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연합(EU)이 이란 당국의 '히잡 의문사' 시위 진압에 관련된 제재 방안을 17일(현지 시간) 확정했다. 이란 정부의 폭력적인 시위대 진압으로 연일 사망자가 늘어나는 가운데 15일 시위 참가자들이 대거 수용된 교도소에서 의문의 화재까지 발생하며 이란 시민들을 향한 국제사회의 우려가 고조되고 있다.
이날 룩셈부르크에서 열린 27개국 EU 외무장관 회의에서 외무장관들은 복장 단속 및 시위 진압에 관여한 이란 정부 인사 11명과 4개 정부 기관 명의의 자산을 동결하고 비자 블랙리스트에 올려 여행 금지 조치를 취하기로 했다. 제재 대상에는 '도덕경찰(Morality Police)' 국장을 비롯해 이사 자레푸르 이란 정보통신부 장관과 혁명수비대 간부 등이 포함됐다.
호세인 아미르압둘라히안 이란 외무장관은 이에 반발해 EU의 제재가 "불필요한 일"이며 "계산 착오에서 비롯된 파괴적 행위"라고 밝혔다. 이어서 그는 “EU의 판단은 널리 퍼진 허위 정보에 근거한다”면서 “폭동과 공공기물 파손행위는 어디에서도 용납되지 않으며 이란도 예외는 아닐 뿐”이라고 강조했다. 이란 경찰이 시위대 진압 과정에서 최루탄과 총을 동원하는 등 도를 넘은 폭력을 자행하고 있으나 이를 단순히 공공 질서 유지 행위로 치부한 것이다.
앞서 22세 여성 마흐사 아미니가 지난달 히잡을 제대로 착용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경찰에 체포돼 조사를 받다가 며칠 만에 의문사한 사건을 계기로 현재 이란 곳곳에서 대규모 반정부 시위가 이어지고 있다. 이에 이란 정부는 인터넷 연결 차단과 무차별적인 폭력, 구금 등으로 대응하고 있다. 앞서 15일에는 정치범과 반체제 인사들이 대거 수용된 교도소에서 화재 및 소요 사건이 발생해 4명이 숨지고 61명이 다쳤다. 해당 교도소에는 시위대 수백명도 구금되어 있었지만 이란 사법부는 화재가 반정부 시위와 전혀 무관하다며 선을 긋기도 했다.
한편 반정부 시위가 나날이 거세짐에 따라 이란 당국은 이를 1979년 샤 축출 이후 이란 성직자 지도부에 대한 가장 큰 도전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로이터통신은 인권단체를 인용해 “시위 과정에서 32명의 미성년자를 포함해 최소 240명이 사망했으며, 적어도 8000명 이상이 체포됐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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