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내진 성능과 소방시설을 갖추지 않은 아파트의 재건축 안전진단 면제를 내건 여당 법률안에 반대 목소리를 내면서 해당 법안의 수정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정부의 재건축 안전진단 개선안은 빠르면 다음주 공개될 예정인데, 사업 걸림돌로 지목돼 온 구조안정성 평가 항목 가중치를 낮추는 방안 등이 거론된다. 시장에서는 지진과 화재 안전에 취약한 건물에 대해 신속한 재건축을 지원하는 등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4일 국회와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조수진 국민의힘 의원 등 여당 의원 11명이 올해 3월 발의한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 개정안에 대해 주무 부처인 국토부가 반대 의견을 제시한 것으로 나타났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 직후 나온 ‘여당 1호 법안’이라는 점에서 시장의 주목을 받은 해당 개정안은 내진 성능을 확보하지 않거나 소방시설이 관련 기준에 못 미치는 건축물의 재건축 안전진단을 생략하는 내용을 담았다. 또 안전진단 평가 항목 중 구조 안전성의 가중치가 30%를 넘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주무부처인 국토부는 이 같은 방안에 반대 의견을 제시한 것으로 나타났다. 국토부는 개정안에 대한 검토 보고서를 통해 “매도청구권, 용적률 상향 등 여러 가지 특례가 부여되는 재건축 사업의 특성을 고려할 때 원칙적으로 안전진단을 통한 사업 추진 필요성 검증이 필요하다”며 “내진 보강과 소방시설 설치는 재건축 없이도 가능하다는 점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현재는 법 시행령에 따라 천재지변으로 붕괴된 주택, 구조 안전상 사용금지가 필요한 주택을 안전진단 면제 대상으로 인정하는데 이 범위를 내진 성능과 소방시설 미확보 건물까지 확대하는 것에 난색을 표한 것이다.
재건축 추진 단지들은 건물 노후화로 사고 위험이 커지고 있다며 대책을 요구하고 있다. 특히 내진 설계 의무화가 이뤄진 1988년 이전에 지어진 노후 아파트들은 지진에 취약할 수밖에 없어 안전진단을 면제하고 재건축에 속도를 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서울 송파구 올림픽선수촌아파트, 강남구 압구정현대아파트 등이 대표적이다.
유상근 올림픽선수촌아파트 재건축추진단장은 “2019년 자체 용역 결과 내진 보강을 위한 공사비가 재건축(3조~4조 원)에 비해 1조 원가량 더 드는 것으로 분석됐다”며 “내진 보강을 위한 공법 자체가 복잡하기 때문에 재건축에 비해 높은 비용이 투입된다”고 밝혔다. 고종완 한국자산관리연구원장은 “주거 밀집도가 높은 노후 단지 특성상 대규모 지진이나 화재 발생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며 “피해 방지 차원에서 재건축 안전진단을 면제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국토부는 다음 주쯤 재건축 안전진단 개선안을 발표할 계획이다. 개선안에는 현재 50%인 구조 안전성 가중치를 30%로 낮추고 지방자치단체장 재량으로 최대 10%포인트를 조정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이 담길 것으로 보인다. 반면 주거 환경 가중치는 현행 15%에서 30%로, 건축 마감 및 설비 노후도 가중치는 25%에서 30%로 각각 상향될 것으로 전망된다. 또 1차 정밀안전진단에서 D등급으로 분류될 시 의무화돼 있는 공공기관 적정성 검사(2차 안전진단)를 지자체가 요청하는 경우에 한해 제한적으로 시행하는 방안도 검토되고 있다. 국토부는 개선안에 따라 관련 기준을 개정한 뒤 내년 1월 중 시행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