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은 규제를 ‘신발 속 돌멩이’ ‘모래주머니’로 비유하면서 “규제 개혁이 곧 국가 성장”이라고 역설해왔다. 윤석열 정부는 출범 이후 200일 동안 276건의 규제를 없앴다. 이 가운데 법률 개정을 완료한 규제 혁신 과제는 18건이었다. 하지만 이 기간에 국회에서 발의된 규제 법안은 71건에 달했다.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발의한 규제 법안이 41건으로 많았지만 국민의힘 의원이 발의한 법안도 30건에 이르렀다. 정부는 규제 폐지에 적극 나서고 있지만 국회에서 그 이상의 규제 입법이 추진되고 있어 ‘도돌이표’ 규제가 이어지고 있는 셈이다.
대한상공회의소의 분석에 따르면 최근 5년 동안 신설·강화된 규제 법률은 총 304건이다. 이 중 271건(89.1%)이 의원 발의에 따른 것이다. 정부 입법은 법률안 제출 전 규제 영향 평가와 규제개혁위원회 심사 등 까다로운 절차를 밟아야 하지만 의원 입법은 그런 절차를 거치지 않아 규제 관리의 사각지대로 활용된다.
결국 규제 혁파의 진정한 효과를 거두려면 입법 시스템 개선이 시급하다. 미국·영국·독일 등 주요 선진국들은 정부 발의뿐 아니라 의원 발의 법안에 대해서도 입법 영향 평가를 실시하고 있다. 우리도 다른 선진국처럼 의원 입법에 대해 입법 영향 평가 제도를 도입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일부 의원들은 의원 입법에 대한 사전 규제 영향 평가를 위해 국회 내 ‘규제입법정책처’를 신설하도록 하는 법안을 발의할 예정이다. 규제입법정책처는 규제 관련 법안을 심사하는 소관 상임위원회의 의뢰에 따라 규제 영향 평가를 수행하는 역할을 한다.
규제 개혁을 통해 기업의 ‘모래주머니’를 제거하지 않으면 글로벌 경제 패권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 이대로 가면 지난해 2% 선으로 추락한 우리의 잠재성장률은 곧 1%대로 떨어질 것이다. 꺼져가는 성장 동력을 재점화하려면 규제 혁파를 통해 기업의 투자와 고용을 늘리고 초격차 기술을 확보해야 한다. 여야 의원들도 마구잡이로 규제 법안을 발의하는 행태를 접고 규제 혁파에 협력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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