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규모로도 더 높은 성능을 낼 ‘차세대 가속기’를 실용화하는 데 필요한 기술의 실증실험이 성공했다.
유니스트(UNIST·울산과학기술원) 물리학과의 정모세 교수팀은 기존 기술의 한계를 뛰어넘는 새로운 ‘입자 빔 위상공간 제어기술’을 실증하는 데 성공했다고 29일 밝혔다. 이번 실증실험은 미국 아르곤 국립연구소 웨이크필드 가속기 연구팀과 공동으로 진행했다. 연구결과는 물리학 분야 최고 권위의 학술지 피지컬 리뷰 레터(Physical Review Letters)에 발표됐다.
가속기는 원자를 구성하는 전자나 양성자, 이온 등 전하를 가진 입자에 빠른 속도를 주고 에너지를 공급하는 장치다. 가속기 속에서 매우 빨라진 입자들은 일정한 방향으로 흐르면서 빔(beam)을 만든다. 과학자들은 이렇게 만들어진 빔이 물질에 부딪히면서 나타나는 효과를 이용하거나, 빔이 휨자석을 지나면서 내는 방사광을 이용한다. 자연계의 물리법칙이나 물질의 구조 등을 밝히고, 신약 개발이나 난치암 치료 등에도 사용하는 것이다.
차세대 가속기는 기존 가속기보다 훨씬 더 작은 규모로 훨씬 더 높은 성능을 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빔의 위상공간을 정교하게 제어하는 기술이 필수적이다. 현재 ‘빔의 횡단면 방향으로 위상공간 제어’는 자석을 이용하면 쉽게 할 수 있고 기술도 잘 정립돼 있다. 하지만 ‘빔 진행 방향으로 위상공간 제어’는 어려운 상황이다.
정모세 교수는 “빔 진행 방향으로 위상공간을 제어하려면 복잡한 고주파 시스템을 이용하거나, 특수한 진공 구조물을 사용해야 한다”며 “이런 방법이 알려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물리학자들이 원하는 형상으로 빔을 자유자재로 제어하는 것은 어려운 과제였다”고 말했다.
이번 연구에서는 이런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새로운 개념의 빔 위상공간 제어방법’을 개발하고, 실증에도 성공했다. 빔의 횡단면 방향 위상공간과 빔 진행 방향의 위상공간을 서로 바꾸는 ‘이미턴스 교환(Emittance Exchange)’에 바탕을 둔 기술이다. 즉, 빔 진행 방향으로의 빔 분포를 횡단면 방향으로 먼저 바꾼 후, 자석을 이용해 형상을 제어하고, 이를 다시 원래의 빔 진행 방향 분포로 되돌리는 것이다.
석지민 포항가속기연구소 박사후연구원은 “쉽게 말해 두 방향을 바꾸어서 빔의 형상을 자유자재로 제어할 수 있게 한 것”이라면서 “10여 년 전에 이런 개념이 제안됐으나 여러 물리적 불확실성이 있었고, 마땅한 실증실험시설이 없어서 실제 가속기에 적용하는 것은 미뤄지고 있었다”고 설명했다.
실증실험은 석지민 연구원과 하광희 미국 노던 일리노이대 교수가 주도했다. 이들은 아르곤 웨이크필드 가속기(Argonne Wakefield Accelerator, AWA) 시설에 ‘이중 이미턴스 교환 빔 라인’을 구축하고 연구를 진행했다. 사전 시뮬레이션을 통해 빔 라인을 최적화했고, 실험에 수반되는 다양한 오차 및 한계 요소들을 분석했다. 또 비선형성 제어를 위해 8극 전자석을 직접 설계하고 제작·설치했다.
정모세 교수는 “빔 진행 방향으로의 위상공간을 자유자재로 제어를 할 수 있게 되면, 소형 차세대 가속기의 실용화가 가능해진다”며 “기존에 불가능했던 다양한 물리학적 연구를 가능케 해주는 중요한 성과를 거둔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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