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강해림을 실제로 만난다면 깜짝 놀랄 것이다. ‘썸바디’ 속 김섬이 그대로 튀어나온 듯하다. 쉽게 감정을 읽을 수 없는 딱딱한 말투, 무표정일 때와 극명하게 대비되는 싱그러운 미소. 만들어낸 것이 아닌 강해림의 진짜 모습이다. 자신을 투영한 캐릭터를 만나 날개를 단 신예의 이야기가 시작됐다.
강해림의 첫 주연작인 넷플릭스 오리지널 ‘썸바디’(극본 정지우·한지완/연출 정지우)는 데이팅 앱 썸바디를 매개로 살인사건이 벌어지면서, 개발자 섬(강해림)과 주변 친구들이 의문의 인물 윤오(김영광)와 얽히며 벌어지는 서스펜스 스릴러다. 강해림은 600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정지우 감독의 뮤즈가 됐다.
신비로운 분위기만으로 작품을 장악한 그의 꿈이 처음부터 배우였던 건 아니다. 그는 어머니를 따라 피아노를 전공하던 학생이었다가 미스코리아에 출전한 뒤 연기 제안을 받았다고. 새로운 도전에 긍정적이었던 그는 선뜻 배우 생활에 뛰어들었다. 이후 KBS Joy ‘연애의 참견’, JTBC ‘라이브온’ 등 필모그래피를 쌓으며 기회를 기다렸다.
섬은 기회였다. 정 감독이 생각했던 섬의 이미지와 강해림이 일치했기 때문. 섬은 극도로 내향적이고 자신만의 세계를 갖고 있으면서도 외로움을 갖고 있는 인물이다. 세상을 살아가는 속도가 타인에 비해 굉장히 느리다. 강해림도 섬이 자신과 많이 닮아 있다고 생각했다.
“MBTI(성격유형검사)로 치면 INTP의 모든 특징이 다 들어간 것 같아요. INTP는 따뜻한 로봇이거든요. 로봇 같아서 사람들이 차가운 줄 아는데 마음씨는 착해요. 평소에는 엄청 노력해요. 많은 사람들에게 긍정적으로 보이기 위해 사회적인 가면을 쓰는 거죠.”
정 감독은 강해림을 두고 ‘고유한 사람’이라고 정의했다. 캐릭터를 구축하며 강해림 개성을 섬에게 많이 녹여내기도 했다고 밝힌 바 있다. 섬의 독특한 말투도 강해림의 실제 말투를 그대로 사용한 것이다.
“오디션을 볼 때 합격하고 싶다는 마음을 버렸어요. 잘 안되는 경우가 많아서 그랬죠. 감독님은 제가 욕심도 없고 뭔가 애써 만들려는 것 같지 않아서 좋아 보였다고 하더라고요. 촬영하면서 부담감이 있었어요. 제가 가진 걸 잃을까 봐 무서웠거든요. 감독님이 제 고유의 모습에서 섬을 발견하고 좋아해 준 거니까 제가 그것을 잃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어요.”
인간의 내밀한 감정을 표현하는 정 감독의 세계를 이해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정 감독 스스로 ‘기괴한 멜로’라고 칭할 정도로 새로운 스타일의 이야기지만, 강해림이 선호하는 장르와 맞아떨어졌다. 평소 넷플릭스 ‘그녀의 이름은 난노’ ‘너의 모든 것’ 등 특별한 사람의 이야기를 즐겨본다는 그는 “‘썸바디’를 운명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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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이 되어가는 과정을 거치면서 더 훅 빠져들었다. 지속적인 사회관계 형성에 장애가 있는 아스퍼거 증후군을 앓는 섬과 비슷한 사람들의 인터뷰나 책을 보며 깊숙이 공부했다. 감정을 그림 카드로 학습한 섬처럼 같은 과정을 거쳤다. 개발자인 섬을 따라 앱 개발 과정이나 컴퓨터 용어, 부호 등도 배웠다. 자연스럽게 빠른 속도로 타자를 치기 위해 타자 연습도 했다.
섬의 외형도 고민 끝에 만들어졌다. 섬은 목이 드러나지 않는 폴라티를 즐겨 입고 쇼트커트로 오묘한 분위기를 풍긴다. 그는 “내가 먼저 하고 싶어서 감독님에게 제안했다. 소속사에서는 배역을 딸 때 긴 머리가 유리하다 보니 반대했는데 난 이때다 싶었다”며 웃었다. 이어 “무채색 옷도 의도됐다. 섬이 몸매가 드러나는 옷을 입지 않는 것도 의상팀과 감독님이 함께 연구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나부터 열까지 의견을 내고 자신의 색깔을 녹여내며 만든 첫 주연작에 대한 만족도는 최상이다. 정 감독에 대한 100% 신뢰감으로 장면 하나하나의 의도를 모두 이해했다. 간혹 부족한 자신의 모습이 보여도, 과하거나 꾸며진 걸 싫어하는 정 감독의 스타일로 해석했다.
“‘썸바디’를 하면서 연기의 재미를 많이 느꼈어요. 정 감독님과 작업하면서 새로운 재미를 알게 된 거죠. 나이가 들어도 꾸준히 연기하고 싶어졌어요. 앞으로는 제가 가진 색깔이 아니더라도 여러 가지를 해보고 싶고요.”
‘썸바디’는 자신을 오롯이 보는 기회가 되기도 했다. 덕분에 인간 강해림으로서 자존감도 높아질 수 있었다.
“나 자신을 온전히 받아들이는 게 태어나서 처음이었거든요. 원래 자존감이 낮은 편이었는데 계속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세상 사람들과 잘 어우러질 수 있어야 한다는 마음이 컸죠. 그런데 이제는 많이 부족해도 받아들이려고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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