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25일 취임 후 두 번째 시정연설을 앞두고 야당이 집단으로 퇴장하는 ‘보이콧(거부권)’을 예고하자 헌법과 국회법을 꺼내들어 “시정연설을 듣도록 되어있다”며 강공에 나섰다.
윤 대통령은 24일 용산 대통령실 출근길 약식 기자회견(도어스테핑)을 통해 이 같이 밝혔다.
윤 대통령은 더불어민주당이 시정연설에 참여하는 조건으로 ‘국회 무시·야당 탄압’에 대한 대국민·대국회 사과를 요구한 데 대해 “우리 헌정사에 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대통령의 국회 출석 발언권과, 또 국회법에서 예산안이 제출되면 정부의 시정연설을 듣도록 돼 있는 국회법의 규정, 그리고 여야 합의로 25일로 일정이 정해졌는데 거기에 추가조건을 붙인다는 것을 제가 기억하기로는 우리 헌정사에 들어보지 못한 것 같다”고 말했다.
민주당은 검찰의 ‘대장동 수사’의 칼날이 이재명 대표를 향하자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범진보진영은 지난 주말 서울 도심에서 대규모 집회를 여는 등 검찰 수사에 대한 비판의 수위를 높이고 있는 상황이다. 이 와중에 윤 대통령은 25일 169석의 거대야당이 있는 국회에서 639조원의 내년도 예산안의 통과를 위한 시정연설에 나선다. 야당은 검찰 수사를 문제삼아 시정연설을 듣지 않는 보이콧을 예고했는데 윤 대통령은 이에 대응해 헌법과 국회법을 들고 나온 것이다. 입법기관인 국회가 법을 지켜야 한다는 취지로 해석된다.
실제로 헌법 제81조는 ‘대통령은 국회에 출석하여 발언하거나 서한으로 의견을 표시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또 국회법 제84조(예산안·결산의 회부 및 심사)는 ‘예산안과 결산은 소관 상임위원회에 회부하고, 소관 상임위원회는 예비심사를 하여 그 결과를 의장에게 보고한다. 이 경우 예산안에 대해서는 본회의에서 정부의 시정연설을 듣는다’고 명시하고 있다.
윤 대통령은 시정연설에서 사상 최대규모로 편성된 민생예산에 대한 야당의 협조를 요청할 전망이다. 내년도 복지부 예산은 올해보다 11.8% 증가한 109조원으로 처음으로 100조원을 돌파했다. 저소득층 생계 안정을 위한 ‘기준중위소득’을 5.47%, 장애인 연금 4.7%, 장애수당 인상 등 취약계층 지원 내용을 담았다. 또 부모급여 신설, 실직 위기 가구 지원 대상 기본중위소득 30%로 인상 등도 담았다. 내년 예산안에서 보건·복지·고용 투입되는 예산만 226조 6000억원으로 약 35%에 달한다.
윤 대통령은 미국의 가파른 금리인상으로 인한 한국은행의 도미노 금리인상,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에너지 등 공급망 불안이 덮치는 우리 경제에 방파제를 쌓기 위해 야당이 내년도 예산안 통과에 적극적으로 나서달라는 요구를 할 것으로 예상된다. 윤 대통령은 지난 5월 첫 시정연설에서 야당에 ‘코로나 추경’에 대한 협조를 요청했고 국회는 여야 합의로 통과시킨 적이 있다.
만약 민주당이 검찰의 ‘대장동 수사’를 이유로 윤 대통령의 시정연설을 보이콧할 경우 ‘민생예산보다 당 대표만 수호하는 야당’이라는 공세를 받을 수 있다.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이날 오전 “시정연설은 듣고 싶으면 듣고, 듣기 싫으면 듣지 않는 그런 내용이 아니라 국회의 책무”라며 "예산도 법정 기간 내 통과시켜야 하고 주요 법안들도 처리해야 하는데 민주당이 이런 이유를 앞세워서 의사일정 진행을 거부하고 협력하지 않는다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갈 것"이라고 말했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외부상황과 무관하게 국회는 민생 회복하고 경제 살리기 위해서 머리를 맞대는 게 국민의 바람이고 국회의 의무라고 말씀드린다”고 강조했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