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배들이 너무 자랑스럽다. 지휘봉을 잡았던 2010년 남아프리카공화국 월드컵에서 원정 월드컵 첫 16강에 오른 이후 12년 만에 결실을 맺었다. 경기장에서 뛴 선수와 못 뛴 선수들까지 모두 한 마음으로 임했기 때문에 우리에게 기적이 찾아올 수 있었다. 이제 벤투호가 제 기록을 깨뜨리고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길 바란다.
저는 대회 전부터 이번 월드컵이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다. 역대 월드컵 사상 멤버 구성이 가장 좋기 때문이다. 월드 클래스로 평가받는 손흥민(토트넘)을 비롯해 황희찬(울버햄프턴), 이강인(마요르카), 김민재(나폴리) 등 큰 무대에서 활약 중인 선수들이 다수 포진했다. 특히 미드필드진이 탄탄하고 중원 싸움에서 밀리지 않으니 조별리그 3경기에서 좋은 경기력을 보여줄 수 있었다.
극적으로 16강에 진출한 감이 있지만 우리 선수들은 그럴 만한 자격이 있다. 4년 동안 일관성 있게 월드컵을 준비한 힘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특히 경기 내용적으로 짜임새가 있었다. 선수들은 상대가 강하다고 해서 당황하거나 얼어붙지 않았다. 지금의 자신감으로는 16강에서 만나는 브라질도 대비를 잘한다면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올 6월 브라질과의 평가전(1 대 5 패)을 돌아보면 조심해야 할 부분들이 있다. 바로 빌드업이다. 당시 우리가 빌드업을 많이 했는데 브라질 선수들이 우리의 수를 간파하고 강하게 압박하면서 곤란을 겪은 장면이 많이 연출됐다. 이번 경기에서는 지나친 빌드업보다는 상대가 압박할 때 생기는 뒷공간을 노리는 플레이를 해야 한다.
전략을 다소 다르게 가져갈 필요가 있다. 브라질과 역대 전적은 7전 1승 6패로 열세인데 유일한 1승이 제가 대표팀을 이끌었던 1999년 3월 평가전(1 대 0 승)에서 나왔다. 그때나 지금이나 브라질 선수들이 우리보다 개인 기량 면에서 압도적으로 우위에 있지만 끈질기게 부딪치면서 실점을 최대한 늦춘다면 경기 막판에는 어떤 일도 일어날 수 있다고 본다. 팽팽한 균형이 지속되면 초조해지는 쪽은 브라질이다. 1999년에도 끈질기게 지키면서 한 방을 노렸는데 김도훈 선수가 찬스를 놓치지 않고 해결해줬다.
우선 수비에서 최대한 버텨야 한다. 한 가지 걱정되는 건 수비 라인에서 김민재와 김영권의 출전 여부다. 만약 두 선수 중 한 명이 출전하지 못한다면 전략을 잘 세울 필요가 있다. 공격에서는 손흥민과 황희찬같이 빠른 선수들이 있기 때문에 역습 상황을 충분히 살릴 수 있으리라 본다.
특히 부상에서 돌아온 황희찬이 기대된다. 굉장히 저돌적이고 결정력이 있는 선수다. 포르투갈전 결승골은 부상으로 마음고생을 했던 그의 집념이 돋보인 장면이었다. 손흥민의 돌파와 패스도 일품이었지만 황희찬이 반대쪽에서 70~80m 정도 질주를 해줬기에 득점이 가능했다. 브라질전에서도 황희찬의 빠른 스피드가 분명 상대에게 큰 위협이 될 것이다.
허정무 K리그1 대전하나시티즌 이사장은 1986년 멕시코 월드컵 멤버이며 2010년 남아공 대회에서는 감독으로 원정 월드컵 첫 16강 진출을 이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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