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를 거치며 해외 하늘길이 끊기자 제주를 습관처럼 오가는 이들이 늘기 시작했다. 크다면 크고 작다면 작은 섬인 제주는 방문할 때마다 새로운 매력을 발견할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첫 여행은 재방문, 그 이후엔 한달살기 등으로 이어지며 ‘제주 앓이’의 시작이 되곤한다.
처음엔 바다, 그다음엔 오름, 그리고 현지에 생산되는 신선한 식재료로 만들어지는 풍부한 먹거리에 반하게 되지만 이제는 카페와 음식점들이 제주여행을 풍성하게 만드는 요소가 됐다.
여기에 숨은 보석이 더해졌다. 바로 작은 책방들이다. 어느새부터인가 제주에 하나 둘씩 작은 책방이 생기기 시작했다. 아담한 공간 안에 책방지기만의 감각으로 서가를 구성하고 저마다의 독특한 분위기가 스며 있다. 대형서점에서는 느낄 수 없는 독특한 매력을 가진 동네책방들이다.
<책방길 따라 제주 한 바퀴>는 제주의 독립언론 <제주의 소리>에 ‘고봉선의 마을 책방을 찾아書’라는 연재 기사에 소개된 38곳의 책방 중 30곳을 추려 소개한 책이다. 안타깝게도 필자인 故 고봉선 시인은 올봄 이 책을 준비하던 중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제주토박이였던 그는 생전에 구수하고 정겨운 문체로 제주 동네책방들의 매력을 소개했다.
이 책은 총 3부로 이뤄져있다. 1부는 서북권에 위치한 책방들을 소개한다. 직접 책을 읽어주는 책방지기가 있는 ‘주제넘은서점’, 야외 정원에서 커피향까지 즐길 수 있는 ‘윈드스톤 커피앤북스’ 등이 소개된다.
2부는 서귀포에 위치한 마을책방 9곳에 대한 이야기를 전한다. 산방산 자락에 위치한 ‘어떤바람’은 제주에 연고가 없는 부부가 차린 곳으로 입구에 들어서면 책방지기가 지인들을 모아 채집한 ‘제주의 소리’가 들려오는 신비한 곳이다. ‘그건, 그렇고’는 게스트하우스와 책방을 함께 운영하는 곳으로 책에 파묻히고 싶을 때 딱 적당한 책방이다. 현택훈, 김신숙 시인이 운영하는 시집 전문서점인 ‘시옷서점’도 빼놓을 수 없다. 이곳은 제주 문인들의 책을 따로 진열한 코너가 있다.
3부에는 우도에서 공항방면으로 가는 길에 옹기종기 있는 책방을 소개한다. 우도에 위치한 ‘밤수지맨드라미’는 서울에서 온 전직 회사원 부부가 마련한 곳으로 느리게 가는 시간의 흐름과 자연을 느긋이 만끽할 수 있는 책방이다. 지역주민과 함께 책읽기 모임을 함께하며 제주의 자연을 지키키 위해 노력하는 소신있는 책방지기가 운영하는 ‘제주풀무질’이라는 곳도 있다.
갈 때마다 새로운 경험을 선사하는 제주. 올레길을 수없이 다닌 방문자라면 이제 동네책방을 따라 여행해보는 것을 어떨까. 새로운 제주를 만나는 또 다른 소박한 방법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서른 곳의 책방을 방문하는 여정에 대해 “고인이 생전에 마치 발이 붓도록 닦은 ‘고봉선의 길’ 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고 저자의 지인은 말했다. 제주의 보석같은 30곳의 작은 책방을 소개하는 이 책은 ‘제주 책방길’을 안내하는 ‘여행서’이자 제주에 대한 제주토박이 저자가 애정으로, 발품을 팔아 쓴 ‘헌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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