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이 서훈 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에 대한 구속영장을 발부하면서 검찰 사정 칼날의 ‘최종 종착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서 전 실장이 문재인 정부 청와대 고위 인사 가운데 구속된 첫 사례라 검찰 수사에 가속이 붙을 수 있다는 데는 이견이 없다. 하지만 현 상황에서 검찰 수사가 전 정부 ‘최정점’까지 이를 수 있느냐는 데는 여전히 의견이 분분한 상황이다.
4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법 김정민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3일 서 전 실장에 대한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범죄 중대성과 피의자의 지위, 관련자들의 관계에 비추어 증거인멸 염려가 있다’는 게 법원이 밝힌 구속영장 발부사유다.
서 전 실장 측은 해양수산부 공무원 고(故) 이대준씨가 북한군에 피살된 당시 대응이 첩보를 종합적으로 내린 ‘정책적 판단’이라며 사법 판단의 대상이 아니라고 반박했다. 또 증거인멸 우려도 없다고 항변했으나 법원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오히려 법원은 서 전 실장이 사건 은폐나 월북 조작의 ‘컨트롤 타워’로, 국가기관이 조직적으로 가담한 범죄를 주도했다는 검찰 ‘손’을 들어줬다. 법원 판단에 따라 검찰은 오는 10일까지 서 전 실장을 구속 수사가 가능해졌다. 또 한 차례 연장할 경우 최대 20일 동안 서 전 실장을 구속 수사할 수 있다.
법조계 안팎에서는 ‘서해 공무원 피격 사건’을 겨냥한 검찰 수사가 앞으로 속도를 붙일 수 있다고 보고 있다. 구속적부심으로 석방되기는 했으나 앞서 서욱 전 국방장관·김홍희 전 해양경찰청장을 구속 수사한데 이어 서 전 실장 신병까지 확보했기 때문이다. 최장 20일 동안 서 전 실장을 구속 수사하면서 박지원 전 국정원장 등 다른 대북·안보 라인 윗선의 연관성을 확인하는 데 수사력을 모을 수 있다는 게 법조계 안팎의 분석이다. 박 전 원장은 이씨 피살 다음 날 열린 관계 장관 회의에 참석했다. 또 당시 첩보 관련 보고서 등을 무단 삭제한 혐의로 지난 7월 국정원으로부터 고발당한 바 있다. 박 전 원장의 경우 고발 이후 단 한 차례 압수수색 대상이 되기는 했으나 지금까지 검찰 조사를 받지 않았다.
다만 검찰이 문재인 전 대통령까지 수사선상에 올릴 지는 여전히 미지수라는 의견이 많다. 서 전 실장에 대한 구속영장에 문 전 대통령이 공범으로 적시되지 않는 등 서해 공무원 피격 사건의 최고 책임자를 서 전 실장으로 보는 기류가 검찰 내 흐르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게다가 해당 사건이 자칫 정치적 사안으로 부각될 수 있다는 점도 부담요인으로 꼽힌다. 문 전 대통령까지 사법 잣대를 들이댈 경우 여야가 격하게 충돌하는 등 정치적 부담만 커질 수 있어 쉽게 수사 칼날을 드리우기 쉽지 않다는 분석이다. 실제로 국민의 힘은 이날 “법원도 문재인 정부의 조작과 은폐를 인정한 것”이라며 “월북몰이 사건의 진실이 낱낱이 밝혀지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반면 더불어민주당은 “정권 입맛에 맞춰 결론이 정해진 정치 보복 수사는 결국 법원에서 심판받을 것”이라며 “윤석열 검찰의 정치 보복 수사와 야당 탄압에 맞서 진실과 정의를 지키겠다”고 강조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법조계 관계자는 “현재까지 수사상황을 살펴보면 검찰은 서 전 실장을 사건 책임자로 보는 경향이 두드러진다”며 “다만 앞서 문 전 대통령이 본인이 직접 관련 사안을 보고받고, 승인했다고 밝힌 점이 변수로 작용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문 전 대통령은 1일 윤건영 민주당 의원을 통해 낸 입장문에서 “서해 사건은 당시 대통령이 국방부, 해경, 국정원 등의 보고를 직접 듣고, 그 보고를 최종 승인한 것”이라며 “당시 안보부처들은 사실을 명확하게 규명하는 것이 불가능한 상황에서 획득 가능한 사실을 추정했고, 대통령은 이른바 특수정보까지 직접 살펴본 후 그 판단을 수용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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