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들어 코로나19로 인한 팬데믹이 장기화되면서 우리의 일상과 함께 일하는 방식도 급격하게 변하고 있다. 재택·비대면 근무가 뉴노멀이 되고 정보통신기술(ICT)의 발달로 협업 근무에서 원격 근무가 트렌드로 자리 잡아 가고 있다. 이 같은 경향은 특히 전통적인 제조 공정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는데 대표적인 것이 전산망을 통해 정보를 공유하는 소위 MES(Manufacturing Execution System)라고 하는 생산관리 시스템이다. 이 시스템은 우리나라뿐 아니라 제조업 강국인 일본·독일 등에서도 숙련공 부족에 대응하고 생산성 향상을 위해 일찌감치 도입·운영하고 있다.
그러나 최근 대법원이 원청이 MES를 통해 하청과 정보를 공유한 것을 두고 파견법상 상당한 지휘?명령에 해당한다는 판단을 내려 우리나라 제조업에 어두운 먹구름이 드리워지고 있다. 이러한 법원의 판단 법리에 따를 경우 정보기술(IT)을 통한 원·하청 간의 정보 공유나 협업은 위법한 것이 돼 사실상 제조업에 대한 도급을 금지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특히 우리나라는 독일·일본과는 달리 제조업에 대한 파견을 엄격하게 금지하고 있어 그나마 제약이 적은 도급을 널리 활용하고 있는데 MES를 통한 정보 공유까지 차단하게 되면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력이 상대적으로 약화되고 제조업 및 IT 강국으로서의 위상 또한 추락할 수밖에 없다.
혹자는 제조업에서 굳이 MES 방식을 고집하지 말고 종전의 방식대로 하면 되지 않느냐고 반문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의 경쟁 상대국은 이미 제4차 산업혁명을 통해 제조업에 스마트팩토리를 적극적으로 도입하는 등 제조 혁신을 거듭하고 있다. 이처럼 제조업의 패러다임이 변화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종전의 전근대적인 관리 방식을 강요하는 것은 경쟁력을 떨어뜨릴 뿐 아니라 시대에 역행하는 발상으로, 우리나라가 10대 경제 대국으로 도약하는 데 견인차 역할을 해온 자동차·철강·조선 등과 같은 제조업을 사실상 포기하라고 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인공지능(AI)과 사물인터넷(IoT) 등 ICT 기술이 이끄는 제4차 산업혁명은 기존의 제조·조립·판매 위주의 제조업의 변화를 촉진하고 있다. 타 산업과의 융합으로 제조 영역이 확장되고 과거 인적 역량과 가격 경쟁력이 가름하던 시대에서 벗어나 첨단 기술력을 바탕으로 획일적 대량 생산보다는 다양한 니즈에 맞춰 다품종 소량 생산 쪽으로 무게중심이 옮겨가고 있다. 지금까지는 이러한 니즈에 숙련공들의 노하우로 대처해왔으나 작금에는 인력 부족으로 젊은 기술자 확보가 어렵게 되면서 장기간이 소요되는 기술 승계는 기대하기 어렵게 됐다. 그래서 제조업들이 기존의 속인(屬人)적 제조 공정에서 탈피해 기술 노하우를 디지털화함으로써 이를 극복하고자 도입한 것이 MES 방식인 것이다.
제조업이 인력·기계·설비 등 생산 자원을 최적화해 생산성 향상을 꾀하기 위해 MES를 도입하는 것은 이미 필수 불가결하다. 최근 독일이 인더스트리 4.0을 통해 성취하고자 하는 스마트팩토리나 미국이 추진하고 있는 산업용 사물인터넷(IIOT), 가상물리시스템(CPS)은 MES 등을 통해 정보를 공유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특히 최근의 MES는 종전과 달리 네트워크를 통해 여러 사업장과 정보를 공유하는 것이 특징이다. 이처럼 산업 현장은 MES로 점점 스마트팩토리를 향해 진화하고 있는데 이를 보는 사법부의 시선은 아직도 제2차 산업혁명 시대에 머물러 있는 듯하다. 만시지탄이지만 이제라도 사법부도 이분법적 사고의 틀에서 벗어나 보다 개방적인 관점에서 합리적인 판단을 하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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