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부터 열까지 신경 쓰지 않은 것이 없다. 손동작 하나만으로 캐릭터의 감정이 어떻게 표현될지 고민했다. 여기에 자신을 돋보이게 하기 보다 조화로운 그림을 먼저 생각했다. 데뷔 26년 차 배우 김래원의 모든 열정이 영화 ‘데시벨’에 담겨 있다.
‘데시벨’(감독 황인호)은 소음이 커지는 순간 폭발하는 특수 폭탄으로 도심을 점거하려는 폭탄 설계자(이종석)와 그의 타깃이 된 전직 해군 부함장(김래원)이 벌이는 사운드 테러 액션 영화다. 쉽게 제어할 수 없는 일상 소음이 긴장감을 일으키고, 팽팽한 대립 구도의 폭탄 설계자와 전직 해군 부함장이 몰입도를 높인다.
“원래는 황인호 감독님의 다른 작품 시나리오를 읽었어요. 판타지 멜로였는데 정말 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황 감독님을 만났는데 ‘데시벨’을 준비하고 계시더라고요. 감독님이 ‘이거 하고 그거 하자’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데시벨’ 시나리오를 봤는데 정말 재밌었어요. 그래서 낚이게 됐죠.”(웃음)
당초 액션 연기를 하려고 했던 것도 아니다. 액션팀이 소화하는 것이 화면에 더 화려하게 나오고, 최근에는 액션을 피하려고 했기에 황 감독과 사전에 대역을 쓰기로 협의했다. 하지만 막상 현장에 가서 연기를 하다 보니 허투루 하고 싶지 않았다. 손동작 하나에도 인물의 감정 표현이 보인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결국 그는 CG나 대역 없이 카체이싱, 수중 촬영, 와이어 액션까지 모두 소화했다.
“워터파크 수중신이 제일 기억에 남아요. 보기에는 편해 보이지만 파도가 있어서 전문으로 수중 촬영을 하는 촬영 감독님이 오실 정도였거든요. 저는 굉장히 집중을 많이 했어요. 힘든지도 몰랐어요. 2~3일 동안 찍었는데 이틀째 되는 날 너무 어지럽고 토할 거 같아서 잠깐만 쉬자고 했거든요. 그제야 수중 촬영 감독님이 ‘우리 전문가들도 죽을 뻔했다. 배우가 하도 열정적으로 해서 한 것’이라고 하더라고요. 사실 전 반대로 그분들이 그렇게 하고 있는데 힘든 걸 티 내면 안 된다고 생각했거든요. 흐름을 깨거나 약해 보이기 싫고 여유 있게 하고 싶었어요.”
작품 속 김래원은 해군 제복 한 벌로 모든 액션을 소화한다. 각 잡힌 제복을 입고 물속에 들어가는 것이나, 구두를 신고 전력 질주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실제로는 사이즈별로, 상황별로 의상을 준비했지만, 더운 여름에 촬영을 한 탓에 더위에 힘이 들었다. 그럼에도 완벽한 수트핏이 한몫을 한다.
“전 워낙 무디고 신경을 안 쓰는 편이라 그렇게 봐주시면 의상팀에게 감사드려야 할 것 같아요. (수트핏에 대한 인터뷰) 기사가 나간 것을 보고 의상팀이 문자가 왔더라고요. 파트별로 다 중요한 거죠.”(웃음)
김래원이 베테랑 배우라는 평을 듣는 가장 큰 이유는 디테일이다. ‘데시벨’에서도 그의 섬세한 연기 덕분에 캐릭터의 입체감이 더해졌다. 묵직한 부함장의 모습을 현실감 있게 만들기 위해 먼저 의견을 내기도 했다.
“인트로 장면에서 제가 자다 일어난 내추럴한 모습이잖아요. 시나리오 초고를 읽었을 때는 그 장면이 없었어요. 강직하고 묵직한 부함장이었죠. 하지만 제가 처음부터 각이 잡혀서 나오면 1년 후의 모습은 너무 무거운 모습이어야 하잖아요. 그래서 감독님이 의논 끝에 수정해 줬어요. 덕분에 비교적 편한 모습으로 할 수 있었죠.”
관련기사
정형화된 캐릭터는 만들고 싶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싱크로율에 대한 이야기는 이해하기 어렵다. 그는 “‘부함장이니까 이럴 것 같아’라는 표현은 조금 거북하다”며 “내가 부함장이고 내가 하고 있는 게 맞다. 오히려 다른 부분에 집중하는 게 진정성이 있지 않나 싶다”고 캐릭터 설정에 대한 자부심을 드러냈다.
자신의 캐릭터만 신경 써서 작품이 완성되지 않는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 ‘데시벨’은 특히 조화가 중요한 작품이라, 조연부터 단역까지 의기투합해 멋진 그림이 만드는 것이 의미 있다고 여겼다. 엄숙한 분위기의 잠수함 신은 더더욱 호흡이 중요했다. 작품 속에서도 현장에서도 리더였던 김래원은 적극적으로 분위기를 만들었다.
“조연·단역 배우들, 심지어 한 컷만 나오는 배우들도 있었어요. 그런데 바로 묵직한 신을 찍어야 하니까 감독님께 말씀드려서 따로 자리를 만들어달라고 했죠. 서로 자기소개도 하고, 자연스럽게 제가 제일 형이니까 믿고 따라달라고 했죠. 배우들은 그게 좋았나 봐요. 그 분위기를 계속 유지하면서 찍었어요. 울면서 지나가는 장면에서도 다 열연해 줬어요.”
작품 속 대부분의 신을 함께하는 배우 정상훈과의 균형도 중요했다. 정상훈은 의도치 않게 테러 사건에 동행하게 된 기자 오대오 역을 맡아 코믹 부분을 담당했다. 그는 일촉즉발 위기의 순간에서 관객들에게 숨 쉴 틈을 주는 역할이다. 한결같이 진지한 부함장과 상반되기 때문에 신경쓸 부분이 많았다.
“그런 부분이 힘들어서 정상훈 형에게 얘기했어요. ‘내가 형님을 받쳐 주면 어색할 수 있으니 확실하게 관객들을 재밌게 해달라’고요. 의도했는데 재미없으면 제가 빈 공간을 만든 게 티가 날 수 있잖아요. 정상훈 형이 꽉 채워줘서 저의 빈 공간이 채워진 거예요.”
나무보다 숲을 보는 그가 최근 선택한 작품은 드라마 ‘루카 : 더 비기닝’ ‘소방서 옆 경찰서’ 등 남성성이 부각되는 공통점이 있다. 로맨스 연기에도 특화된 그는 “로맨스 대본이 들어오면 바로 할 것이다. 몸도 편하고”라고 너스레를 떨었다. 그러면서 “전작인 영화 ‘가장 보통의 연애’ 정도가 좋다. (최근 작품이) 나에게는 다른 모습인데 다 이런 역할을 주로 한다고 생각하더라”며 “앞으로는 악역을 한 번 해보고 싶다. 난 아주 내추럴하게 해보고 싶다”고 바람을 전했다.
연기한 지 오래됐다고 끝이 있는 것은 아니다. 하면 할수록 새로운 과정이 있다. 어디까지가 한계인지 아직 모르겠다. 배우로서 역량이 여기 까지 인 건지 그 이상이 있는 것인지. 그 물음표가 느낌표가 된 것은 선배 배우 한석규의 조언 덕분이다.
“우연히 한석규 선배님과 오랜만에 통화를 했어요. 선배님이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올해 몇 살이냐고 물으셔서 대답했더니 ‘제일 좋을 때다. 이제 시작이다. 지금까진 연습이라고 생각해. 넌 너무 훌륭하고 재능이 많고 좋은 배우다. 이제부터다’라고 강조해서 말씀해 주셨어요. 제가 다시 연기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보게 된 계기죠. 개인적으로 제가 할 수 있는 게 더 있다고 생각해요. 그걸 한석규 선배님이 짚어주셨잖아요. 선배님이 시작이라고 해주시니 ‘그런가 보다’ 하고 해보는 거예요.”(웃음)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