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일은 살아남았음을 의미합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100일은 견뎌냈지만 남은 임기까지도 살아남을지 여부는 이 대표의 정치력에 달려 있다고 봅니다.”
민주당 내에서 계파색이 옅다고 평가 받는 한 수도권 의원은 4일 이 대표의 100일을 이같이 평가했다. 민주당의 이재명 당 대표 체제가 5일로 100일을 맞는다. 취임 일성으로 ‘유능하고 강한 민주당’을 강조했지만 ‘이재명표 입법’ 실적은 전무했고 정권의 연이은 실책에도 당 지지율은 30% 초반에 갇혔다. ‘유능’과 ‘강함’ 모두 성적표가 좋지 못한 셈이다.
유례없는 검찰의 맹공으로 제대로 된 리더십 발휘가 어려웠던 이유도 있지만 이 대표 스스로도 본인의 사법 리스크를 민주당의 것으로 만들면서 ‘살아남음’을 걱정해야 하는 100일을 보내야 했다. 그 사이 77.77%의 역대 최고 득표율 효과는 사라져버렸다.
◇민심과 포퓰리즘 사이 설익은 정책만=불법사채무효법(대부업법 및 이자제한법 개정안)은 보궐선거로 국회에 입성한 이 대표의 2호 법안이다. 채무자의 과도한 이자 부담을 경감하겠다는 취지로 내놓은 이 법안은 발의 4개월 만에 골칫거리로 전락했다. 금리가 급격하게 오르면서 저신용자들의 대출 기회를 박탈할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금융투자소득세(금투세) 도입 유예 논란은 이 대표의 말 한마디가 시장의 혼란으로 이어진 대표적 사례다. 이 대표가 신중론을 언급하면서 당이 갈지자 행보를 보였다. 당내 최대 의원 모임인 더좋은미래는 금투세 도입을 공개적으로 지지하는 성명을 내며 이 대표의 의견에 반기를 들었다. 결국 민주당은 거래세와 양도세 비과세 기준을 기존 안대로 유지하면 금투세 2년 유예에 동의하겠다는 절충안을 제시했지만 정부는 이를 거절했고, 이 대표의 초부자 감세 기조에만 흠집을 남겼다.
양곡관리법도 마찬가지였다. 이 대표는 추석 연휴 직후 전북 김제평야를 찾아 “시장격리 자동 개입 조항을 신속하게 본회의에서 통과시키겠다”며 양곡관리법 통과를 약속했다. 취임 후 첫 번째 정책적 행보이자 혈세 투입으로 쌀값 안정화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본 전형적인 포퓰리즘 행보였다. 호남에 지역구를 둔 한 의원은 “양곡관리법의 핵심은 문재인 정부에서 효과를 본 대체 작물 재배 지원의 법제화인데 시장격리만 부각되며 취지가 왜곡됐다”고 아쉬워했다. 비명계 재선 의원은 “대통령 재가는커녕 법제사법위원회 통과 가능성도 계산하지 못한 법안을 밀어붙이는 것을 개혁이라고 보기는 어렵다”고 지적했다.
◇사당화 논란 키운 사법 리스크 대응=9월 검찰의 이 대표 기소(공직선거법 위반)를 기점으로 이 대표와 주변 인물을 향한 수사가 본격화되면서 사법 리스크에 대한 우려는 현실이 됐다. 대선 전 불거진 대장동 개발 관련 의혹 수사가 현재 진행형인 상황에서 정권마저 검찰 출신인 윤석열 대통령에게 내주며 이 대표의 사법 리스크는 어쩌면 예정된 수순이었다.
사당화(私黨化) 논란이 불거진 것도 이때부터다. 이 대표는 본인의 사법 리스크를 당의 일로 끌어들였고 친명계로 포진된 지도부는 이를 확대재생산했다. 주요 현안과 당무를 논의하는 최고위원회의에서는 검찰 수사를 비판하는 목소리만 난무했다. 지도부의 메시지가 중복된다는 지적도 수용이 안 됐다.
의사 일정과 당론을 결정해야 할 의원 총회에서는 이 대표를 겨냥한 검찰 수사의 사실관계를 설명하는 이른바 대장동 팩트 체크 강의까지 진행됐다. 수도권 비명계 의원은 “한 번도 보지 못한 김용(전 민주연구원 부원장)이나 정진상(당 대표 정무조정실장) 같은 사람들을 위해 의원들이 피케팅을 하는 모습이 말이 되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최근 민주당은 당내 법률위원회에 율사 출신 의원들을 대거 부위원장단으로 합류시켰다. 검찰 수사에 당력 강화로 맞서겠다는 전략이지만 비대해진 법률위가 위상이 추락한 민주연구원의 전철을 밟을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한 민주당 출신 인사는 “국민의힘이 권력을 잡고 있는 상황에서 분노 대 분노 대결로 가면 100전 100패”라고 지적했다.
◇리더십 위기…“행정가 아닌 여의도 정치해야”=이 대표 취임 직후 한 중진 의원은 비명계 의원들에게 ‘(이 대표가) 도와달라고 부탁하면 당을 위해 적극 나서달라’고 주문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들 중 지도부로부터 주요 당직 요청을 받은 이는 한 명도 없었다. 철학과 마음이 맞는 인물을 측근으로 두는 것은 여느 정치인이나 마찬가지지만 계파 배분에 대한 고려가 없는 인사는 전임 대표들과 달랐던 점이다.
한 재선 의원은 “정치란 결국 상대와의 타협을 통해 성과를 이끌어내야 하는 것인데 그러지 못했다”며 “행정가로서는 성공 스토리를 만들었지만 여의도 정치에 대한 이해도는 아직 부족해 보인다”고 분석했다. 지도부 출신 중진 의원은 “이재명다운 어젠다를 꺼내기 굉장히 어려웠다”며 “검찰이 저렇게 밀어붙이면 누구라도 어려움을 겪었겠지만 그래도 플러스 알파를 만들어내는 게 정치력”이라고 강조했다.
친명계도 불만이 없는 것은 아니다. 이재명‘다움’이 사라졌다는 지적부터 민주당이 나아가야 할 새로운 가치와 비전을 제시할 기회를 놓쳤다는 분석까지 나온다. 친명계 초선 의원은 “야당 대표가 됐는데 이 대표 특유의 ‘사이다 발언’은 오히려 사라졌다”며 “이재명만의 브랜드가 약화된 느낌”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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