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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속 오늘]일차대전이 마침내 끝나다

최호근 고려대 사학과 교수

1918년 11월 11일





11월 11일. 언제부턴가 우리는 이 날을 빼빼로 데이로 즐기고 있다. 유럽 사람들도 이 날을 기뻐한다. 우리처럼 초코과자 때문이 아니라 ‘엄청난 전쟁(the Great War)’ 종식을 기념하는 날이기 때문이다. 1918년 이날 새벽 5시 프랑스 북부 콩피에뉴 외곽의 열차 안에서 연합국이 제시한 문서에 독일이 서명했다. 이에 따라 11월 11일 11시를 기해 모든 교전행위가 중지됐다. 평화가 다시 찾아왔지만, 대가가 너무 컸다. 4년간의 전쟁으로 900만 명의 군인이 죽고, 2100만 명이 부상을 당했다. 게다가 500만 명 이상의 민간인까지 목숨을 잃었다. 이들의 죽음은 질병과 굶주림 때문만이 아니었다. 이들 가운데 1/4이상이 제노사이드(Genocide)의 희생자였다. 제노사이드가 무엇인가? 국가가 나서서 특정 소수집단을 체계적으로 파괴하는 행위다. 이 범죄가 아주 고약한 이유는 최고 권력자의 재가 속에서 모든 국가 조직이 합법적으로 참여하기 때문이다. 이 점에서 제노사이드는 집단학살(massacre)과 차원이 다르다. 이 신종 국가범죄는 국민, 민족, 인종, 종교의 차이를 주된 동기로 삼는다. 무언가 다르다는 이유로 어떤 비무장 민간인 집단을 절멸하겠다는 생각이 처음 실현된 때가 일차대전이다. 오스만 투르크 제국 영토 안에 살던 아르메니아인들이 희생자가 됐다. 이 사건은 유대인 대학살보다 앞서 일어났기에 최초의 제노사이드로 불린다. 일차대전은 단순히 국가들 간의 싸움이 아니었다. 이념 대결에 편승한 국민 대 국민의 극한투쟁이었다. 피해가 과거와 비교할 수 없게 컸던 것도 바로 그 때문이다. 이 엄청난 전쟁이 지금 우크라이나 땅에서 재연되고 있다. 불길한 것은 민간인을 상대로 한 조직적 살해의 흔적이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는 점이다. 나쁜 역사의 반복을 막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1948년 제노사이드협약을 통과시킬 때 유엔이 내세웠던 ‘처벌을 통한 예방’만이 유일한 해결책처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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