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년기로 접어들면 지팡이나 보행기에 의지한 채 허리를 굽히고 걷는 이들이 많아진다. 이들 중 상당수는 척추 내부의 신경 통로인 척추관이 척추의 퇴행으로 좁아지면서 신경을 압박하는 척추관협착증 환자다. 허리를 숙이면 척추관의 신경통로가 넓어지면서 통증이 줄어들다 보니 자연스레 이런 보행자세로 굳어지게 된다.
한방에서는 이러한 척추관협착증을 치료할 때 벌에서 추출한 ‘봉독(Bee venom)’을 적극 활용해 왔다. 봉독에서 알레르기 유발물질을 제거해 인체에 무해하도록 정제하고 멜리틴 비율을 높인 ‘에센셜 BV약침(eBV)’을 척추관협착증 환자에게 적용하는 것이다. 다만 구체적인 치료기전은 알려진 바가 없었는데, 최근 봉독의 50% 이상을 차지하는 멜리틴(Mellitin) 성분의 세포보호 및 운동능력 개선 효과를 입증한 연구가 국내 연구진에 의해 발표됐다.
자생한방병원은 김현성 척추관절연구소 책임연구원 연구팀이 세포 및 동물실험을 통해 멜리틴의 척추관협착증 치료 기전을 규명한 연구 결과가 SCI(E)급 국제학술지 ‘생물의학 및 약물치료(Biomedicine & Pharmacotherapy)’ 최근호에 게재됐다고 7일 밝혔다.
연구팀은 쥐의 복막에서 대식세포를 분리해 염증성 대식세포(M1)와 항염증성 대식세포(M2)에 각각 형광염색을 실시했다. 대식세포는 체내 오염된 물질을 분해하고 외부 병원체를 제거하는 기능을 한다.
이어 산화 스트레스를 야기하는 황산철(FeSO₄)을 대식세포에 처리해 척추관협착증 환경을 조성한 뒤 멜리틴을 2가지 농도(200, 500 ng/mL)로 처리하고 세포의 변화를 관찰했다. 체내에서 M1은 철을 축적시키고 조직손상을 유발하는 반면 M2는 철을 세포 밖으로 배출하고 항염증 작용을 유도해 조직을 복구하는 역할을 한다.
세포실험 결과 M1은 철 처리 후 염증반응과 함께 증가하다가 멜리틴 농도가 높아질수록 감소하는 양상이 확인됐다. 반면 M2는 멜리틴 농도에 비례해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멜리틴이 M1은 감소시키고 M2는 증가시킴으로써 철의 축적을 억제하는 항산화 작용을 나타내고, 척추 통증의 원인이 되는 염증을 해소한다는 게 연구 팀의 분석이다.
연구팀은 멜리틴의 염증 억제 효과를 입증하기 위해 동물실험도 진행했다. 쥐의 요추 5번(L5)을 제거하고 생체 실리콘을 삽입해 척추관협착증을 유도한 다음 멜리틴을 투여해 척수 조직의 염증 변화를 살펴본 결과 실리콘 이식 부위에 집중됐던 M1이 멜리틴에 농도 의존적으로 감소하는 경향을 보였다. 신경 및 조직 손상에 의한 염증반응을 억제해 척추관협착증을 치료하는 효과가 확인된 것이다.
멜리틴은 3가지 동물 행동실험에서도 운동능력 개선 효과를 보였다. 쥐를 자유롭게 걷게 한 뒤 움직임을 관찰한 결과 멜리틴 투여 농도가 높을수록 정상적인 뒷발 사용량이 늘어났고, 사다리 코스에서의 발 빠짐 비율이 감소했다. 척추관협착증을 유발한 쥐의 경우 신경 과민 증상으로 인해 외부 자극을 빠르게 회피한 반면 멜리틴 투여 후에는 진통 효과로 인해 정상 쥐와 비슷한 수준으로 회피 시간이 느려지는 경향을 보였다.
김현성 책임연구원은 “봉독의 주요성분인 멜리틴의 척추관협착증 치료 기전을 과학적으로 입증한 최초의 논문이라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며 “척추관협착증뿐만 아니라 다양한 척추질환 치료에 멜리틴이 유망한 후보물질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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