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 공연시간 17시간의 대장정인 독일 작곡가 리하르트 바그너의 4부작 오페라 ‘니벨룽의 반지’가 약 17년만에 다시 국내에서 막을 올렸다.
17일 대구오페라하우스에 따르면, 독일 만하임국립오페라극장이 7월 공연한 ‘니벨룽의 반지’를 지난달 개막한 제19회 대구국제오페라축제의 일환으로 16일부터 공연 중이다. 국내에서 이 작품이 무대에 오른 것은 2005년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러시아 마린스키 극장의 내한공연 이후 역대 두 번째다. 해외에서도 체력 등 여러 문제 때문에 4부작을 모두 무대에 올리는 ‘링 사이클(Ring Cycle)’을 순차적으로 하지만, 한국에서는 약 일 주일 동안 모든 무대를 소화한다. 16일 1부인 ‘라인의 황금’을 공연한 것을 시작으로 17일에는 2부인 ‘발퀴레’, 19일 3부 ‘지그프리드’를 무대에 올리며, 23일 4부 ‘신들의 황혼’을 끝으로 모든 공연을 마무리한다. 1부를 제외하면 모두 공연시간이 5시간에 달한다.
만하임국립오페라극장 소속 오페라 가수들은 물론 오케스트라, 합창단 등 240명의 인원이 총출동한다. 연출을 맡은 한국인 연출가 요나 김은 “오페라 제작에 최소 2년은 걸리는 반면, 이번에는 코로나 시대 관객들의 공연을 향한 갈증을 고려해 1년만에 준비를 마치고 공연했다”고 전했다. 그는 “고국에서 이 공연을 하는 게 아직도 조금은 현실이 아닌 것 같다”며 “몇 가지 문제가 있었지만, 온 것 자체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번 공연은 화려한 무대 세트로 웅장함을 과시하는 일반적 오페라와는 다른 미니멀리즘적 접근 방식이 눈에 띈다. 우선 악기들을 상징으로 적극 활용했다. 극중 등장하는 거인족 형제의 이미지를 콘트라베이스로 표현했으며, 신전의 화려한 공간은 그랜드피아노로 표상했다. 또한 ‘라인의 황금’의 시작을 알리는 라인 강은 무대장치로 선보이는 대신 찰랑거리는 대형 스크린 위에 투사한 영상을 통해 흐르는 물의 질감을 형상화하는 식으로 표현했다. 운명의 여신 에르다는 무대 바닥 아래 오케스트라가 위치한 곳에서 깜짝 등장해 아리아를 부른다.
무대의 빈자리를 채우는 건 대형 스크린에 띄운 영상과 오케스트라의 연주다. 카메라는 무대를 누비며 인물들의 얼굴이나 뒷모습 등을 클로즈업해 그들의 감정을 고스란히 관객들에게 전달한다. 김 연출가는 “코로나로 무대 세트를 짓는 게 매우 복잡한 상황이어서 세트가 없어도 공연을 할 수 있게 해 보자는 취지”라며 “세트가 없을수록 성악가도 시대에 영향 받지 않고 자유로이 연기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신이나 요정 같은 중세 판타지적 캐릭터들에게는 현대적 분위기의 의상을 입히는 동시에 성적인 코드도 적지 않게 집어넣었다. 만하임 오페라 극장 오케스트라도 안정적 연주로 이를 뒷받침하며, 특히 웅장함을 고조시키는 역할을 하는 호른 등 관악기의 연주가 온 공연장을 울린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