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미국 상원의 마코 루비오 공화당 의원과 마크 워너 민주당 의원이 애브릴 헤인스 미 국가정보국(DNI) 국장에게 서한을 보내 중국의 메모리반도체 업체인 YMTC(양쯔메모리)에 대한 보안 검토를 요구했다. 이에 앞서 미국 언론에서는 애플이 YMTC의 메모리반도체를 아이폰 14에 탑재할 것이라는 보도가 나왔다. 글로벌 반도체 업계는 들썩였고 미 의회는 격분했다. 루비오 의원은 당시 파이낸셜타임스(FT)와의 인터뷰에서 “애플이 불장난을 하고 있다”며 “연방정부의 대대적인 조사를 받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미국 정부가 최근 발표한 전방위 대중 반도체 수출 제재에서 미검증 기업 리스트(Unverified List)에 새로 등재된 회사가 바로 YMTC다. 미국 의회가 도끼눈을 뜨고 쳐다보는 이 회사는 중국의 국영 반도체 그룹 ‘칭화유니’의 자회사로 중국의 메모리반도체 굴기를 이끌고 있다.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의 기술력에는 한참 못 미치는 것으로 평가돼왔지만 최근에는 애플의 부품사로 거론될 정도로 빠르게 성장했다. 2020년 4월에는 128단 3D 낸드플래시 개발을 완료했다고 발표해 반도체 업계를 놀라게 하기도 했다.
미국이 이번에 YMTC를 제재 리스트에 올린 것은 중국에 대한 반도체 규제에 더 이상 ‘무풍지대’는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전문가들은 분석한다. 미국은 그동안 중국이 시스템반도체 분야에서 14나노 이후 미세 공정에 진입하지 못하도록 관련 장비와 기술을 통제하는 데 주력해왔다. 하지만 이제는 메모리반도체 분야로까지 규제의 영역을 넓혔고 실제 수출통제 항목에 ‘128단 이상 낸드플래시’ ‘18나노 이하 D램’ 관련 기술 및 장비가 정확히 명시돼 있다. 워싱턴의 한 소식통은 “미국의 규제 항목은 현재 YMTC와 CXMT(창신메모리·D램)가 도달한 최상위 기술 수준”이라며 “이 단계에서 중국 반도체 기술을 동결시키겠다는 의미”라고 전했다.
미국의 제재 확대는 한국 반도체 기업들에도 상당한 영향을 끼칠 것으로 보인다. 전 세계 메모리반도체 시장의 주도권을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틀어쥔 가운데 중국 기업들이 내수 시장을 발판으로 무섭게 추격하던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단기적인 혼선이야 크겠으나 중국의 기술 발전 지연이 불가피해지면서 우리 기업들이 중국과의 격차를 벌릴 기회를 잡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아울러 미국의 전방위 제재 속에서도 중국 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공장이 미국 정부로부터 당분간 수출통제 유예를 받은 것은 적지 않은 성과로 볼 수 있다. 우리 정부 협상단은 ‘삼성과 SK는 미국의 공급망’이라는 논리로 미국 당국을 설득해낸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 입장에서는 한국 반도체 기업에 대한 의존도가 더 높아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다만 단순히 이를 한국의 ‘반사이익’으로 여기는 것은 성급한 결론이며 미국의 큰 그림을 봐야 한다는 지적이 있다. 단기적으로 한국 기업들이 중국을 따돌릴 시간은 벌겠지만 결국 미국의 최종 목적지가 ‘미국 내 공급망 구축’이기 때문이다. 미국을 대표하는 메모리반도체 기업 마이크론이 최근 뉴욕주에 무려 1000억 달러(약 142조 원) 규모의 역대급 투자를 발표한 것은 그런 차원에서 눈여겨볼 만하다. 생산 거점을 처음으로 자국 내에 구축하는 마이크론은 “미국 첨단 칩 수요를 감당하겠다”고 선언했고 ‘반도체 및 과학법(CHIPS and Science Act)’에 따라 초기 투자금의 절반가량을 정부로부터 지원 받는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이를 “미국의 승리”라고 불렀다.
이 같은 미국의 행보는 대중 반도체 수출 제재가 한국 기업들에 부여할 골든타임이 결코 길지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 워싱턴의 한 대기업 관계자는 “미국은 결코 한국 기업 좋으라고 중국을 제재하지 않는다”며 “마이크론의 역대급 투자 발표와 YMTC·CXMT 등 중국 메모리반도체 기업을 상대로 한 제재가 같은 시기에 이뤄진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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