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직전인 올해 2월 15일, 영국의 싱크탱크인 왕립합동군사연구소(RUSI)가 러시아의 공격을 예견하는 보고서를 내놓았다. 보고서에 따르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1년 넘게 침공 시나리오를 짰다. 지난해 봄부터 우크라이나 국경에 병력을 증강했고 에너지 가격이 오르도록 조작해 우크라이나 시민들의 불만을 유도했다. 미국·유럽의 동향도 살피면서 대(對)우크라이나 3단계 전략을 세웠다. 1단계는 강압적 협상을 통해 일부 영토를 빼앗고, 2단계는 정부를 전복하고 친(親)러시아 정부를 세우며, 3단계는 직접 침공하는 것이었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우발적인 것이 아닌 사전에 계획된 것이라는 미국 등 서방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내용이었다.
RUSI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군사·안보 분야 싱크탱크다. 영국 총리를 지낸 웰링턴 공작의 구상으로 1831년에 만들어졌다. 해군 전략 및 군사과학을 연구한다는 설립 취지에 맞춰 ‘해군·군사 박물관’이라는 이름으로 출발했다가 1839년 ‘합동군사연구소(USI)’로 바뀌었다. 1860년에 영국 왕실의 후원을 받는 연구 기관으로 승인되면서 명칭에 ‘왕립(Royal)’이 추가됐다. RUSI는 탁월한 정세 판단과 분석 능력으로 1·2차 세계대전과 냉전 기간에 영국은 물론 미국의 군사·안보 정책 결정에 큰 영향을 미쳤다.
1990년대까지 RUSI의 연구 주제는 군사과학과 국제 안보 등 두 섹션 중심으로 이뤄졌다. 하지만 9·11 테러 이후 국토 안보 분야까지 확대됐다. 지금은 금융 범죄, 핵 확산 및 사이버 보안 등으로 범위가 더 확장됐다. 영국 런던에 본부가 있으며 벨기에 브뤼셀과 케냐 나이로비에 해외 사무소를 두고 있다. 1857년부터 군사·안보 현안을 다루는 정기 간행물 ‘RUSI 저널’을 출간하고 있다.
RUSI가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뒤 올해 7월까지 5개월 동안의 전황과 시사점을 분석한 보고서를 최근 발표했다. 보고서는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얻을 수 있는 교훈을 이렇게 요약했다. ‘현대전에서 안전지대는 없으며 포와 무인기 등 무기가 많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우리도 압도적인 자체 군사력 확보와 가치 동맹 강화를 위해 국력을 모아야 할 때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