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외 금융·경제 전문가 10명 중 6명가량이 1년 안에 금융 시스템 위기가 닥칠 가능성이 있다고 진단했다. 한국은행이 27일 발표한 ‘시스템 리스크 서베이’ 결과에 따르면 금융 시스템 위기를 초래할 충격이 단기(1년 이내)에 발생할 가능성에 대한 질문에 응답한 전문가 72명 가운데 58.3%가 ‘높다’고 밝혔다. 올 5월 조사 결과(26.9%)에 비해 31.4%포인트나 높아졌다. 반면 ‘우리나라 금융 시스템 안정성의 신뢰도가 높다’는 답변은 36.1%에 그쳤다.
금융 시스템 위기의 최대 요인으로는 27.8%가 ‘기업의 자금 조달 여건 악화에 따른 부실 위험 증가’를 꼽았다. ‘가계의 높은 부채 수준과 상환 부담 증가(16.7%)’라는 지적을 압도했다. 고금리와 실적 부진 탓에 최근 기업 부채가 급격히 증가했기 때문이다. 10월 말 은행권의 기업 원화 대출 잔액은 1169조 2000억 원으로 한 달 새 13조 7000억 원이나 늘었다. 10월 기준으로 2009년 6월 통계를 시작한 후 역대 최대 증가 폭이다. 국제금융협회에 따르면 3분기 기준 국내 기업(금융기업 제외)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부채 비율은 119.1%로 높아졌다. 35개 선진국·신흥국 가운데 네 번째다.
기업들은 자금 조달에 비상이 걸렸는데도 은행들은 제 배만 불리고 있다. 올해 3분기 말 잔액 기준 국내 은행의 평균 예대 금리 차가 2.46%포인트로 2014년 2분기 이후 8년 만에 최대 수준으로 치솟았다. 6회 연속 금리 인상에 따른 대기업의 투자·고용 축소와 대대적 비용 절감 등으로 우량 중소·중견 기업들마저 부도 위기에 직면해 있다. 이런 상황에서 영업이익으로 이자도 갚지 못하는 좀비 기업들에 대해서는 옥석 가리기를 통한 구조 조정이 불가피하다. 그러나 우량 기업들까지 일시적 유동성 위기로 무더기 흑자 도산하는 사태를 맞지 않도록 금융 당국이 신속하고 정교하게 시장 안정 정책을 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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