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여사가 전면에 나서기엔 좋지 않다는 판단이에요. 대통령 배우자로서 당연히 해야 하는 행사는 앞으로도 가겠지만 노출은 최소화하는 게 좋다고 봅니다.”(대통령실 A행정관)
“김 여사는 스타성이 강한 인물입니다. 어차피 공개적인 장소에 일정을 잡을 거라면 취재도 공개로 열어야 뒤탈이 없습니다. 다음 일정부터는 그렇게 해야 합니다.”(대통령실 B행정관)
김건희 여사가 공개 활동을 재개하면서 대통령실 내부에서 고민이 하나 생겼다. 공개 일정과 비공개 일정의 기준을 어떻게 세울 것인가. 김 여사가 카메라에 잡히기만 하면 야당이 집중 공세를 하니 출입 기자들의 취재까지 따라 붙는 일정 공개는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동시에 공적인 영역에서 관리돼야 할 대통령 배우자가 밀실 행보를 지속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도 곤란하다. 김 여사가 잠행을 깨고 모습을 나타낸 지난 열흘 간을 되짚어 봤다.
갑자기 등장한 선명한 봉사 사진
김 여사가 활동 재개를 알린 건 10월 13일. 대통령실은 김 여사가 전날 양천 아동학대 사건 피해자 묘역을 참배한 사실을 알렸다. “김건희 여사는 정인이 사건 2주년을 앞둔 어제(12일) 낮, 양평 안데르센 메모리얼 파크를 찾아 묘역에 참배하고 고인의 넋을 기렸습니다. 보도에 참고하시기 바랍니다”의 두 문장이었다.
대통령실은 약 두 시간 뒤 관련 사진들을 출입 기자들의 취재 지원을 위해 마련한 홈페이지에 올렸다. 참배 장면이 포함된 사진들은 총 13장으로 보도 사진에서 쉽게 볼 수 있는 구도, 고화질 파일 등으로 짐작컨대 대통령실 소속 전속 촬영 기사가 찍은 것으로 추측됐다. 김 여사가 묘소 주변의 잔가지, 잡초 등을 뽑으며 환경 미화 활동을 하는 듯한 장면도 있었다.
대통령실 출입 기자들은 이 점에 주목했다. 김 여사 일정의 성격이 달라지는 분기점이었다. 대통령실에 따르면 그간 김 여사는 태풍 수해 지역, 취약계층 자원 봉사 등을 ‘개인 자격’으로 ‘비공개’ 진행했다. 김 여사가 봉사를 한 사실이 알려지더라도 관련 사진이 공개되지 않았던 이유다. 그런데 참배 일정이 대통령실 지원을 동반해 선명한 사진 촬영까지 이뤄졌다면 언론 보도를 전제했다는 추측이 합리적이다.
15일에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김 여사가 약 두 달 전에 했다는 봉사 활동이 뒤늦게 공개됐다. 이탈리아 출신 김하종 신부(빈첸시오 보르도)가 운영하는 사회복지시설에 김 여사가 찾아왔다는 사실을 사진과 함께 알린 것이다. 대통령실은 다음날인 16일 출입기자 공지를 통해 “김 여사는 봉사활동을 마치고 우리나라의 소외계층을 위해 30여년간 헌신하신 김 신부께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함께 기도를 드렸다”고 전했다.
일련의 ‘선(先)일정 후(後)공개’ 방식의 미담에 야당은 ‘기획 미담’ 의혹을 제기했다. 안귀령 민주당 상근부대변인은 “김 여사의 정인이 2주기 추모는 ‘국민들의 관심이 쏠리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면서도 떡하니 대통령실 제공의 사진과 함께 공개됐다”며 “대통령 부인의 활동이 어떻게 관리되고 있는지 의문만 자아낸다”고 지적했다.(10월18일)
공개인 듯 공개 아닌 공개 같은 일정
기자들 사이에서도 김 여사 일정의 비공개 원칙이 부적절하다는 지적이 나온 건 18일 대한적십자 바자행사 때다. 대통령실은 17일 김 여사의 바자행사 참석 일정을 공지하면서 취재 방식을 ‘일정공개 전속’으로 알렸다. 출입 기자들이 풀단(취재 공유 그룹)을 꾸려 김 여사와 동행하는 게 아니라 대통령실 소속 직원들이 사진·영상을 찍어 출입 기자들에게 나눠주겠다는 뜻이다.
민간인들도 오는 공개된 장소에서 진행되는 행사라는 측면에선 공개 일정이지만, 정작 대통령실 출입기자들은 대통령실이 전달한 내용만 알 수 있게 돼 사실상 비공개 일정이 된 것이다. 이에 한 방송 기자는 대통령실 공지 카카오톡 채팅방에서 “공개된 일정까지 전속 기사가 담당해야 하나. 기자들이 이런 내용을 받아야 하느냐”고 지적하기도 했다.
대통령실은 이재명 부대변인 명의의 서면 브리핑을 통해 행사 종료 이후 김 여사의 활동을 다음과 같이 전했다. 김 여사가 윤 대통령과 동행하지 않고 수행한 첫 번째 일정이었지만 짧은 브리핑과 대통령실이 제공한 사진·영상 자료 외엔 김 여사의 활동을 알 수 없게 된 것이다.
21일 2022 국제치안산업대전 관람도 마찬가지였다. 윤 대통령과 김 여사는 이날 제 77주년 경찰의 날을 맞아 인천 송도컨벤시아에서 진행된 행사장을 찾았다. 경찰의 날 기념식까지는 취재 기자들이 동행했지만 기념식이 끝나고 같은 건물에서 진행된 치안박람회는 풀취재가 이뤄지지 않았다. 대신 김 여사가 신형 포승줄 제압 장치 시연을 보거나, ‘보이는 112’ 신고를 직접 시연하는 등의 모습이 대통령실 전속 카메라에 잡혔다.
공개적인 박람회 관람 일정에 풀취재가 제한된 이유에 대해서는 대통령실도 명확한 이유를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앞서 윤 대통령이 8월 24일 서울시 양재동 aT센터에서 개최된 창농·귀농 고향사랑 박람회에 참석했을 때는 풀기자들이 윤 대통령에 근접할 수 있었다. 윤 대통령과 농업인들이 나눈 대화가 생생하게 전달될 수 있었던 이유다.
文청와대 홈페이지엔 김정숙 여사 전용 코너
김 여사가 활동 반경을 넓힐수록 투명성에 대한 국민적 요구는 더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과거 문재인 정부 청와대는 김정숙 여사의 활동을 어떻게 관리했을까. 당시 청와대는 공식 홈페이지에 ‘김정숙 여사 소식’ 코너를 별도로 만들었다. 해당 코너에는 김정숙 여사의 활동을 홍보 자료 형식으로 정리한 게시 글들이 올라와 있다. 각종 연설들의 전문도 게재했다. 대통령 배우자의 활동을 보장한 대신 그 말과 행동을 공적 영역에 ‘박제’한 것이다.
반면 윤석열 정부 대통령실 홈페이지에서는 김건희 여사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다. 대통령실이 김 여사 행보와 관련해 내놓은 가장 최신 입장은 “김 여사는 미혼모와 장애아동, 노숙인 등 사회적 약자와 자연재해 등으로 어려움에 처한 분들을 위한 비공개 봉사활동을 지속적으로 이어갈 계획”이다(10월1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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