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철학자 앤디 웨스트는 2016년부터 수업 장소를 학교의 일반 강의실이 아닌 다른 곳으로 옮겼다. 그 곳은 범죄자들을 수용한 교도소로, 그는 재소자들을 대상으로 철학을 가르치고 있다. 그는 첫 수업을 위해 교도소로 들어가면서 ‘이해하기 쉽게’ 가르치자는 생각만 갖고 있었다. 하지만 곧 자신이 재소자들을 과소평가했음을 깨닫는다. 그는 존 로크의 정체성 이론에 대해 설명하는 동안 한 재소자로부터 “로크는 기억만 따진 게 아니에요. 그보단 의식에 더 가까워요”라는 반박을 듣는다. 원격으로 학위를 받은 다른 재소자는 장 자크 루소라면 로크에게 어떻게 반박했을지 설명하기도 한다. 그는 재소자들에게 철학을 가르치는 게 아니라 철학적 논제에 대해 소통하는 쪽으로 수업을 진행하기로 한다.
신간 ‘라이프 인사이드’는 웨스트가 영국의 교도소를 돌며 수업을 하는 동안 만난 재소자들과 대화하며 나눈 철학적 사고의 기록이다. 웨스트는 재소자들과 매일 그들의 삶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고, 그들의 생각과 감정에 대해 토론을 벌였으며, 그들 스스로 상황에 대해 새롭게 사고하는 시각을 모색하는 과정을 지켜봤다. 이들은 ‘사람의 본성은 바뀌지 않는가’ ‘희망 없이 살 수 있는가’ ‘진실은 항상 옳은가’ ‘용서란 무엇인가’ ‘인생은 정해져 있다고 보는가’ 등 매우 근본적 소재를 두고 대화한다.
각각의 챕터 속 재소자들이 나누는 짧고 간단한 대화 속에서 발견하는 생각의 깊이는 예사롭지 않다. 책은 제1장에서 웨스트와 재소자들이 오디세우스 신화를 소재로 자유의 본질에 대해 이야기하는 대목을 통해 이를 확실히 보여준다. 수감 중인 월리스가 자기에게 감옥 밖의 사람들이 갖지 못한 ‘선택으로부터의 자유’가 있다고 이야기하자, 또 다른 재소자인 주니어는 “하지만 선택권이 없으면 자유로운 게 아니다”라고 반박을 한다. 웨스트는 이를 듣고 있다.
재소자들은 철학을 문헌을 통해 배우지 않았지만, 자신의 삶을 통해 철학을 체화하고 있었다. 이들은 경찰로부터의 인종차별 경험을 토대로 바람직한 저항의 방법이 무엇인지 대화하고, 마약중독의 경험으로부터 자신을 옭아매는 욕망의 본질을 고민한다. 웨스트 역시 이 과정에서 자신의 삶을 돌아보게 되고, 아버지와 삼촌, 형이 장기간 수감생활을 했던 과거의 수치심과 마주하게 된다. 철학 매체 ‘필로소피 나우’는 이 책에 대해 “소크라테스식 대화법을 가장 창의적이고 현대적으로 복원했다”고 평가했다. 1만8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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