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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대간 타고 백두산 갈 날 간절히 바라죠"

'한국인 최초 알베르 마운틴 어워드 수상' 남난희

1984년 종주 때 철책에 막힌 후

'완전한 백두대간' 대한 갈망 키워

3년 전부터 평화 트레일 추진도

"수상이 꿈 실현에 도움됐으면"

올해 한국인 최초로 ‘알베르 마운틴 어워드’를 수상한 산악인 남난희 씨가 집에 쌓인 장작 앞에서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뒤 목판 사진은 그의 첫 에세이 ‘하얀 능선에 서면’ 출판 기념으로 만든 것이다.




9월 23일 스위스 베른의 스위스알프스박물관에서 열린 ‘알베르 마운틴 어워드’ 시상식. 자그마한 체구의 동양 여성이 연단에 섰다.

“백두대간을 걸을 때 남쪽 마지막 지점에서 철조망에 가로막혀 더 갈 수 없었습니다. 절망하고 울었습니다. 38년이 흘렀습니다. 누구도 길을 뚫어주지 않았고 열릴 기미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저는 이렇게 늙어가고 있습니다. 지금도 간절히 바랍니다. 백두대간을 이어 백두산까지 걸어가기를….”

청중들의 눈시울을 붉힌 연설의 주인공은 한때 한국 여성 산악인의 대명사로 불렸던 남난희(65) 씨다. 대한산악연맹에 나가지 않은 지 30년, ‘잊힌 산악인’ 취급받던 남 씨가 동양인으로 세 번째, 한국인으로는 최초로 수상자가 됐다는 소식에 다들 의아해했다. 1986년 여성 산악인으로는 처음 히말라야 7455m 고봉 강가푸르나를 등반했고 1989년에는 남자도 어렵다는 설악산 토왕성 빙벽 폭포를 두 차례나 등반했지만 모두 옛날 얘기다. 지금은 ‘오르기’보다 ‘걷기’에 마음을 두고 있다.

그가 왜 수상자가 됐을까. 해답은 가까운 데 있었다. ‘백두대간’이었다. “백두대간 평화 트레일을 준비하는 도중 알베르1세기념재단으로부터 한반도의 산을 소개하는 글을 써달라는 요청이 와 백두대간의 의미에 대한 기고를 한 적이 있었죠. 산을 문화와 평화의 문제로 연결한 것을 보고 감명을 받았던 것 같아요.”

6일 서울경제와 만난 남 씨의 백두대간에 대한 애정은 뜨겁다. 이번 수상의 계기가 됐던 기고문을 넘길 때도 번역자에게 “우리에게 중요한 문제이니 백두대간을 공부한 후 제대로 번역을 해줬으면 좋겠다”고 간곡히 부탁했을 정도다.

남난희 씨 자택 대문에 걸려 있는 ‘백두대간’ 현판. 백두대간에 대한 그의 애정이 얼마나 깊은지 엿볼 수 있다.




이뿐만 아니다. 남 씨의 집은 백두대간 끝자락인 경남 하동 쌍계리 산골에 자리 잡고 있다. 집에 들어서기 위해서는 대문 위에 걸려 있는 ‘백두대간(白頭大幹)’ 현판을 지나야 한다. 집착에 가까운 애정의 이유를 그는 이렇게 설명했다. “우리나라 산은 한 번의 끊김 없이 모두 연결돼 있습니다. 마음만 먹으면 강 한 번 건너지 않고 모든 지역을 이동할 수 있죠. 나무뿌리처럼 남과 북, 우리 모두를 이어주고 있는 존재, 그것이 백두대간입니다.”

남 씨는 1984년 국내에서 처음으로 백두대간을 종주했다. 부산 금정산에서 강원 진부령까지 76일간 군사지도와 나침반만으로 길도 없는 산을 헤치고 나갔다. 거칠 것 없을 것 같던 발걸음은 남북을 가로막는 철조망 앞에서 막혔다. 산은 이어졌지만 길은 끊겼다. 절망했지만 그래도 그에게는 젊음이라는 것이 있었다. ‘지금은 돌아가지만 언젠가 꼭 다시 와서 산줄기를 이어 완전한 백두대간을 걷겠다’는 다짐도 했다. 60대 중반에 들어선 지금 그 희망이 가물가물해졌지만 버릴 수는 없었다.

남난희 씨가 경남 하동 쌍계리 자택 앞에서 지리산을 배경으로 포즈를 취하고 있다.


남 씨는 3년 전부터 남북을 잇는 ‘백두대간 평화 트레일’을 추진하고 있다. 통일같이 거창한 꿈을 내세운 것이 아니다. 단지 백두산에서 지리산까지 걷고 싶었기 때문이다. 이번 수상이 반가운 것도 이러한 꿈을 실현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한 가닥 희망에서다. 그는 “나는 너무 늙었다. 누군가 할 수 있도록 주춧돌이라도 놓고 싶었다”며 “상 하나 탔다고 당장 무엇이 이뤄질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단지 세계인이 함께하면 꿈을 가까이 하는 데 조금 더 수월해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뿐”이라고 덧붙였다.

백두대간에 대한 애정은 산에 대한 인식도 크게 바꿔놓았다. 예전에는 높은 산에 오르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지금은 다르다. 더 빨리, 더 높이, 더 험한 산을 오르는 영웅이 되고 싶지 않다. 그냥 산과 함께 사는 것이 좋다. ‘등산’이 아닌 ‘입산(入山)’을 말하는 이유다. 남 씨는 “가장 좋은 산은 바로 지금 내가 있는 산”이라며 “내 마음에는 동네 앞 100m 높이의 산이나 8000m 고봉이나 다르지 않다”고 말했다.

등반가 남난희 씨가 지리산 자택에서 최근 일상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삶에 대한 자세도 이전과는 크게 달라졌다. 더불어 사는 삶이 중요했다. 그는 매일 아침 산을 오르내리면서 다른 사람의 이름을 부른다. 대상은 다양하다. 자신을 도와준 사람, 등반로를 만들어준 이, 같이 걷는 동료들 등등. 이러다 보면 모든 것에 감사하는 마음이 저절로 생긴다는 것이다. 9년 전에 그만둔 된장 만들기도 다시 시도할까 고민 중이다. “산에 순응하면서 살지 않으면 몸과 마음만 힘들어져요. 함께 더불어 살아야죠. 여기 살면서 산에서 배운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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