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학 사전에 의하면 재정이란 중앙정부 또는 지방정부가 행정 활동이나 공공 정책을 시행하기 위해 자금을 만들어 관리하고 이용하는 경제활동이다. 이때 정부 자금의 가장 중요한 원천은 국민으로부터 걷은 세금이고, 이를 통해 각계각층의 다양한 재정 수요를 만족시키기 위해 정부는 재정을 집행한다. 노인 빈곤 문제, 인구 고령화로 지출이 가파르게 증가할 것으로 예상되는 건강 및 의료 문제, 저출산 문제 해결을 위한 출산 및 아동 양육에 대한 지원, 북한의 도발에 대비하고 국방 현대화를 위한 국방 예산 등 재정 지원을 원하는 수요는 무수히 많다. 이렇게 다양한 재정 지원 수요에 대해 어떻게 한정된 재정 자원을 배분하는가는 어렵지만 중요한 문제다.
하지만 여러 가지 재정 수요를 효율적으로 만족시키기 위한 경제 이론의 원칙은 명료하다. 여러 재정 수요에 대해 재정 지원을 배분할 때 추가적인 재정 지원의 혜택(경제학에서는 보통 한계 혜택이라고 지칭한다)이 큰 수요 부분부터 지원을 해나가 종국적으로는 모든 부분에서 한계 혜택이 동일하게 돼야 한다. 이러한 큰 틀의 원칙이 재정지출을 결정하는 현장에서 얼마나 지켜지는지는 모르겠으나 이러한 원칙이 전혀 적용되지 않고 지출이 결정되는 재정 부분이 있어 경제학자의 눈길을 끈다. 지방교육재정교부금이라는 부분이 그러하다.
지방교육재정교부금법에 따르면 전국 초중고 교원 월급과 초중고 학교 시설 확충 등의 비용은 수혜 대상인 학생 수와 관계없이, 그리고 정부 세금 조달 상황에 상관없이 내국세(관세를 제외한 모든 세금)의 20.79%가 일괄 지급되는 지방교육재정교부금에서 충당하도록 돼 있다. 1971년 제정된 이 법의 취지는 가난으로 쪼들리는 나라 살림에도 불구하고 일정 부분을 무조건 떼어 아이들 교육에 투자해 미래를 도모하는 데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그 결과 과밀 교실로도 해결되지 않아 오전·오후반으로 운영되던 부실한 학교 시설이 개선되고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무상 의무교육이 시행됐다. 이는 경제성장 과정에서 질 높은 인적 자본 형성으로 이어져 유례없는 높은 경제성장을 이루는 데 큰 역할을 했다.
과거에는 초중고 교육 시설이 열악했기 때문에 지방교육재정교부금이 법에 의해 경직적으로 집행돼도 앞에서 언급한 한계 원칙이 어느 정도 만족됐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세월이 흘러 한국 사회의 여러 상황이 변해 경직적인 지방교육재정교부금이 지금은 재정의 효율적 배분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 이와 같은 변화의 가장 큰 원인은 학생 수 감소에 있다. 2021년 530만 명을 상회하던 초중고 학생 수는 저출산으로 2026년 500만 명 선이 붕괴되고 2030년에는 400만 명 수준으로 급격하게 감소할 것으로 추계된다. 따라서 지방교육재정교부금이 현재와 같이 집행된다면 이미 세계 1위 수준인 초중고생을 위한 교육투자는 2030년에 이르면 두 배 가까이 급증할 것으로 예상된다.
경제학 원리가 전혀 적용되지 않는 지방교육재정교부금으로 발생하는 여러 가지 문제가 언론을 통해 보도되기도 한다. 전국의 지방 교육청에서 발행한 지방채 잔액은 3683억 원에 불과한데 교육청들은 10배가 넘는 3조 9000억여 원을 지방채 상환을 위한 예산으로 책정하고 있다.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가 최근 정부 재정지출을 늘려 나랏빚에 허덕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교육청은 돈을 쌓아놓고 있다. 또한 쌓인 돈을 주체하지 못해 시장가격보다 몇 배나 비싼 공기청정기 임대계약을 하거나 학생들은 사용하지 않는 호화 수영장을 건립해 감사를 받거나 보도되는 지방 교육청들도 있다.
상황이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법의 경직성 때문에 지방교육재정교부금 중 일부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최하위 수준인 대학교육 지원으로 전환하는 것도 어렵다. 또한 학생 수 감소의 주원인인 저출산과 아동 양육 지원으로 전환하는 것 역시 불가능하다. 다른 재정 수요 부분으로 전환이 어렵고, 내국세와 함께 증가하도록 고안됐고, 경제 원리도 전혀 적용되지 않는 지방교육재정교부금의 경직성으로 재정의 효율적 분배 원칙이 지켜지지 않고 우리의 세금은 방만하게 운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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