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시리즈 ‘썸바디’가 인간의 관계에 대한 욕망에 대해 꿰뚫어 본다. 현대 사회의 연결 매개체인 소셜 커넥팅 앱을 소재로 한 것이 흥미를 이끈다. 여기에 인물의 섬세한 심리를 표현한 정지우 감독의 연출, 그리고 그 모든 것을 표현해 낸 배우들의 연기에 빠져든다.
15일 오전 서울 광진구 롯데시네마 건대입구에서 ‘썸바디’(극본 정지우한지완/연출 정지우)의 제작발표회가 열렸다. 배우 김영광, 강해림, 김용지, 김수연과 정지우 감독이 참석해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썸바디’는 소셜 커넥팅 앱 썸바디를 매개로 살인사건이 벌어지면서 개발자 섬(강해림)과 주변 친구들이 의문의 인물 윤오(김영광)와 얽히며 벌어지는 서스펜스 스릴러다. 나만의 누군가를 찾아 연결되고 싶은 인간의 욕망과 소셜 커넥팅 앱이라는 새로운 현대사회의 단면이 결합한 이야기다. 정지우 감독은 “더 바닥의 바닥으로 내려가 보면 나는 기괴한 멜로 드라마를 만든 셈이다. 소통하고 싶고 내 마음을 알아주는 사람을 찾아가는 이야기”라고 소개했다.
정 감독은 영화 ‘은교’ ‘침묵’ ‘유열의 음악앨범’ 등으로 인간의 내밀한 심리를 풀어낸 인물이다. 그는 ‘썸바디’를 통해 더 깊고 섬세하게 인간의 심리를 묘사했다. 주로 영화를 연출했던 정 감독은 “항상 영화를 찍으면 더 많이 찍어서 편집실에서 버려야 하는 일이 많았는데 상대적으로 더 길게 이야기를 만들 수 있어서 행복했다. 그런데 기니까 쉽지 않고 어려웠다”면서도 “각각의 인물에게 살을 붙이고 그들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표현할 수 있는 기회가 넉넉히 있다는 게 좋았다. 이야기를 보다 보면 네 명의 인물이 무엇은 원하고 표현하고 싶은지 보여줄 수 있었다”고 만족해했다.
데이팅 앱이라고도 불리는 소셜 커넥팅 앱이 중심이 되는 이야기라는 점에서도 흥미를 이끈다. 정 감독은 “소셜 커넥팅 앱을 통해 문제가 일어나는 일도 있고 행복한 경험을 하기도 해서 일반화하기 어렵다. 그렇기 때문에 흥미로운 소재라고 생각했다”며 “시리즈의 핵심적인 키워드로 만들어진 이유이기도 하다”고 했다.
그는 “나는 이 앱을 일상적으로 써본 적이 없어서 이 프로젝트를 위해 열심히 써봤다. 그것이 갖는 한계가 있었다”면서도 “반대로 트렌디한 묘사뿐만 아니라 근본적으로 사람 사이의 관계를 만드는 힘도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과정이 계속 변하기 때문에 휴대폰이 발명되고 난 뒤의 멜로드라마의 이야기는 완전히 달라졌다”며 “SNS 혹은 소셜 앱으로 사람 사이의 관계가 만들어지고 난 다음에 또 완전히 다른 의미의 내용이 많이 나올 것 같다. 찬찬히 보고 더 좋은 이야기가 나왔으면 한다”고 내다봤다.
배우들은 작품을 위해 직접 앱을 경험해 봤다고. 김수연은 “실제로 내가 뭘 하는 것이 부담스러워서 친구의 아이디를 빌려서 해봤다. 어떤 이야기가 오가고 어떤 형태로 하는지 알아봤다”고 털어놨다. 실제로 앱을 사용해봤다는 강해림은 “미국에서 온 친구가 있는데 한국에 와 있는 동안 앱을 통해 근처에 있는 사람과 연결돼 놀았다. 굉장히 재밌어 보였다”고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김영광은 이번 작품으로 파격 변신을 감행했다. 윤오는 겉으로는 눈에 띄는 외모와 능력으로 주목받는 건축가이지만, 썸바디를 통해 만난 수많은 여자들을 살인하는 인물이다. 그런 그가 김섬에게 동질감을 느끼고 거리를 좁혀간다. 김영광은 “윤오는 뒤틀린 욕망을 갖고 있다”며 “윤오라는 인물에 대해 처음에는 어떤 콘셉트를 넣어야 할지 고민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어떤 것도 하지 말자는 생각이었다”고 말했다.
“모험을 하고 싶은 마음이 많았다”는 그는 “감독님께서 흔쾌히 손을 내밀어 주셔서 아무 말도 안 하고 덥석 잡았다”고 변신에 대해 이야기했다. 정 감독은 “김영광은 로맨틱 코미디의 주인공일 때도 믿음직스러웠다”며 “스스로 모험을 해보고 싶은 마음이 넘치는 게 느껴져서 이 조합이면 행복하겠다는 생각이었다. 난 현장에서 김영광 배우를 따라다닌 셈”이라고 캐스팅에 만족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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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해림은 누구와도 공감하지 못하는 천재 개발자 섬 역으로 신비로운 분위기를 풍긴다. 자신이 개발한 썸바디를 통해 살인사건이 연이어 일어나자, 범인을 찾아 나선다. 이후 태어나 처음으로 누군가와 연결됐다는 감정을 알게 된다.
강해림은 600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섬 역에 박탈됐다. 정 감독은 “강해림은 완전히 고유한 사람이었다”며 “그저 별나다는 느낌이라기 보다 완전히 자기의 모습을 고유하게 유지할 수 있는 배우를 만나고 싶었다. 강해림이 그런 배우였다”고 말했다. 이어 “이 캐릭터를 만들고 촬영하는 도중에 강해림의 의견과 감정을 충실하게 따라가려는 시도도 성공적으로 이뤄졌다”며 섬에게 강해림이 많이 투영돼 있다고 밝혔다. 강해림은 “이렇게 큰 프로젝트의 주연을 맡은 적이 없는데 감독님이 내 의견을 많이 들어주셔서 존중받는 느낌이었다”고 작업에 만족감을 전했다.
김용지는 장군님을 모시는 무당 목원을 연기했다. 미스터리한 매력의 목원은 항상 친구를 걱정하고 위험에 빠진 순간 구해주는 의리파다. 김용지는 캐릭터를 위해 체중을 증량했다. 그는 “즐거웠다가 어느 순간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이 힘들기도 했다”며 “무조건적으로 두 친구를 사랑하는데 푸근한 모습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목적이었다. 모니터에서 그런 모습을 얼핏 볼 수 있어서 후회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정 감독은 “김용지는 속에 알 수 없는 무언가를 잘 내놓지 않는 기분이었다. 출연작을 리서치를 해보니 살을 찌워야겠다는 강한 욕망을 갖게 되고 압박했다”며 “결과적으로 살이 쪘을 때 김용지의 얼굴이 참 좋았다”고 그의 노력에 박수를 보냈다.
김수연은 사이버 수사대 소속 경찰 기은 역으로 작품에 색채를 넣었다. 기은은 사고로 하반신 마비가 된 뒤 썸바디를 통해 윤오를 만난다. 새로운 인연에 기대가 부푼 것도 잠시, 기은은 홀로 산속에 버려지고 그를 추적하려 한다. 김수연은 “기은이의 마음속에 있는 욕망이 그대로 보이면서도 보는 분들이 불편하지 않은 묘사를 찾아내려고 많은 시간을 들였다. 실제로 기은과 비슷한 부분이 있는 분이 현장 안팎에서 도움을 주셨다”며 “실제로 휠체어를 타고 생활하기도 했다”고 캐릭터 설정에 대해 이야기했다.
김수연 역시 500 대 1 경쟁률의 오디션을 통해 출연 기회를 얻었다. 정 감독은 “씩씩한 척이 아니라 진짜 씩씩한 사람을 만나는 게 생각보다 어려워서 캐스팅을 하는 데 아주 오래 걸렸다. 기은 역은 자존감이 약한 느낌으로 가게 되면 재미없는 캐릭터라고 생각했는데 진짜 김수연은 씩씩한 면이 있어서 정말 반가웠다”고 했다.
정 감독은 신선한 얼굴을 발굴하는 데 주력했다. 넷플릭스와의 작업이라 수월할 수 있는 부분이었다. 정 감독은 “넷플릭스가 준 기회는 신인 배우와 아주 모험적인 작품을 할 수 있게 해준 것이다. 행복하고 인상적인 순간”이라며 “그 사람이 누구인지를 알고 그것에 걸맞은 배우를 찾아서 캐스팅을 할 수 있는 것이 사실 영화에서 어렵다. 이 시리즈에서는 그런 기회가 있어서 빛나는 신인 배우들과 함께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배우들을 통해 독특한 네 캐릭터가 완성되면서 인간의 깊은 내면을 그릴 수 있었다. 정 감독은 “(결핍이) 겉으로 드러나는지 아닌지의 문제다. 누구나 난처하고 해결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부분들이 있다”며 “네 캐릭터는 겉으로 드러나는 걸로 설정돼 있을 뿐이지 보통 사람들의 이야기일 수도 있다. 남다른 부분일 뿐”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사람들은 서로 협력하고 이해해 주고 받고 하지만, 그것이 아주 전형적으로 따뜻하고 행복하기만 한 관계가 아니”라며 “각자가 갖고 있는 결핍이 적대적인 관계인 낯선 남자와도 작동하고, 이들 사이에도 있다. 지극히 일상적으로 갖고 있는 관계성이 어렵기도 하고 충분히 남아있는 형태로 그리려고 애썼다”고 덧붙였다.
정 감독은 시리즈 확장 가능성도 이야기했다. 그는 “기회가 되면 더 해보고 싶다. 더 긴 이야기를 어울리는 배우들과 하는 것이 주는 행복이 있다”고 기대감을 높였다. 오는 18일 공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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