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가 은마아파트 정비계획안이 도시계획위원회에 최초 상정된 지 5년 만인 19일 이를 전격 통과시킨 것은 최근 부동산 경기가 침체에 접어들면서 규제 완화에 대한 운신의 폭이 커졌다고 판단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또 재건축·재개발 활성화를 통해 주택 공급을 꾸준히 확대하겠다는 오세훈 시장 및 윤석열 정부의 공약을 이행하는 차원이라는 의미도 지닌다. 이에 따라 여의도·압구정동·목동 등 서울시내 주요 재건축 사업도 한층 탄력을 받을 것으로 전망된다.
서울시는 이날 개최한 제11차 도시계획위원회 본회의에서 은마아파트 주택 재건축 정비계획 수립 및 정비구역 지정, 경관심의안을 수정 가결했다. 이에 따라 은마아파트는 기존 최고 14층, 28개 동, 4424가구에서 최고 35층, 33개 동, 5778가구(공공주택 678가구)로 재탄생하게 된다. 근린공원과 문화공원도 함께 조성하며 공공청사도 들어선다.
1979년 준공돼 올해로 43년 차가 된 은마아파트는 1996년 재건축추진준비위원회를 발족하며 재건축 사업의 첫발을 뗐지만 이후 수차례 제동이 걸리며 답보 상태를 보여왔다. 안전진단에서 세 차례나 고배를 마셨다가 2010년 네 번째 도전에서 조건부 재건축이 가능한 D등급을 받았다. 이후 주민 갈등,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35층 층고 제한 등으로 정비계획안 처리가 무산됐다. 올해 초 오 시장이 35층 규제 폐지 방침을 밝히면서 일각에서는 은마아파트가 35층 룰 폐지의 첫 적용 대상이 될 것으로 관측하기도 했다.
다만 이날 통과된 계획안에는 최고 층수가 35층으로 정해져 눈길을 끌었다. 2017년 당시 은마아파트는 49층을 고집하며 서울시와 첨예하게 대립하다 결국 심의를 통과하지 못했는데 오 시장이 해당 규제를 없애겠다고 밝혔음에도 더 낮은 35층을 제시했기 때문이다. 윤수민 NH농협은행 부동산전문위원은 "둔촌주공 사태 이후 조합들이 수익률을 낮추더라도 안정적으로 사업을 진행하자는 쪽으로 생각이 바뀌었는데 은마아파트도 그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며 “서울시 입장에서도 은마가 강남 재건축의 상징인 만큼 적절한 타협점을 찾은 것”이라고 진단했다. 서울시가 요구한 건축 배치 계획 및 공공기여 등에 대한 수정안을 은마아파트가 수용한 점 역시 이날 심의 통과의 배경으로 평가된다. 재건축 후 들어서는 5778가구 중 678가구는 소형 임대주택으로 구성될 예정이다.
전문가들은 서울시나 정부가 그동안 집값 자극을 우려해 각종 인허가 및 규제 완화에 미온적이었지만 최근 부동산 경기가 꺾이면서 스탠스가 변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서울시 관계자는 “집값 상승기냐 아니냐를 고려해 정비계획안 통과 여부를 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때(상승기)보다 부담은 덜한 것이 사실”이라면서 “문제가 없는 정비계획안들은 오는 대로 최대한 빨리 처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또 윤석열 정부가 임기 내 전국에 250만 가구를 공급하겠다고 밝히고 오 시장이 서울에서 50만 가구 이상을 공급하겠다고 한 부분도 이번 은마아파트 심의 통과에 긍정적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된다. 고종완 자산관리연구원장은 “(은마아파트 심의 통과는) 부동산 경기가 꺾인 데다 정비사업 활성화를 통한 주택 공급 확대라는 정부 방침의 혜택을 받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은마아파트 심의 통과를 계기로 서울의 주요 재건축 사업에 더욱 속도가 붙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서울시는 앞서 송파구 잠실주공5단지와 여의도 공작아파트 심의를 통과시킨 바 있다. 고 원장은 "주변의 다른 강남 재건축단지나 목동 재건축단지 등은 은마아파트의 서울시 심의 통과를 윤석열 정부의 규제 완화 신호탄으로 받아들일 여지가 있다"며 "그런 면에서 재건축의 하방을 지지하는 효과를 낼 수 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다만 침체기에 빠진 부동산 시장이 갑작스럽게 상승세로 돌아설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는 지적도 나온다. 윤 위원은 "이번 통과만을 계기로 재건축 아파트 단지들의 가격이 오르기에는 이미 시장 분위기가 너무 좋지 않다"며 "금리 인상처럼 이보다 훨씬 더 큰 요인들이 많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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