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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론직설] “ ‘K칩스법=부자 감세’는 산업 특성 몰이해 탓…나라 미래 위해 통과 시급”

◆박재근 한국반도체디스플레이기술학회장

반도체 초기 투자에만 조(兆) 단위, 대기업 위주 불가피

美·日 파격 혜택도 인텔·소니 지원 아닌 국가경쟁력 차원

인력 양성 성과 내려면 실습 장비 등 교육시설 지원 필요

겹겹 환경규제 손질 시급…‘칩4동맹’ 가입 적극 검토해야

한양대 융합전자공학부 석학교수인 박재근 한국반도체디스플레이기술학회장이 30일 서울경제와의 인터뷰에서 “K칩스법은 대기업 지원이 아닌 국가 미래를 위한 법안이므로 국회 통과를 서둘러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성형주 기자




주요국들이 반도체 기술 패권 전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사활을 걸고 있다. 미국은 7월 520억 달러(약 68조 원) 규모의 보조금 지급 등을 담은 ‘반도체와 과학법’을 제정했다. 유럽연합(EU)은 최근 회원국 만장일치로 430억 유로(약 60조 원) 규모의 지원을 골자로 한 ‘유럽반도체지원법’ 제정에 합의했다. 중국·일본·대만 등도 반도체 산업 육성을 위해 총력전을 펼치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반도체 경쟁력 강화 방안을 담은 ‘K칩스법’조차 국회에서 4개월째 방치하고 있다. 한양대 융합전자공학부 석학교수인 박재근 한국반도체디스플레이기술학회장은 30일 서울경제와의 인터뷰에서 “K칩스법을 ‘부자 감세’라고 반대하는 것은 반도체 산업 특성에 대한 이해 부족 때문”이라며 “대기업 지원이 아닌 국가 미래를 위한 법안이므로 법안 통과를 서둘러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 회장은 정부의 반도체 인력 15만 명 양성 계획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도 “교육 시설에 대한 지속적인 예산 지원도 이뤄져야 성과를 낼 수 있다”고 말했다.



- ‘반도체 겨울’이 닥쳤다는 우려가 나오는데.

△최근 반도체 경기가 주춤하지만 내년 하반기부터 회복세를 보일 것이다. 반도체 시장은 커질 수밖에 없다. 스마트폰 수요 증가 외에도 데이터센터·자율주행차 등 반도체를 필요로 하는 산업이 빠르게 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글로벌 컨설팅 기업인 맥킨지의 보고서에 따르면 전 세계 반도체 시장 규모는 2030년에 1조 650억 달러(약 1268조 원)로 확대될 것으로 전망된다. 지난해 5900억 달러(약 702조 원)에 비하면 약 1.8배나 커지는 셈이다.

-미국 등 주요국들이 반도체 산업 육성을 위해 팔을 걷어붙이고 있다.

△총성 없는 전쟁이다. 대만의 반도체 기업 글로벌웨이퍼가 한국에 투자하려다 최근 미국으로 방향을 돌렸다. 이 업체가 미국으로부터 지원 받기로 한 혜택이 투자금의 50%에 달한다. 연방 정부와 지방정부가 주는 세제 혜택이 투자금의 35%에 달하고 여기에 연방 정부가 따로 주는 보조금(현금 인센티브)이 15%다. 미국은 불과 몇 해 전만 해도 싼 전기료가 정부 보조금이라며 한국산 철강 제품에 관세를 부과하는 등 공정 무역을 강조했던 나라다. 그런데 지금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반도체 산업 유치에 사활을 걸고 있다.

-미국이 반도체 산업 유치를 위해 공세적으로 나서는 이유가 무엇인가.

△세계 반도체 매출액의 45% 정도를 미국 기업들이 차지하고 있다. 하지만 생산 점유율은 12% 정도다. 미국은 그동안 반도체 설계에 주력했다. 생산은 주로 한국과 대만에 의존해왔다. 미국 팹리스(반도체 설계 전문 회사)의 70% 이상이 대만 파운드리(위탁 생산) 업체 TSMC에 생산을 맡기고 있다. 하지만 대만은 지정학적 리스크를 지니고 있다. 중국이 대만을 공격해 점령하는 사태가 벌어질 수 있다. 게다가 중국이 반도체 굴기를 앞세워 거센 추격을 해오자 위기감을 느낀 것이다. 이런 이유로 미국이 자체 공급망 확보를 위해 공격적으로 나서고 있다. 미국은 10년 뒤 반도체 생산 점유율을 30%까지 끌어올린다는 목표를 세웠다.



-다른 나라들의 반도체 산업 지원은 어떤가.

△일본도 대만 TSMC의 공장을 구마모토현에 유치할 때 경제안전보장법에 따라 현금으로 보조금을 주기로 했다. 공장 건설 비용 1조 1000억 엔(약 10조 5000억 원) 가운데 절반가량인 4760억 엔(약 4조 5000억 원)을 일본 정부가 지원한다는 것이다. 공장 부지도 구마모토현 지방정부가 조성하고 있다. 중국에서는 자국 기업이 사업 계획서만 제시하면 정부가 사업 부지를 제공하고 은행 대출도 알선해준다. 지방정부는 현금 지원도 한다. 대만의 경우 정부가 미리 반도체 공장 부지를 만들어놓고 기업이 필요하다고 하면 바로 공급해준다.

-우리도 반도체 산업 지원을 서둘러야 하는데.

△반도체 산업 경쟁력을 끌어올릴 수 있는 방안은 크게 네 가지다. 전문 인력 양성과 규제 완화, 소재·부품·장비(소부장) 산업 육성, 차량용 반도체 등 새로운 시장 개척 등이다. 하지만 모두 제대로 실행되지 않고 있다. 특히 반도체 산업 인력난은 심각한 문제다. 지난해에만 1만 1000명 정도의 반도체 인력이 채용됐는데 그 가운데 60%가 학부 출신이다. 이들 중에서도 반도체 전공을 3과목 이상 수강한 사람은 20% 정도에 불과하다. 기업들이 인력을 뽑아도 2년여 동안 재교육이 불가피하다. 이 때문에 기업들은 당장 필요한 인력을 충당하려고 소부장 업체에서 경험을 쌓은 인력까지 끌어모으고 있다. 이 여파로 소부장 산업의 성장이 위축되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정부가 향후 10년 동안 반도체 인력 15만 명을 양성하기로 했다.

△대만과 중국은 10년 전부터 반도체 인재 육성 프로그램을 가동하고 있다. 두 나라에 비하면 늦었지만 정부가 반도체 인력난 해소를 위해 팔을 걷어붙이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다. 다만 꾸준한 지원이 뒷받침돼야 한다. 특히 반도체는 실습이 중요한데 그에 필요한 기자재의 가격이 비싸다. 따라서 정부가 교육 시설 지원을 획기적으로 늘릴 필요가 있다. 이와 관련된 예산집행에 인색하면 인력 양성 정책도 성과를 내기 힘들 것이다.





-구체적으로 어떤 규제 완화가 필요한가.

△까다로운 환경 규제 등을 전향적으로 손질해야 한다. 반도체 공장을 짓는 데 걸리는 시간이 중국의 경우 1~2년, 대만과 미국은 2년 6개월 정도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빨라야 7년이다. 갖가지 걸림돌이 많아 필수적인 인프라 구축이 힘들다. 환경 이슈 등으로 용수 확보도, 전력 설치도 쉽지 않다. 소부장 업체의 경쟁력 강화도 시급하다. 우리나라 소부장 기업은 규모가 작다. 규모의 경제가 이뤄지지 않으면 글로벌 경쟁력 확보가 어렵다. 인수합병(M&A), 대기업의 적극적인 투자를 유도해 덩치를 키워가야 한다.

-우리 기업과 경쟁국 업체의 반도체 기술 격차가 빠르게 좁혀지고 있다는 걱정이 많다.

△D램·낸드플래시 쪽에서 미국 마이크론이나 중국 YMTC(양쯔메모리테크놀로지)의 기술 추격이 매섭다. 특히 그동안 무시했던 중국이 무서운 속도로 따라오고 있다. YMTC도 최근 ‘3D 낸드플래시’를 만들었다. 애플이 아이폰14에 YTMC의 낸드플래시를 탑재하기로 한 것만 봐도 중국의 반도체 기술력이 상당한 수준에 이르렀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우리와 중국의 기술 격차가 1~2년으로 좁혀졌다. 안심하고 있을 상황이 아니다.

-그런데도 ‘K칩스법’은 발의된 지 넉 달이 됐는데도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K칩스법은 반도체 클러스터 인허가 절차 간소화와 인력 양성 방안 등을 담은 ‘국가첨단전략산업 경쟁력 강화 및 보호에 관한 특별조치법’, 반도체 시설 투자 세액공제율을 최대 30%로 높이는 조세특례제한법 개정안 등 2건의 패키지 법안이다. 미국·대만 등의 혜택에 비해 부족하지만 일단 이 법안에 따른 세제 혜택만 받아도 우리 반도체 산업 경쟁력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시급한 과제인 인력 양성을 위해서도 이런저런 조건을 따지지 말고 빨리 통과시켜야 한다. 경쟁국보다 더 많은 혜택을 주지는 못하더라도 동등한 지원을 할 수 있도록 국회에서 당장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 기업도 적극적으로 국내 투자 계획을 제시하고 정부와 국회에 필요한 것을 요청해야 한다. 정부와 국회·산업계가 함께 머리를 맞대야 한다. 그래야 경쟁국의 추격을 따돌릴 수 있는 초격차 기술을 확보할 수 있다.



-거대 야당은 ‘대기업 특혜’ ‘부자 감세’라며 K칩스법에 반대하고 있는데.

△반도체 산업의 특성에 대한 이해 부족 때문이다. 주요 글로벌 반도체 업체가 대기업인 이유가 있다. 반도체 산업은 초기 투자에만 조(兆) 단위의 자금이 소요되므로 대기업 외에는 진입하기 어렵다. 대기업 위주로 투자가 이뤄질 수밖에 없는 구조다. 미국·일본 등이 반도체 공장 유치에 사활을 거는 것도 각각 인텔·소니 같은 대기업을 지원하려는 게 아니다. 국가 경쟁력 제고에 중요하고 나라의 미래가 달렸기 때문이다. 한국 경제의 앞날을 생각한다면 반도체 지원 법안 통과를 서둘러야 한다.

-법안에서 수도권 대학의 반도체 관련 학과 정원 확대를 삭제하려는 움직임도 있다.

△지방대학들의 반발 때문으로 보인다. 지방대학들은 수도권 대학의 학부 정원을 제한하는 수도권정비계획법의 규제를 완화해 반도체 학과를 증원하고 첨단산업 분야에 한해 정원을 한시적으로 늘리는 ‘계약 정원제’에 대해 반대하는 입장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이미 정부가 밝힌 대로 지방대학의 관련 학과 정원을 더 늘려주고 관련 예산도 더 많이 지원하면 큰 문제가 없다고 본다. 반도체 지원 법안이 반쪽이 돼서는 안 된다. 최소한 원안은 유지해야 한다.

-미국이 주도하는 ‘칩4 동맹’ 가입 문제는 어떻게 풀어야 하나.

△우리 반도체 산업은 미국과 함께 갈 수밖에 없는 구조다. 미국과 일본은 전 세계 반도체 소부장의 약 50%를 공급하고 있다. 칩을 만드는 기업들은 미국·일본의 소부장이 끊기면 생산할 수 없다. 우리 기업 입장에서도 칩4에 가입해야만 소부장의 안정적 확보와 기술력 업그레이드가 가능하다. 결국 미국·일본과 한 배를 타야 한다는 얘기다.

◆He is…

1959년 부산에서 태어나 부산고와 동아대 전자공학과를 졸업했다. 한양대에서 전자공학 석사 학위,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립대에서 재료공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삼성전자 반도체사업부에 입사해 소재기술그룹장·기술고문으로 근무했으며 한양대 융합전자공학부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현재까지 특허 147건을 등록하고 307건을 출원했다. 한국공학한림원과 한국과학기술한림원 정회원이다. 2018년부터 한국반도체디스플레이기술학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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