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일 치러진 2023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은 지난해보다 전반적으로 비슷하거나 쉽게 출제된 것으로 분석됐다. 국어영역은 역대급 ‘불수능’으로 불리웠던 작년 수능 보다 다소 쉽게 출제됐으나 수학·영어영역의 난이도는 어려웠던 작년 수능과 비슷한 것으로 평가됐다. 2022학년도에 비해서는 다소 쉬워졌지만 수험생들이 실제 느끼는 난이도는 여전히 높아 상위권과 중·하위권 간 변별력을 갖췄다는 분석이 나온다.
박윤봉 수능 출제위원장(충남대 교수)은 "작년부터 EBS 연계율 비중이 축소된 부분이 '불수능'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았나 판단해 이번에는 '체감 연계도'를 올리는 데 노력했다"면서 "선택과목이 있는 영역에서는 과목별 난이도의 균형이 이뤄지도록 출제해 과목 선택에 따른 유불리 가능성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했다"고 강조했다.
이 같은 출제 기조에도 불구하고 전문가들은 지난해에 이어 문·이과 통합 수능으로 치러지는 올해 수능에서도 공통·선택과목이 적용된 국어·수학영역에서 선택과목별 유불리 현상이 재연될 것으로 전망했다. 최상위권의 변별력은 다소 떨어지지만 상위권과 중·하위권 간 변별력이 선택과목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면서 ‘이과생의 문과 침공’이 심화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임성호 종로학원 대표는 “통합 수능 2년째인 올해는 국어가 작년보다 쉽게 출제되면서 변별력을 가르는 무게중심이 수학으로 옮겨갔다”면서 “전반적으로 이과생들의 강세가 예상된다"고 전망했다.
국어영역은 '불수능'으로 평가받은 지난해 수능보다는 쉽고, 평이한 수준이었던 9월 모의평가와 비슷했던 것으로 분석됐다. 지난해 수능에서 국어영역의 표준점수 최고점은 149점으로 역대 두 번째로 높았다. 올해 9월 모의평가에선 이보다 하락한 140점을 기록했다.
한국대학교육협의회(대교협) 대입상담교사단 소속인 김용진 동국대사대부속여고 교사는 이날 정부세종청사에서 진행한 국어영역 출제 경향 및 문항 분석 인터뷰에서 "지문 길이는 과거에 비해 조금 짧아졌지만 정보량이 많고 학생들이 문항을 통해 추론하도록 해 학생들의 대학 수학 능력에 필요한 사고력을 측정하는 시험으로 볼 수 있다"고 평가했다.
국어 영역이 쉽게 출제되면서 최상위권에서 변별력이 다소 하락할 것으로 예상했다. 김창묵 서울 경신고 교사는 “최상위권에서는 예년보다 난도가 다소 하락한 것으로 추정된다”며 "변별력이 다소 하락한다면 최상위권에겐 타 영역 비중이 다소 커질 수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봤다. 그러면서도 "국어의 전체적인 지문 난도가 낮아지고 문제가 쉬워졌다고 보기는 어렵다"며 "최상위권 변별력은 다소 하락할 수 있지만 중상위권에서는 여전히 국어가 차지하는 비중이 크고 변별력도 예년과 유사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수학 영역은 작년 수능과 비슷한 난이도로 출제된 것으로 분석됐다. 이른바 ‘킬러 문항’으로 불리는 초고난도 문항은 적게 출제돼 최상위권 변별력은 다소 떨어질 것으로 보이나 중상위권에서 변별력이 유지될 것으로 예상됐다. 대교협 대입상담교사단 소속의 조만기 남양주 다산고 교사는 "올해 9월 모의평가와 비교하면 유사하게 출제됐다"며 "작년 수능과 비교하면 유사하지만 일부 수험생 입장에서는 조금 쉽다고 할 수 있다"고 밝혔다.
초고난도 문항은 출제되지 않아 최상위권에서의 변별력은 떨어질 수 있으나 변별력이 없는 수준은 아니라는 분석도 나왔다. 지난해 수능 수학영역 최고점은 147점, 올해 9월 모의평가는 145점으로 두 시험 모두 어렵다는 평가를 받았는데, 이와 비슷한 수준이라면 실제 수험생들의 체감 난이도는 높을 가능성이 있다. 김창묵 교사는 “대체로 평이하게 출제됐지만, 쉽다는 의미는 아니다”며 “최상위권의 변별력은 다소 하락할 수 있지만, 변별력은 확보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김 교사는 올해 수능의 표준점수 최고점이 9월 모평 수준과 비슷할 것으로 봤다.
영어영역은 어려웠다고 평가받는 작년 수능과 비슷한 수준으로 출제된 것으로 분석됐다. 이만기 유웨이 교육평가연구소장은 “신유형 문제가 출제되지 않았으나 듣기 녹음 속도가 평소 시험 보다 빨라 이어지는 독해 문제에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이 높다”면서 “1등급 비율이 작년 수능과 비슷한 7% 안팎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짚었다.
절대평가로 등급만 나오는 영어영역의 경우 1등급(원점수 90점 이상) 학생 비율은 작년 수능 때 6.25%로 전년(12.66%)의 절반으로 줄었을 만큼 어렵게 출제됐다. 올해 6월 모의평가에서는 이 비율이 5.74%로 나타나 역시 어려운 것으로 평가됐다가 9월 모의평가에서는 16.0%로 급등하며 난도가 급격히 하락했다. 윤 교사는 "응시 집단의 수준·구성에 따라 바뀔 수 있지만 변별력이 확보된 시험"이라며 "난도가 작년 수능에 가깝다"고 설명했다.
신유형 문제가 출제되지 않았고, 어휘도 어려운 편은 아닌 것으로 분석됐지만 9월 모의평가 때보다 문단과 문장의 길이가 길어져 수험생들에게 다소 까다로웠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전기홍 경북 무학고 교사는 "도시 운송 수단으로서 자전거, 인간 삶에서 기술 융합, 언어의 변화, 협상에서 세분화 전략 등 다양한 사회 현상을 소재로 한 문항이 다수 출제됐다"며 "지문도 다양한 소재가 균형 있게 출제됐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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