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를 마시다 말고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로 무엇인가 알린다. 얼마 되지 않아 한 직원이 다른 커피를 가져왔다. 추출량을 조절했지만 기본적으로는 원재료는 같은 원두. 신경을 바짝 쓰지 않고는 맛의 차이를 느낄 수 없을 정도다. “내가 원래 마시던 것 하고는 달랐어요. 이제 괜찮은 것 같아요. 제가 원래 이래요.” 성에 차지 않으면 마음에 들 때까지 바꾸는 인물. 노희영(59) 식음연구소 대표다.
노 대표는 브랜드 컨설팅 업계에서 ‘미다스의 손’으로 통한다. CJ그룹의 계열사 CJ푸드빌을 세계적인 식음료 반열에 올려놓은 ‘비비고’, 멀티플랙스 시대를 연 ‘CGV’, 오리온그룹의 레스토랑 브랜드 ‘마켓오’ 등 우리에게 친숙한 브랜드들이 그의 자식들이다. 이렇게 만든 브랜드가 200여 개, 매장은 2500개에 달한다. 식음료만이 아니다. 천만 관객을 모은 영화 ‘광해’와 지금도, 앞으로도 깨지기 힘든 1760만 명 관객을 기록한 ‘명량’도 그가 지휘한 마케팅 전략이 없었다면 힘을 쓰지 못했을 터다.
무엇이 이런 성공 신화를 만들어냈을까. 서울 반포 센트럴시티 사무실에서 만난 노 대표의 대답에는 주저함이 없었다. ‘업(業)에 대한 진정성.’ 그에게 브랜드란 자신의 아이와 동격이다. 사랑하는 자식의 몸에 상처가 나는 것을 방관할 부모는 없다. 브랜드도 마찬가지다. 그는 “포장지가 조금 찢기고 인쇄가 잘못된 채 상품을 내보낸다는 것은 내 자식 얼굴에 난 상처를 치료도 하지 않고 내보내는 것과 같다”며 “아이를 키우듯 먹거리에 대한 진정성, 고객을 사랑하는 마음을 담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끊임없이 샘솟는 호기심은 그를 뒷받침하는 원동력이다. 25세 때 단추 디자인으로 시작한 사업이 대기업 브랜드 컨설팅, 영화로 영역을 확대한 것도 궁금한 것을 못 참는 성격 덕분이었다. 어느 식당이 잘된다는 소문이 돌면 꼭 찾아가 맛이 어떤지, 왜 잘되는지 직접 눈으로 확인해야 했다. 이번 시즌에 뜨는 패션이 있다면 그 또한 꼭 입어봐야 직성이 풀렸다. 왜 그런 옷이 나왔는지, 사람들이 왜 좋아하는지 알아야 했다. 영화도 마찬가지다. 노 대표는 “지금도 매일 관객 수를 확인하지 않으면 잠을 이루지 못한다”며 “이런 것들이 지금의 나를 만들고 이끌어가는 힘이라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진정성과 호기심은 그에게서 두려움을 앗아갔다. 대기업 총수의 지시도 소용없다. 된다고 생각하면 무조건 밀어붙였고 안 된다고 판단되면 하늘이 두 쪽 나도 못 한다고 했다. 스스로 ‘메기’라고 칭한 이유다. 비비고를 만들 때의 일이다. 이재현 CJ그룹 회장은 우리 장류를 이용해 글로벌 소스를 만들기 원했다. 우리나라 고추장이나 된장은 모든 것을 삼켜버릴 만큼 맛이 강하다. 소스로는 어울릴 수 없었다. “대신 대안을 내놓았습니다. 소스 말고 만두를 만들자고 했고 승낙을 받아냈습니다. 비비고 만두는 이렇게 탄생했습니다.”
싸움닭 같은 그에게도 남에게 배운 것이 있다. ‘절실함’은 누구도 이길 수 없다는 것이 그것이다. CJ그룹 브랜드 전략 고문으로 있을 당시 노 대표는 계열사 뚜레쥬르를 리뉴얼하라는 특명을 받았다. 첫 시도는 경기도 분당에 빵집을 내는 것이었다. 드디어 개업 당일 오전 7시 문을 열자마자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왔다. 자세히 보니 모두 경쟁사 임직원들이었다. 정작 뚜레쥬르 임직원은 한 명도 보이지 않았다. 노 대표는 “그들은 빵 아니면 죽는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만큼 처절함이 느껴졌다. 자신을 부잣집 막내로 생각하는 사람들과는 한참 달랐다”며 “그때 절실하다는 것이 그만큼 힘이 있구나 하는 것을 느꼈다”고 고백했다.
그가 후배들 또는 MZ세대에 ‘진정성’과 ‘로열티’를 강조하는 이유도 같은 맥락이다. ‘치고 빠지기’ 식으로 창업을 하자마자 기업가치와 현금화 전략을 고민하는 것을 보면 안타까울 뿐이다. 가뜩이나 불황과 글로벌 인플레이션으로 식음료 사업이 어려운 시기에 자신이 선택한 길에 최선을 다하지 않는다면 결과는 뻔하다는 게 노 대표의 평가다. 직장에 다니는 젊은이들에게도 조언한다. “회사가 당신을 이용할 것이라고 여기지 말고 당신이 회사를 이용한다고 생각하세요. 돈 받으면서 공부도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자신이 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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