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 수요를 초과한 물량에 대해 해마다 시장격리를 의무화하는 양곡관리법 개정안이 10월 19일 야당의 단독 처리로 국회 농해수위 법안심사소위를 통과했다. 필자는 정부와 농가 및 쌀 관련 업계, 학계 등과의 충분한 의견 수렴 없이 통과된 양곡관리법 개정안에 대해 향후 예상되는 쌀 산업의 수급 불안 심화와 양곡관리법 개정안의 문제점에 대해 진단하고자 한다. 또한 철두철미한 정책 분석과 대안 설명 없이 기존 양곡관리법에서 “시장격리를 의무화한다”고 한 문장만 수정해 졸속 처리한 개정안 처리 과정에 대해서도 쓴소리를 하고자 한다.
우리나라에서 쌀 산업은 국가 농업의 근간이며 농가의 주요 소득원으로 우리나라 농업의 대표성을 가지고 있다. 이와 같은 쌀의 중요성 때문에 정부는 그동안 상대적으로 다른 작물보다 쌀에 대한 재정 지원을 집중했고 쌀 수급 및 가격 문제에 더 많은 관심을 보인 것도 사실이다. 그만큼 쌀 정책의 방향 설정은 농업과 관련 산업에 파급력이 매우 크다고 할 수 있다.
남아돌아 저장 창고에서 국가 재정만 탕진
통계청의 ‘2021년 양곡소비량조사’에 따르면 2021년 1인당 쌀 소비량은 56.9㎏으로 2012년의 69.8㎏에 비해 10년 사이 18.4% 하락했고 지난 10년간 연평균 2.2% 감소세를 보였다. 반면 쌀 공급은 지난 10년간 연평균 0.7% 줄어들었다. 지난해의 경우 쌀 생산은 2018년 386만 8,045톤에서 2021년 388만 1,601톤으로 오히려 늘어나기도 했다. 이와 같이 쌀 시장의 수급은 초과 공급 구조 기조가 뚜렷하다. 원인은 수요 감소와 농가의 재배 면적 결정 과정에서 찾을 수 있다. 쌀 소비는 국민소득이 증가하고 먹거리가 다양화됐으며 육류 소비가 증가함에 따라 그만큼 줄어들었다. 반면 쌀 재배 면적은 소비 감소분만큼 줄어들지 않았다. 농가에 있어서 쌀농사만큼 쉬운 작목이 없기 때문이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쌀은 10a(아르·300평) 노동 투입 시간이 농기계 보급률 확대로 1991년 51.6시간에서 2021년 9.5시간으로 동기간 82% 줄어들었다. 1년간 쌀농사를
짓기 위해 들어가는 노동력이 타 작목에 비해 상대적으로 크게 낮고 힘이 들지 않는다. 이러한 이유로 농가가 다른 작목으로 농사를 전환하는 것을 꺼린다. 또한 그동안 정부가 가격 하락 시 추가적인 정책으로 ‘공공비축미’뿐만 아니라 시장격리 물량을 수매했기에 쌀의 공급과잉 구조는 해결되지 못한 채 몇 십년이 흘러왔다. 쌀 소비가 더 가파르게 감소하는 상황에서 생산을 과감히 줄이지 않으면 쌀값이 떨어질 수밖에 없는 초과 공급 구조이다. 여기에 공공비축미와 추가적인 시장격리 물량은 저장 창고에 쌓여 2-3년 이후 매입가의 10% 내외로 재판매하고 저장 비용은 누적돼 정부 재정만 탕진하고 있다.
시장 왜곡을 최소화에 방점 둔 정부 정책
그동안의 쌀 정책은 가격 지지와 식량안보를 목적으로 하는 수매제도, 소득 지지 및 안정을 도모하는 소득보전직접지불제와 논농업직접지불제를 근간으로 추진됐다. 그러나 수매제도는 세계무역기구(WTO) 감축대상(amber)프로그램으로 국내총보조(AMS) 범위 내에서 이뤄져야 했다. 2004년 양정개혁은 식량안보를 달성하도록 공공비축제를 도입하고 쌀 농가의 소득 안정을 도모하기 위해 소득정책을 강화했다. 그동안의 가격 지지제도인 수매제도를 폐지했으며 목표 가격을 설정하고 시장가격과의 차이에 대한 85%를 재정에서 보전하는 쌀소득보전직접지불제를 도입했다. 또한 쌀 소득 등 ‘보전직불금’은 시장가격에 연동하는 ‘변동직접지불금’과 단위면적당 일정 금액을 지불하는 ‘고정직불금’으로 구성했다. 최근에는 ‘공익직불제’로 개편해 쌀 중심의 농정 패러다임을 전환하고 작물 간의 형평성을 제고하도록 정책이 전환된 상황이다. 공익직불제도의 추진 목적은 쌀 중심의 농정 패러다임을 전환하고 작물 간의 형평성 제고, 생태·환경 관련 의무를 강화해 국민 눈높이에 맞는 농업으로 발전, 중·소규모 농가에 대한 소득 안정 기능 강화로 농가 간 형평성 제고를 주요 골자로 하고 있다. 최근까지의 정부의 쌀 정책 기조는 농가의 소득을 일정 부분 보전하되 특정 품목인 쌀 시장 개입을 최소화하고 일시적으로 가격이 급등할 때만 정부가 시장에 개입한다는 것이다. 시장 왜곡을 유발하는 정부의 직접 개입을 최소화해 시장 기능에 의한 수급 균형을 달성한다는 것이 기조이다. 이런 수단으로 현재의 양곡관리법이 해당한다. 현재 양곡관리법은 수확기 쌀 가격이 평년보다 5% 하락하거나 초과 공급량이 3% 이상일 경우 정부가 시장에 개입해 초과 물량을 시장격리할 수 있다고 돼 있고 의무는 아니다.
수급 불균형 확산과 재정 낭비 자초할 양곡관리법 개정안
양곡관리법 개정안이 시행된다면 우리나라의 쌀 산업은 어떻게 될까. 생산자에서 가공 업자, 소비자, 그리고 정부를 구분해 그 파급 영향을 살펴본다. 수매 의무화는 정부가 쌀 생산자에게 시장 수급과 상관없이 마음대로 쌀농사를 짓고 최대한 많이 생산하라는 신호를 보내는 것이다. 농가 입장에서의 합리적 의사 결정은 최대한 많이 생산하는 것이다. 수요 대비 초과 물량은 정부가 모두 시장격리를 해주기 때문이다. 정부의 시장격리로 당연히 수확기 쌀값은 높아질 것이다. 시장에 쌀이 남아돈다는 정보와 달리 쌀값은 수급에 맞지 않게 비싸 소비는 더욱 감소하게 된다. 농가로부터 높은 수매 가격으로 인도해 쌀을 가공하는 미곡종합처리장(RPC)은 소비자의 수요 감소로 매년 역계절진폭(수확기 이후 가격이 하락하는 현상)에 따른 적자가 누적돼 파산까지 가는 상황도 발생할 수 있다. 이럴 경우 생산자가 직접 쌀을 도정 및 가공해 소비자와 직거래해야 할 것이다. 초과 물량이 매년 늘어나면서 쌀 수급 불안이라는 근본적 해결은 되지 않고 오히려 수급 불균형이 더욱 확산돼 정부 재정은 쌀 수매만으로 수십조 원의 재정만 탕진하게 된다. 국책 연구기관인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은 쌀 시장격리 조치로 수매가 의무화될 경우 쌀 초과 물량이 추가적으로 연평균 46만 8,000톤 늘어나면서 향후 10년간 연평균 1조 443억 원의 예산이 추가적으로 소요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실제로 정부는 2017년 시장격리 물량 쌀 37만 톤을 수매하면서 수매 비용으로 6,684억 원, 저장비와 이자비용 등 부대 비용이 1,016억 원 소요됐다. 10만 톤당 약 2,000억 원이 소요된 것이다.
초과 물량 감축에 초점을 맞추는 정책 필요
이러한 특정 품목에 대한 수매제도 폐지는 해외 사례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유럽에서는 1962년 ‘유럽공동농업정책(CAP)’을 통해 최저 가격 수준을 정부가 보장하고 초과 물량은 보조금을 지급하며 수출했다. 그 결과 초과 물량은 크게 증가해 농업 순 부가가치는 22.5% 감소하고 취업 인구는 26.8% 줄어드는 부작용을 초래했다. 태국은 쌀을 의무 매수하는 정책을 2011년 시행했다가 2012년도 12조 원, 2013년도 15조 원의 재정적자를 기록하며 실패했다. 일본은 생산조정제도를 활용해 쌀 면적을 생산 전환 품목별로 할당하고 쌀 소득과의 차이를 재정해서 보전해주고 있다. 따라서 주식용 쌀은 고급화로 가면서 면적을 줄였고 대신에 소득 보장으로 콩·밀 등 대체 작목 면적은 증가하면서 식량안보에 대응하고 있다.
쌀값 하락의 근본적 원인은 초과 물량에 있다. 초과 물량을 시장격리 의무화로 해결한다는 정책, 시장 원리에 역행하는 정책은 국가 재정만 탕진하는 초급 수준의 정책이다. 쌀 품목에 매년 1조 원 이상의 재정이 투입된다면 차라리 이 재원을 가지고 공익직불제의 단가를 높이거나 타 작물 전환에 쌀 소득과의 차이를 재정해서 보전하는 정책이 효율적인 정책이다. 또한 충분한 의견 수렴과 대책 설명 없이 일방적으로 법부터 통과시키는 개정안 처리 과정에서 우리는 많은 문제점을 발견할 수 있었다. 아직 시간이 남아 있다. 개정안은 내년 수확기부터나 적용할 수 있다. 남은 시간 정부, 학계, 쌀 산업 관련 업계가 충분한 논의를 하고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
한 교수는…미국 미주리대에서 농업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았고 미국 식품농업정책연구소(FAPRI)에 근무하면서 국제농산물정책을 연구했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에서 곡물실장, 미래정책연구실장, 모형·정책연구실장, FTA이행지원센터장으로 정부의 주요 정책을 연구한 농업정책전문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