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곳곳에서 말도 안 되는 기상이변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지난달 파키스탄에서 대홍수가 발생해 전 국토의 3분의 1이 침수되는가 하면 영국은 섭씨 40도가 넘는 폭염에 시달리기도 했습니다. 서울 일부 지역은 8월 시간당 140㎜를 넘은 폭우로 큰 피해를 입었죠. 이제는 날씨도 비정상이 정상인 시대가 됐습니다.”
‘날씨의 전설’로 통하는 반기성(68) 케이웨더 예보센터장은 18일 서울 구로동 사무실에서 서울경제와 만나 “앞으로 10년 내 전에는 상상할 수 없었던 재난이 올 것”이라며 이같이 지적했다.
반 센터장은 1979년 공군 기상 부대를 시작으로 43년간 날씨 예보의 외길을 걸어왔다. 2007년 대령으로 예편한 뒤 2009년 케이웨더에 합류했다.
반 센터장은 원래 기상보다 천문에 더 관심이 있었다. 아폴로 11호가 인류 최초로 달 착륙에 성공한 모습에 반한 탓이다. 대학 진학 때 천문기상학과를 선택한 이유이기도 하다. 천문에서 기상으로 방향을 튼 것은 현실을 깨달았기 때문. 그는 “졸업을 앞두고 보니 취업의 문제가 있었고 우리나라에서 천문학을 한다는 게 현실적으로 어렵겠다는 판단도 섰다”며 “기상이 우리의 삶과 가장 밀접하게 관련돼 있다는 점도 예보관의 길을 걷게 된 계기”라고 설명했다.
예보관 생활은 쉽지 않다. 2년 전까지만 해도 반 센터장의 기상 시간은 항상 새벽 4시 이전이었다. 날씨 분석 자료를 받고 담당자와 토론을 한 후 최종 판단을 내리면 오전 5시 30분. 1시간 30분 만에 완벽한 날씨 예보가 이뤄져야 한다. 아침만이 아니다. 오후 2시에도 이런 과정을 반복한다. 40여 년간 한결같았던 패턴이다. 아내로부터 “건강 좀 생각해서 쉬어라”라는 잔소리는 매일 듣는 데는 이유가 있다.
반 센터장은 날씨를 예측하는 사람에게 가장 필요한 능력으로 ‘통찰력’을 꼽는다. 기상 예측 모델이 아무리 뛰어나도 정확도는 60~80% 안팎이다. 나머지 20~40%는 예보관이 메워야 한다. 통찰력이 필요할 수밖에 없다. 거저 생기는 것은 아니다. 끊임없이 공부하고 의문을 제기해 자신만의 능력을 갖추는 게 필요하다. “공군에 있을 때는 우리나라에 관련 서적이 없어 외국에서 책과 잡지·논문들을 주문해 최신 정보를 얻었습니다. 틀렸을 때는 왜 틀렸는지, 무엇을 간과했는지 남들은 별것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까지 꼼꼼하게 꼭 정리했죠. 이런 것이 바탕이 돼 ‘기상청보다 더 예측을 잘한다’는 말도 들었습니다. 이것이 제 자부심의 바탕이 됐습니다.”
기상에 관한 한 대한민국 최고라는 평가를 받는 반 센터장이지만 최근에는 예보가 갈수록 힘들어진다고 고백한다. 기후변화가 심각해지면서 기상이변이 잦아진 탓이다. 올 8월 서울 강남을 물바다로 만든 폭우가 그랬다. 원래는 시간당 평균 20~30㎜의 강수량을 예상했지만 동작구 일대 등에서는 실제로 이보다 최대 7배나 많은 140㎜의 물폭탄이 쏟아졌다. 인간의 능력을 한참 벗어난 수치다.
문제는 이런 비정상적인 날씨에 따른 재난이 한층 더 잦아질 것이라는 데 있다. 영국의 열돔 현상이 당장 내년 서울에서 일어날지도 모른다. 포항 등 경남 일대를 쑥대밭으로 만든 ‘힌남노’보다 더 강한 수퍼 태풍이 올 수도 있다는 게 그의 판단이다. 반 센터장은 “지구온난화로 기온이 상승하면 해류 기온이 상승하고 이로 인해 폭우와 폭염·가뭄 등의 사태가 더 빈번해질 수밖에 없다”며 “이로 인해 2011년 벌어졌던 순환 정전이 다시 발생할 수도, 서울과 수도권 대부분이 물에 잠기는 사태가 일어날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그가 특히 우려하는 것은 기상이변에 따른 재난이 취약 계층에 집중될 수 있다는 점이다. 반지하방으로 폭포수처럼 쏟아지는 물폭탄에 목숨을 잃거나 폭염에도 전기료 걱정에 에어컨조차 틀지 못하는 사회적 약자들이 대표적 사례다. 재난이 이렇듯 모두에게 똑같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게 반 센터장의 판단이다. 비극을 막으려면 정부와 사회가 나서야 하지만 현재로서는 희망이 별로 없다는 것이 그의 지적이다. 그는 “현 정부건, 전 정부건 모두 말만 번지르르할 뿐 직접 행동에 나서는 모습은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며 “결국 개개인이 알아서 재난을 피하는 각자도생이 최선”이라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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