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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민생 잊은 국회, 그 원인과 해법

차진아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의회제도는 민주주의의 본질적 구성요소다. 영국처럼 대통령 없는 민주국가는 있어도 의회 없는 민주국가는 있을 수 없다. 민주주의의 핵심은 국민주권이지만, 모든 국민이 국가사무를 직접 처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대의기관이 국가사무를 처리하는 대의제민주주의가 필수적이며, 이러한 대의기관 중에서 가장 핵심적인 것이 의회이다.

이런 의회는 국민의 일차적 대표라 불린다. 그런데 대한민국 국회는 국민과 가장 가까운, 국민의 일차적 대표기관으로서 역할을 제대로 하고 있는가?

오히려 대한민국의 정치불신이 깊어지는 가장 중요한 원인이 국회에 대한 불신에 있다는 점은 널리 인정된다. 왜 국민과 가장 가까워야 할 국회가 국민의 불신을 가장 크게 사고 있으며, 지난 수 십년 동안 다른 분야의 개선에도 불구하고 정치개혁, 국회개혁은 성과가 없는가?

그것은 무엇보다 대한민국의 정치제도에 심각한 결함이 있기 때문이다. 지난 35년 동안 7명의 대통령이 모두 임기 말에 심각한 문제들을 겪었다. 이제는 그 원인을 대통령 개인의 문제보다는 제도 자체의 문제에서 찾는 것이 일반적이다. 마찬가지로 수많은 제도개혁에도 불구하고 국회가 국민의 신뢰를 얻지 못하고 있는 것도 국회의원 개개인의 문제보다는 제도의 문제가 본질적인 것으로 보아야 한다.

최근 몇 가지 현안을 돌아보자. 이태원 참사가 발생하자 거대 야당은 정부를 공격하는 기회로 활용하는 데 골몰하고, 집권 여당은 이를 방어하는 데 여념이 없다. 그러다 보니 정작 참사피해자 및 유가족에 대한 보호와 지원은 뒷전이다. 여야 갈등으로 예산안처리가 법정시한을 넘긴 것도 국민을 위한 것은 아니다. 현상황으로는 국회에서 민생 현안들이 제대로 처리될 것을 기대하기 어렵다.



의회제도의 본질은 국민을 위해 다양한 목소리가 의회에 반영되며, 합리적인 대화와 토론을 통해 국민의 다양한 이해관계를 올바르게 조율하는 것이다. 그런데 작금의 현실이 그러한가? 국민의 목소리를 대변하기보다는 여야의 정치투쟁만이 계속되고 있는 국회를 국민이 불신하는 것은 오히려 당연하지 않은가?

아무리 정치개혁, 국회개혁을 해도 여야의 본질적 지향점이 달라지지 않는 한, 근본적인 변화는 불가능하다. 과거 동물국회를 국회선진화법을 통해 해결하고자 했으나, 그 결과는 식물국회였다. 더욱이 한 정당이 의석의 5분의 3을 확보한 이후에는 일방적인 독주를 막을 수 없었다.

여야의 경쟁이 국민을 위한 것이 아니라 상대방을 이기기 위한 것인 한, 이 문제는 해결될 수 없다. 또한, 국민을 위한 선의의 경쟁이 아니라, 상대방을 부정하고 진영갈등을 심화시키는 경쟁이 계속되는 것은 지금과 같은 승자독식의 정치시스템 하에서는 피할 수 없다.

미국의 경우 합리적인 정치문화, 연방대법원의 조정자로서의 역할, 그리고 연방국가의 분권적 구조 등 승자독식의 폐해에 대한 완충장치가 마련되어 있다. 민생을 돌보지 않고, 권력투쟁에 올인하는 국회의 현실을 근본적으로 바꾸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정치문화의 개혁이 필요하다. 여야 수뇌부가 공천권을 통해 소속 의원들에 대한 강력한 지배력으로 일사분란한 행동을 강요하는 것은 민주주의의 본질에 반하며 정치불신의 뿌리가 된다.

나아가 사법부의 정치갈등에 대한 조율자로서의 역할을 활성화하려면 대법관, 헌법재판관 임명에 대한 정치권의 영향력을 최소화해야 한다. 그리고 대통령의 권한을 합리적으로 분산시키는 분권형 권력구조로의 개헌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시대적 요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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