 절상될 가능성도 배제하지 말라는 조언”이라고 전했다.
한편 이 총재는 PIIE에서 ‘글로벌 통화정책 긴축 강화와 한국의 통화정책’에 대한 강연을 통해 “주택담보대출에서 차지하는 변동금리 대출 비중이 미국은 10%도 미치지 못하지만 한국에서는 60%가 훨씬 넘는다”며 “한국에서의 50bp(1bp는 0.01%포인트) 금리 인상은 미국의 75bp 인상에 버금가는 것으로 생각해도 무방하다”고 말했다.
그는 ‘포워드 가이던스(사전적 정책 방향 제시)’의 어려움도 토로했다. 시장에서는 당분간 25bp씩 금리를 인상할 것임을 시사한 이 총재의 발언이 한미 금리 역전 폭을 키울 것이라는 우려를 낳으면서 원화 절하를 심화시켰다는 비판이 적지 않았다. 이 총재는 “포워드 가이던스를 제시할 때 9월 FOMC 결정을 보고 다시 고려할 것이라고 조건부를 이야기했을 뿐만 아니라 이를 강조하기 위해 ‘한은은 정부로부터 독립돼 있지만 연준로부터는 독립돼 있지 못하다’라는 말로 설명도 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런 설명에도 포워드 가이던스를 비판하는 사람들은 지난 베이스라인 시나리오를 조건부로 받아들이기보다 서약(commitment)이나 약속(promise)으로 여기는 것 같다”며 “미래 금리 경로에 대해서는 가급적 언급을 피하는 것을 미덕으로 여겨왔던 오랜 방식에서 벗어나기에는 현실적으로 커뮤니케이션 측면에서 여러 가지 애로가 있는 것은 사실”이라고 고충을 호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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